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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2.01 [Review] 알리타: 배틀 엔젤(Alita: Battle Angel, 2019)

 시리즈의 스타트를 끊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동시에 캐릭터도 구축해야 하고, 후속작에 대한 기대까지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죠. 많은 '1편'들이 지나치게 많은 역할로 인해 갈팡질팡하다가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 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알리타 역시 이러한 1편의 함정에선 자유롭지 않습니다. 2시간이란 러닝 타임동안 지나치게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전개는 급해지고, 설정구멍도 눈에 띄는 편입니다.

 빠른 전개로 인해 캐릭터들의 변화나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든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실사영화에서는 어느정도 여유를 두고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엔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전개가 너무 많아요. 카메론과 로드리게즈가 몇편의 시리즈를 구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편에선 조금 느긋하게 가야 했습니다. 

 영화는 원작의 1, 2권과 3권의 전반부만을 다룹니다.[각주:1] 플롯의 큰 두 줄기가 되는 이도 박사와 휴고의 이야기는 각각 한 편의 영화에 따로 담아도 될 정도 매력적입니다. 두 명 다 이중성을 지닌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라 주인공보다 흥미롭게 그려낼 수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데 영화는 이 둘을 100%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휴고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담당하면서 깊은 인상이라도 남겼지만, 이도 박사는 해설역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럴바에야 무게 중심을 휴고 이야기쪽에 두고 이도 박사 이야기는 더 과감하게 쳐냈어야 합니다. 두 이야기를 모두 다루고 싶었다면 러닝 타임을 적어도 10~20분 정도 늘려야 했구요.

 아쉬운 점이 많긴 해도 그동안 제작되었던 일본 만화 실사화 영화들과 비교하면 알리타: 배틀 엔젤은 현존하는 최상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이버펑크풍 디스토피아 배경이 근 20년간 수많은 SF영화들에서 자가복제 되면서 고유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점이 아쉬우나, 만화를 찢고 나온듯한 비쥬얼 자체가 주는 힘은 강력합니다. 예고편 공개 이후 여러모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알리타의 큰 눈은 막상 영화를 볼 때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으며, 비인간적인 비쥬얼이 사이보그와 인간 사이에서 펼쳐지는 알리타의 존재론적 갈등을 구현하는데 기여합니다. 오히려 실사배우의 얼굴과 CG몸체를 그대로 합성한 다른 사이보그들이 알리타보다 기괴한 느낌이 강한데, 모두 빌런들이기 때문에 이런 비호감적인 요소가 플러스가 된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액션 역시 만화를 보며 독자들이 상상했던 판타지를 그래도 옮기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원작팬이라면 결코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사이보그들의 초인간적인 신체적 스펙을 활용한 호쾌한 액션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상당한 수위의 폭력을 보여주는 원작 속 액션을 그대로 영상화하는 것이 가능할지 걱정스러웠는데 영화는 폭력의 대상이 인간이 아니란 점을 십분활용해서 12세 관람가(PG-13)의 한계를 시험합니다.[각주:2] 그런 점에서 팬들은 환호를 외치겠지만, 어린 관객들에겐 상당히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보호자의 유의가 필요합니다.

 리뷰 전반부에 걸쳐 내용전개나 캐릭터 구축에 있어 많이 지적하긴 했지만, 단점이 많을 지언정 기존 헐리웃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소재의 맛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특히 메인 플롯의 주축이 되는 알리타와 휴고의 로맨스는 뇌리에 박힐 정도로 굉장히 충격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깊이는 얕을 지언정 액션 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는 점도 알리타: 배틀 엔젤을 제가 높이 사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알리타: 배틀 엔젤은 최근 블록버스터물들 중 보기 드물게 독특한 개성을 갖춘 작품입니다. CG로 떡칠된 블록버스터에 이제 질렸다 싶은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만의 개성이 어필할 만한 여지는 분명 있다고 봅니다. 안전하고, 무난한 영화들로 점철된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과연 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합니다. 

  1. 이 분량은 원작의 OVA와 정확히 같은 분량인데, 영화는 이 OVA의 전개를 복사라도 한듯 정확하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급전개도 여기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본문으로]
  2. 인간의 신체절단도 그대로 묘사하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 두 국가 모두에서 어떻게 심의를 받은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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