*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퍼펙트 케어는 법적후견인 제도의 빈틈을 파고들어 무력한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소시오패스 주인공, 말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고로 주인공이 빌런이란 말씀. 어설프게 빌런에게 동정심을 살만한 슬픈 과거사나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식의 사탕발림이 없다는 점은 칭찬할 만합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말라에게 털리는 죄 없고, 운도 없는 노인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관객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말라 본인과 그 주변인물들(애인과 의사, 요양원 관리자 등)은 하나같이 본인들의 행동에 일말의 죄의식도 없기 때문에 말라의 스토리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적대자나 희생자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 정말 독특한 영화입니다. 관객 입장에서 감정을 이입할만한 주조연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죠.

 일반적인 안티 히어로 영화라면 적어도 주인공보다 더 사악한 적대자 포지션의 캐릭터를 제시함으로써 주인공 캐릭터에게 어느정도의 감정이입을 허락하는게 보통입니다. 빌런 중심의 영화라면 주인공이 왜 빌런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제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희생자 캐릭터에 어느정도 스포트라이트를 배분해서 주인공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복수하도록 함으로써 장르적 쾌감을 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퍼펙트 케어'는 이 중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뒤지길 바라는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물론 관객이 주인공보다 악역을 응원하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는 주인공이 하는 짓이 너무 멍청하고 비호감이거나 악역이 주인공보다 훨씬 멋질 때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영화의 완성도가 엉망이지 않는이상 이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퍼펙트 케어'는 이 경우에 해당한다 보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후반부 완성도가 급격히 떨어지긴 하지만, 영화가 너무 엉망이여서라기 보다는 그냥 주인공이 너무 사악해서 죽길 바라는 감정이 더 큽니다. 안티 히어로나 빌런이 중심이 되는 영화는 많았지만, 이 정도로 관객이 주인공 캐릭터에 비집고 들어갈만한 틈을 조금도 주지 않는 영화는 정말 드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나마, 말라가 잘못건드린 피터슨 여사가 그나마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일텐데 영화는 피터슨 여사를 플롯 장치로 사용하는데 그칩니다. 그렇다면 적대자 포시젼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아들, 러시아 마피아 캐릭터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데 이 캐릭터는 그냥 관객의 기대치에 한참 못미치는, 그냥 덜떨어진 인물에 불과합니다. 명색이 마피아 보스인데 무력한 여자 두 명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걸보면 위협적이란 느낌은 단 1도 들지 않습니다. 러시아 마피아가 말라를 뛰어넘는 악역이거나, 기대이상의 시련을 안겨줌으로써 말라의 여정에 어느정도 굴곡을 주었어야 했는데 둘 중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하죠. 결국 영화에는 말라의 사악함에 대적할만한 적대자도 시련도 없습니다. 말라는 그냥 무적입니다.

 주인공을 막아서는 어떤 장애물도 존재하질 않으니 영화의 후반부는 그냥 날로먹기나 다름없습니다. 아무런 어려움이나 문제 없이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니 어떤 성취감도 없습니다. 관객들은 그저 방관자로서 지켜보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도 감독이 양심은 있었는지 말라는 권선징악적 최후를 맞긴합니다만, 이미 말라가 러시아 마피아와 손을 잡고 본인의 회사를 대기업으로 키운 상태기 때문에 그녀가 죽더라도 그녀의 유산은 누군가에 의해 이어질 확률이 100%입니다. 되려 영화 초반보다 상황은 나빠진거나 다름없습니다. 법적후견인 사기극이 아예 조직범죄가 되어버린 꼴이니까요. 억울하게 이 회사에 걸려든 희생자들이 풀려날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을 뿐입니다. 이걸 정의구현으로 보긴 힘들다 봅니다. 

 영화 초중반에 보여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날림전개와 플롯아머로 순식간에 날려버리기 때문에 곱씹어 볼 수록 개선의 여지가 너무나 뚜렷해서 더더욱 안타까운 영화입니다. 장르영화로서 살아남고자 했다면 앞서 언급했듯 주인공에 합당한 적대자, 시련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아예 희생자 캐릭터를 부각시켜 정의구현과 함께 장르적 쾌감을 추구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 사회 풍자극이 되고자 했다면 미국의 사법 시스템의 오류를 더 적나라게 파고들었어야죠. '퍼펙트 케어'는 이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이도저도 아닌게 됐습니다.

 주인공을 한없이 증오하게 만들다니 분명 신선한 시도였고, 절반의 성공은 인정하는 바입니다. 2시간 동안 피를 끓게 만들어준 로즈먼드 파이크의 열연도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좋은 소재와 캐릭터를 갖고도 이 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한건 분명 실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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