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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곡성(2016)

movies 2016. 5. 14. 16:10 |

*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5월 한국영화의 최대 화제작, 곡성을 보고왔습니다. 뛰어난 장르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예고편도 보지 않았고, 별다른 정보가 없이 영화를 보러가서 무슨 장르인지도 몰랐는데, 보면서도 깜짝 놀랐습니다. 불신지옥 이후로 한국에서 나온 가장 훌륭한 공포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몇년간 공포영화 장르가 졸작들에 가까운 작품들로 매워지면서 공포장르는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 거의 사장되는 수준이었고, 장르팬들도 거의 포기하다시피한 상태라 정말 의외였습니다. 장르팬으로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개봉초부터 흥행세가 심상치않은데, 한국 공포영화 흥행기록은 확실히 갈아치울 것같네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연달아 벌어지는 살인사건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처음엔 범죄영화려니 되려 짐작할 법도 하지만, 영화는 대담하게도 살인사건과 관련된, 오컬트스러운 소문을 끼워넣으면서 범죄영화의 껍데기를 과감히 벗어버리죠. 이후 펼쳐지는 과정은 전통적인 호러영화의 공식에 가깝습니다. 한국판 엑소시스트라보면 딱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심오한 메시지나 주제를 담은 영화로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르영화로써 곡성은 팬들이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영화입니다. 모든 영화가 문학작품같을 필요는 없죠. 곡성은 장르영화라는 틀 내에서 두 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영화입니다.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은 장르영화의 공식을 따라가면서도 나름의 변주를 잊지않고 곡성만의 개성을 만들어갑니다.

 유머와 진지함의 사이를 오가는 초중반을 지나 주인공 딸의 빙의가 시작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물살을 타는데, 엑소시스트, 컨저링 등 미국 오컬트영화의 전개를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다만 미국 영화의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토속신앙으로 대체되면서 우리나라만의 공포영화가 된 것이죠. 무당과 굿이라는 소재가 제대로 활용된 적이 드물었기에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그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이 황정민이 맡은 일광역입니다. 실제 무당을 보는 듯한 독특한 연기도 좋았고, 그가 펼치는 굿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입니다. 영화의 터닝포인트에서도 일광의 역할이 매우 커서, 황정민은 영화 중반부터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존재감을 보입니다. 히말라야, 베테랑같은 그가 최근 출연했던 천만 영화의 연기들도 결코 나쁘지는 않았지만, 곡성에서 보여준 황정민의 연기에 비교해보면 재능낭비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장르공식을 따라가다 싶다가 영화는 3막의 반전 아닌 반전이 펼쳐지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반전을 통해서 영화의 선악구도가 뒤흔들리게 되고, 여기부터는 이제 누가 진짜 범인(?)인지를 알아내가는 추리게임적인 재미가 추가됩니다. 천우희가 맡은 무명은 초반부터 굉장히 모호하게 그려지는데, 그런 캐릭터 묘사역시 후반부를 위한 세팅임을 알아채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되는 쾌감이 느껴지죠. 관객은 이제 주인공과 함께 관객들은 무엇을 믿어야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됩니다. 외부인과 무당, 미친 여자 서로를 지목하는 체스게임이 이 영화 최고의 백미라 볼 수 있습니다.

 결말은 이해가 가면서도 상당히 아쉽습니다. 결말을 설명하기위해 주인공과 무명의 만남 외에 신부와 외지인의 만남이 교차편집으로 보여지는데, 외지인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부분이 너무나 직접적입니다. 대화만으로 처리해도 됐을법한 부분에 지나치게 명백한 시각적 묘사를 곁들임으로써 화호유구처럼 느껴지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외지인과 신부의 대화 자체가 정말 잘 써져있어서, 나머지 부분 정도는 관객의 상상에 맡겨도 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결말뿐만 아니라, 영화 곳곳에 배치된 시각적 요소들[각주:1]이 때때로 지나쳐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외지인의 정체는 정말로 무섭게 잘 그려졌고, 이중반전을 취하면서 영리하게 드러났다는 점은 분명 칭찬할만합니다. 주인공 가족의 운명은 처연해서, 기존 권선징악을 기대하던 관객들의 맘에는 들지 않겠지만, 배드 엔딩이란 자체가 관객들의 기대를 어긋나면서 신선함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 P. S. : 최근 보았던 한국영화들 중 가장 아름답게 촬영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황정민의 첫 등장씬은 샤이닝의 오프닝을 연상케해요. 마을 배경이나 산 전경 묘사도 일품.


P. S. 2 : 외지인 역할의 쿠니무라 준은 어디서 본 것 같은 인상이었는데, 킬빌 Vol. 1의 타나카 보스역을 맡았더라구요. 오렌 이시에게 대들었다가 끔살당했던 그분! 아무튼, 쿠니무라 준은 황정민과 함께 이 영화 최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1. 피해자들의 모습, 귀신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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