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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7.25 [Review] 네온 데몬(The Neon Demon, 2016) 1

*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신작, 네온 데몬은 금기에 도전하는 도발적인 작품입니다. 21세기는 지식못지 않게 '아름다움'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모두가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아름다운 외면에 나도 모르게 더 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기는 힘들 겁니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SNS가 확산되면서 아름다움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죠. 여성, 남성 할 것없이 모두가 외모지상주의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멋진 것들이 더 선호됩니다. 하지만,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 아름다움의 위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암묵적 금기처럼 취급되어 왔습니다. 아름다움과 나르시즘의 느슨한 연결아래 아름다움에 대해 직접적으로 토론하는 것은 속물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네온 데몬을 통해서 이 껄끄러운 주제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Beauty isn't everything. It's the only thing." 영화 속 디자이너가 던지는 이 한마디야말로 네온 데몬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대사입니다. 네온 데몬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은 영화 속 모든 비극의 씨앗이자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주인공 제시는 아름다움의 '화신'으로 등장하고, 그녀의 주변인물들은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인간상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제시는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그들을 비웃으면서 진정한 나르시스트로 거듭납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제시의 주변인물들, 지지와 사라, 루비가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은 굉장히 뒤틀리게 표현됩니다. 감독의 전작, 드라이브나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 드러났듯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표현의 수위에 있어서도 거침이 없는 감독이기에 이를 극단적으로 묘사합니다. 제시는 결국 그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먹혀버리기까지 합니다. 

 제시의 죽음과 이어지는 지지와 사라의 결말은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합니다. 지지의 자살과 사라의 각성(?)은 이 두 캐릭터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한편, 아름다움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줍니다. 둘이 맞은 비인간적인 결말을 생각해보면, 겉보기와 다르게 네온 데몬은 현대 사회에 대한 우화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름다움이 과연 인간성을 희생할만한 궁극적인 가치인지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지나치게 아름답고 스타일리쉬하게 만들어진 영화가 던지는 질문치고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러니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매력입니다. 

 시각적인 면에서 주제와 맞물려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재능이 십분 발휘되어 이제껏 그의 작품들 중 최고의 비쥬얼을 선보입니다. 다만 시각성에 치중하다보니 영화의 시퀀스 하나하나가 지나칠 정도로 길어졌고, 대사의 양도 매우 적습니다. 가끔은 무성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비쥬얼에 치중한 나머지 내용이 빈약하다는 비판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모든 영화가 대사와 액션 위주의 상업영화의 구도를 따라갈 필요도 없을 뿐더러, 이 영화는 기존 공식을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충분히 자신의 의도를 잘 전달하고 있으니까요. 내용의 비중이 적다보니 영화가 마치 거대한 몽타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감각적인 사운드트랙 덕분에 지루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대사위주의 내용전개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겐 이러한 점들이 영화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 장벽만 잘 뛰어넘으면 생각보다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예술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주의 영화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가운데서도 아직까지 감독의 존재감으로 가득찬 네온데몬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대형 스튜디오의 지배 아래 미국과 한국 가릴 것 없이 최근 영화계는 간단명료하고 친절한 영화들로 가득해졌습니다. 관객의 해석과 생각을 요구하는 영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런 영화도 보면서 다른 시각, 다른 생각을 지켜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네온 데몬은 오랜만에 그런 생소한 재미를 가져다줬던 작품입니다. 공허해보이면서도 온 세상을 가득채우고 있는 아름다움의 아이러니를 느껴보고 싶다면 꼭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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