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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11 [Review]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2005)
  2. 2013.11.10 [Review] 카운슬러(The Counselor, 2013)


이 영화는 볼까말까 고민하다가 개봉한지 10년이 다되서야 보게되는군요.. 저도 어렸을 적엔 에픽물, 전쟁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때문에 이 영화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 리들리 스콧감독은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작품마다 편차가 확실히 존재하는 감독이다보니 취향에 맞지않겠다 싶으면 보기가 좀 꺼려집니다. 더군다나, 킹덤 오브 헤븐은 스콧감독의 영화가 확실히 편집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실로 증명해주는 케이스라 더욱더 꺼려질 수밖에 없었어요.

 당연히 역사 전쟁물에 있어서 명작의 평을 받고있는 감독판을 감상했습니다. 찾아보니 영화에 맞게 실제 역사를 많이 각색하긴했지만, 뚜렷하고 멋진 주제로 각색의 영향이 많지 않다는 게 중론이더군요. 확실히 영화는 재미있고, 생각해볼 꺼리를 던져준다는 점이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전세계의 뜨거운 감자로 군림중인 '종교'에 대해 이렇게 중립적이고도 객관적으로 접근한 영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헐리웃 영화에서 늘 부정적으로만 그려졌던 무슬림들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 정말 좋았습니다. 십자군 전쟁에서의 무슬림세력을 악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악역 역할을 내부세력으로 옮김으로써, 영화가 나타내고자하는 종교와 평화가 가지는 의미를 좀 더 강조하는 쪽으로 잘 전달되었습니다. 많은 메인 캐릭터들이 종교라는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따라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주인공 발리앙이 대표적이지만, 보두앵 4세와 살라딘, 두 캐릭터가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서로를 적으로 여기기 전에 타협해서 공존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는 캐릭터들이잖아요. 영화화를 거쳐 실제와 물론 다르긴하겠지만, 오늘날 종교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역사속의 인물들을 통해 이렇게 보여주니 아이러니한 동시에 교훈적이기도합니다. 종교라는 명목하에 저질러진 인류역사 속 수많은 비극들은 종교들이 서로를 맹목적으로 적대시하지 않고, 서로의 종교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선행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겠죠. 결론적으로, 킹덤 오브 헤븐은 이런 간단명료하고도 보편적으로 먹힐 수 있는 메시지를 실제 역사와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케이스입니다. 영화는 현대 정치 메시지를 역사물에 끼워넣다가 이상한 괴리감만 낳는 실수를 범하지 않습니다. 각색의 수준도 영화의 주제를 명료화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이뤄져서 역사의 큰 줄기는 건드리지 않았어요. 명석한 접근법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상당한 영화입니다. 주인공 발리앙의 올랜드 블룸과 시빌라역의 에바 그린을 제외하면, 대다수 주요 캐릭터들이 베테랑 연기자들로 채워졌습니다. (비중이 낮거나 단역 수준의 배우들도 잘 찾아보면 나름 미드에서 이름 좀 알린 분들이 많이 출연했더라구요.) 그중에서도 보두앵 4세역의 에드워드 노튼은 짧은 출연분량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존재감을 남겨줘서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병과 주변의 압박을 이겨내고 자기 정치를 펼치는 성군연기가 일품이예요. 작중내내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노튼 특유의 앳되면서도 선한 목소리만으로도 단번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가면사이로 보이는 눈빛연기도 좋았구요. 배역에 딱 맞는 이미지의 배우가 캐스팅된 것같습니다. 주인공역의 올랜드 블룸일경우 지금도 연기를 별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역시 이런 역사물에 잘 어울리는 것 같긴합니다. 캐릭터 자체가 올곧고 정직한 터라 연기가 좀 뻣뻣해도 어느정도 커버가 되더군요. 다만 커버해도 주변 온사방에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선배들이 많이 포진해있어서 비교되는건 사실입니다(...) 시빌라역의 에바 그린의 경우, 들은바로 극장판에서 시빌라 비중이 편집으로 대폭 삭제되서 에바 그린이 엄청 실망했다고 하던데 감독판은 엄연히 극중 히로인으로 굉장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팬으로서, 그냥 남주인공 여친역으로 사라질 줄 알았는데 시빌라 나름대로의 스토리라인도 엄연히 존재하고, 그녀가 겪는 갈등과 삶이 굴곡있게 그려져서 정말 좋았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이 헐리웃 첫 진출작인데, 최근 작품들만큼의 연기를 보여줘서 놀랐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은 역사를 바라보는 영화만의 시각, 주제, 배우들의 호연, 철저한 고증이 잘 어울어진 에픽물계의 명작입니다. 저처럼 역사나 종교에 관해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몰입시킬수 있을 정도로 매력도 다분하고, 영화 자체만으로도 그냥 재미있습니다. 3시간이면 정말 너무 길어서 토할정도는 아니었는데 애초에 이걸 극장에 걸것이지, 20세기 폭스사는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요? 관객들은 무조건 2시간짜리의 생각없는 폭풍전개 액션물만 좋아할 거라 생각한걸까요?.. 좋은 스토리가 있고, 완성도도 따라주는데 좀더 자신감을 밀고, 관객들의 수준을 믿었어야 했습니다. 물론 감독판을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한 스콧 감독도 잘한건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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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개봉이 다음주라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떡하니 예매가 가능하길래 얼른 관람하고 왔습니다. 영화사에서 홍보차원으로 마련한 유료 GV 시사회였습니다. 상영관 입장전 민음사에서 이달 초 출판한 코맥 맥카시의 각본판 책까지도 나눠줘서 무척 좋았습니다. 천천히 읽어보면서 영화화되면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비교해봐도 재밌을 것 같네요.
