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는 없다 Rupture

스티븐 셰인버그 감독 / 누미 라파스 주연

 온전히 누미 라파스때문에 보러간 영화였는데 이번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중 제일 재미없었습니다. 의문의 조직에 납치된 한 여자의 고군분투를 그린 스릴러극입니다. 중반부 갑자기 등장하는 SF요소와 후반부 조직의 정체가 그다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조직의 정체와 함께 이들이 일반인을 납치하는 이유에 충분한 당위성이 있어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 실패한 것 같습니다. 장르영화인데 장르적 쾌감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더러, 내용적 부실함까지 배가 되어 여러모로 엉망이었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맥없이 이어지는 결말부분도 불필요하게 느껴졌구요. 누미 라파스의 연기빼곤 정말 아무것도 볼 것이 없더군요. 



네온 데몬 The Neon Demon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 / 엘르 패닝 주연

 감각적인 예고편과 호기심을 일으키는 시놉시스 때문에 이번 영화제에서 제일 기대했던 작품. 드라이브와 온리 갓 포기브스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왔던 감독답게, 이번 영화 역시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편입니다. 모델을 꿈꾸며 LA로 입성한 16살 소녀, 제시의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현대사회 속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호러장르와 결합시켜서 접근했다는 점이 무척 참신했습니다. 영상미 위주로 전개되다보니 호러영화의 빠른 속도감을 기대하셨던 분들은 실망하실수도 있습니다. 엘르 패닝, 제나 말론, 애비 리 등 할리웃의 새롭게 떠오르는 여성 유망주들의 연기대결을 보는 것도 재미. 자세한 리뷰는 개별 리뷰(클릭)로 대체합니다.



미드나잇 스폐셜 Midnight Special

제프 니콜스 감독 / 마이클 섀넌, 제이든 리버허 주연

 테이크 쉘터와 머드로 순식간에 차세대 명감독으로 떠오른 제프 니콜스 감독의 신작. 우리나라에서는 블루레이로 직행한 작품이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이번 부천국제영화제밖에 없더군요. 전작 머드가 느릿느릿한 진행때문에 조금 지루했었는데, 이번 영화는 초반부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서 좋았습니다. 요즘 SF영화와 달리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전개가 일품. 임팩트가 크진 않지만, 환상특급이나 스필버그풍 SF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세인트 빈센트로 좋은 인상을 남겼던 아역배우, 제이든 리버허가 이번 영화에서도 좋은 연기를 펼칩니다.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



맨 인 더 다크 Don't Breathe

페데 알바레즈 감독 / 제인 레비, 스티븐 랭 주연

 이블 데드 리메이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3년만의 신작. 빈집털이범 일당이 퇴직 군인출신 맹인의 집을 털다가 집주인의 엄청난 비밀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내용. 이번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제일 재밌게 본 작품이었습니다. 스티븐 랭의 차분하면서도 묵직한 연기가 굉장히 압도적.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적은 등장인물 수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근래 보기힘든 똑똑한 호러/스릴러 영화로 초반부터 결말까지 시종일관 관객들이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진 영화입니다. 정통 호러영화의 분위기가 느껴지면서도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은 점도 칭찬해주고 싶구요. 올 가을 국내 정식 개봉될 예정인데, 입소문만 잘타면 흥행도 노려볼 수 있지 않나싶네요. 감독의 차기작이 무척 기대됩니다.



영화제는 처음 참여해봤는데, 기존 극장에서 보기힘든 영화들을 한꺼번에 많이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맨 인 더 다크같은 상업영화부터 네온 데몬같은 예술영화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를 상영해줘서

장르팬들에게 사랑받는 영화제가 아닌가 싶더군요. 장르팬뿐만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이러한 영화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영화계의 다양성 증진에도 의의가 있었던 것 같구요.

올해는 영미권 영화만 보게되었는데 내년에는 좀더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에 도전해볼까 합니다. 