아무튼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헐리웃 대표 비쥬얼리스트답게 리들리 스콧 감독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영상미가 눈을 압도합니다. 차가움이 서려있는 코맥 맥카시의 각본과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세련된 연출이 뭔가 상반되면서도 굉장히 잘 어울려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감독의 전작, 프로메테우스와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내용에서 허술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구멍도 여기저기 보여요. 특히 영화에서 다뤄지는 범죄 자체가 여러모로 좀 두루뭉실하게 그려져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카운슬러가 처한 상황이 좀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영화 전체적으로 생각해볼 때, 영화는 '범죄' 자체보다 선택에 따른 결과에 반응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데 관심이 있긴합니다. 결과적으로 영화 속 '범죄'가 주제를 표현해내는 한 장치에 불과합니다만, 좀더 논리적이고 개연성있게 배치했다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코맥 맥카시가 각본에서 나타내고자한 선택과 결과, 인간의 이면성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은 영화에서 뚜렷한 해답을 주지 않기에 관객들이 다시한번 영화를 곱씹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시작되는 그런 류의 영화랄까.
파격적이고 노골적인 섹스묘사에 좀 놀랐는데, 영화가 예견된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펼쳐지는 인간의 생존욕구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일례로 말키나의 자동차신이 그 대표적인 예죠. 영화 속 가장 쇼킹한 장면이었는데, 이 여자가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레이너와 관객을 동시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사랑에 기초하는 카운슬러와 로라의 섹스가 두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반면, 이 자동차 신은 말키나의 비인간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주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위 자동차 신에서도 드러나듯 카메론 디아즈가 맡은 말키나는 결과적으로 볼 때, 영화 속 카운슬러가 겪는 좌절의 진정한 배후이면서 그의 선택에 따라 그가 겪는 또 다른 세계, 그 자체입니다. 말키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온도 없는' 현실 자체를 나타내는 캐릭터죠. 말키나의 세계는 그저 카운슬러가 자신의 세계로 들어와주길 기다리기만 했을뿐.. 영화 주제 자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캐릭터이기도하고, 마이클 패스벤더의 카운슬러는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무력한 캐릭터이기에 상대적으로 더욱더 빛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밝고 경쾌한 코미디 이미지가 강했던 카메론 디아즈를 기용했던 것이 오히려 반전된 매력을 가져와서 캐릭터를 극대화시키기도 했구요. 카운슬러, 영화 자체가 카메론 디아즈의 재발견이라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습니다. 혹독한 현지 평가만 아니었다면 연기상 수상까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결과적으로 눈과 귀(사운드 트랙 역시 좋습니다.)가 호강하는 비쥬얼 영화이기도 하지만, 코맥 맥카시 특유의 무미건조하면서도 철학적인 주제까지 담고있는 욕심많은 영화였습니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영화예요.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는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추락하고 좌절하는 주인공의 괴로운 모습을 보며 동정하거나, 여기서 만족을 느껴야하는 Guilty Pleasure를 찾는 편이 빠를겁니다. 이런 류의 영화와 다양한 열린 해석을 즐기는 관객들에게 분명 카운슬러는 매력적인 영화가 될 것임에 틀림없어요. 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 P. S. : 말키나 역할은 원래 안젤리나 졸리에게 갔었다죠? 만약 안젤리나 졸리가 캐스팅됐으면, 졸리가 피트를 죽이는 괴랄한 연출이...
 게다가, 크루즈-바르뎀에 이은 졸리-피트, 두 부부가 동시에 캐스팅된 영화가 되었을겁니다.

+ P. S. : 영화가 예정된 상영시간에 시작하다가 갑자기 툭 끊기고 다시 시작했었어요. 근데, GV시간까지 촉박하다고 영화사 직원이 영화 크레딧을 잘라먹는 통에 관객들의 강력한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전 영화 크레딧까지 챙겨보는 편은 아닙니다만, 카운슬러처럼 여운있는 영화는 크레딧 올라가면서 생각도 좀 하고 앉아있는터라 갑자기 툭 끊어지는 크레딧이 좀 깨긴했어요... GV는 궁금하긴했지만 기분도 상하고해서 그냥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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