더운 여름 영화제 준비하느라 고생한 자원봉사자분들께도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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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신작, 네온 데몬은 금기에 도전하는 도발적인 작품입니다. 21세기는 지식못지 않게 '아름다움'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모두가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아름다운 외면에 나도 모르게 더 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기는 힘들 겁니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SNS가 확산되면서 아름다움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죠. 여성, 남성 할 것없이 모두가 외모지상주의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멋진 것들이 더 선호됩니다. 하지만,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 아름다움의 위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암묵적 금기처럼 취급되어 왔습니다. 아름다움과 나르시즘의 느슨한 연결아래 아름다움에 대해 직접적으로 토론하는 것은 속물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네온 데몬을 통해서 이 껄끄러운 주제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Beauty isn't everything. It's the only thing." 영화 속 디자이너가 던지는 이 한마디야말로 네온 데몬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대사입니다. 네온 데몬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은 영화 속 모든 비극의 씨앗이자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주인공 제시는 아름다움의 '화신'으로 등장하고, 그녀의 주변인물들은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인간상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제시는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그들을 비웃으면서 진정한 나르시스트로 거듭납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제시의 주변인물들, 지지와 사라, 루비가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은 굉장히 뒤틀리게 표현됩니다. 감독의 전작, 드라이브나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 드러났듯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표현의 수위에 있어서도 거침이 없는 감독이기에 이를 극단적으로 묘사합니다. 제시는 결국 그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먹혀버리기까지 합니다. 

 제시의 죽음과 이어지는 지지와 사라의 결말은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합니다. 지지의 자살과 사라의 각성(?)은 이 두 캐릭터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한편, 아름다움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줍니다. 둘이 맞은 비인간적인 결말을 생각해보면, 겉보기와 다르게 네온 데몬은 현대 사회에 대한 우화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름다움이 과연 인간성을 희생할만한 궁극적인 가치인지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지나치게 아름답고 스타일리쉬하게 만들어진 영화가 던지는 질문치고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러니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매력입니다. 

 시각적인 면에서 주제와 맞물려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재능이 십분 발휘되어 이제껏 그의 작품들 중 최고의 비쥬얼을 선보입니다. 다만 시각성에 치중하다보니 영화의 시퀀스 하나하나가 지나칠 정도로 길어졌고, 대사의 양도 매우 적습니다. 가끔은 무성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비쥬얼에 치중한 나머지 내용이 빈약하다는 비판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모든 영화가 대사와 액션 위주의 상업영화의 구도를 따라갈 필요도 없을 뿐더러, 이 영화는 기존 공식을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충분히 자신의 의도를 잘 전달하고 있으니까요. 내용의 비중이 적다보니 영화가 마치 거대한 몽타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감각적인 사운드트랙 덕분에 지루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대사위주의 내용전개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겐 이러한 점들이 영화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 장벽만 잘 뛰어넘으면 생각보다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예술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주의 영화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가운데서도 아직까지 감독의 존재감으로 가득찬 네온데몬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대형 스튜디오의 지배 아래 미국과 한국 가릴 것 없이 최근 영화계는 간단명료하고 친절한 영화들로 가득해졌습니다. 관객의 해석과 생각을 요구하는 영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런 영화도 보면서 다른 시각, 다른 생각을 지켜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네온 데몬은 오랜만에 그런 생소한 재미를 가져다줬던 작품입니다. 공허해보이면서도 온 세상을 가득채우고 있는 아름다움의 아이러니를 느껴보고 싶다면 꼭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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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네온 데몬' 본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엘 패닝이 얼굴빵을 당하는군요(...)

이제 며칠있으면 칸 영화제에서 공개되겠네요. 현재 미국 개봉은 6월 24일로 잡혀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빨리 수입해오면 좋겠네요. 다만 장르가 장르인지라...


The Neon Demon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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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의 신작, 네온 데몬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예전에 공개되었던 포스터가 너무 강렬해서, 궁금했던 작품이었는데 티저 예고편도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LA패션계에 입문한 신인모델과 그녀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탐내는 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호러영화라고 합니다.

정통호러라기 보다 아무래도 블랙스완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네요.


The Neon Demon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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