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퍼펙트 케어는 법적후견인 제도의 빈틈을 파고들어 무력한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소시오패스 주인공, 말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고로 주인공이 빌런이란 말씀. 어설프게 빌런에게 동정심을 살만한 슬픈 과거사나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식의 사탕발림이 없다는 점은 칭찬할 만합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말라에게 털리는 죄 없고, 운도 없는 노인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관객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말라 본인과 그 주변인물들(애인과 의사, 요양원 관리자 등)은 하나같이 본인들의 행동에 일말의 죄의식도 없기 때문에 말라의 스토리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적대자나 희생자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 정말 독특한 영화입니다. 관객 입장에서 감정을 이입할만한 주조연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죠.

 일반적인 안티 히어로 영화라면 적어도 주인공보다 더 사악한 적대자 포지션의 캐릭터를 제시함으로써 주인공 캐릭터에게 어느정도의 감정이입을 허락하는게 보통입니다. 빌런 중심의 영화라면 주인공이 왜 빌런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제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희생자 캐릭터에 어느정도 스포트라이트를 배분해서 주인공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복수하도록 함으로써 장르적 쾌감을 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퍼펙트 케어'는 이 중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뒤지길 바라는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물론 관객이 주인공보다 악역을 응원하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는 주인공이 하는 짓이 너무 멍청하고 비호감이거나 악역이 주인공보다 훨씬 멋질 때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영화의 완성도가 엉망이지 않는이상 이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퍼펙트 케어'는 이 경우에 해당한다 보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후반부 완성도가 급격히 떨어지긴 하지만, 영화가 너무 엉망이여서라기 보다는 그냥 주인공이 너무 사악해서 죽길 바라는 감정이 더 큽니다. 안티 히어로나 빌런이 중심이 되는 영화는 많았지만, 이 정도로 관객이 주인공 캐릭터에 비집고 들어갈만한 틈을 조금도 주지 않는 영화는 정말 드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나마, 말라가 잘못건드린 피터슨 여사가 그나마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일텐데 영화는 피터슨 여사를 플롯 장치로 사용하는데 그칩니다. 그렇다면 적대자 포시젼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아들, 러시아 마피아 캐릭터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데 이 캐릭터는 그냥 관객의 기대치에 한참 못미치는, 그냥 덜떨어진 인물에 불과합니다. 명색이 마피아 보스인데 무력한 여자 두 명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걸보면 위협적이란 느낌은 단 1도 들지 않습니다. 러시아 마피아가 말라를 뛰어넘는 악역이거나, 기대이상의 시련을 안겨줌으로써 말라의 여정에 어느정도 굴곡을 주었어야 했는데 둘 중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하죠. 결국 영화에는 말라의 사악함에 대적할만한 적대자도 시련도 없습니다. 말라는 그냥 무적입니다.

 주인공을 막아서는 어떤 장애물도 존재하질 않으니 영화의 후반부는 그냥 날로먹기나 다름없습니다. 아무런 어려움이나 문제 없이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니 어떤 성취감도 없습니다. 관객들은 그저 방관자로서 지켜보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도 감독이 양심은 있었는지 말라는 권선징악적 최후를 맞긴합니다만, 이미 말라가 러시아 마피아와 손을 잡고 본인의 회사를 대기업으로 키운 상태기 때문에 그녀가 죽더라도 그녀의 유산은 누군가에 의해 이어질 확률이 100%입니다. 되려 영화 초반보다 상황은 나빠진거나 다름없습니다. 법적후견인 사기극이 아예 조직범죄가 되어버린 꼴이니까요. 억울하게 이 회사에 걸려든 희생자들이 풀려날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을 뿐입니다. 이걸 정의구현으로 보긴 힘들다 봅니다. 

 영화 초중반에 보여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날림전개와 플롯아머로 순식간에 날려버리기 때문에 곱씹어 볼 수록 개선의 여지가 너무나 뚜렷해서 더더욱 안타까운 영화입니다. 장르영화로서 살아남고자 했다면 앞서 언급했듯 주인공에 합당한 적대자, 시련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아예 희생자 캐릭터를 부각시켜 정의구현과 함께 장르적 쾌감을 추구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 사회 풍자극이 되고자 했다면 미국의 사법 시스템의 오류를 더 적나라게 파고들었어야죠. '퍼펙트 케어'는 이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이도저도 아닌게 됐습니다.

 주인공을 한없이 증오하게 만들다니 분명 신선한 시도였고, 절반의 성공은 인정하는 바입니다. 2시간 동안 피를 끓게 만들어준 로즈먼드 파이크의 열연도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좋은 소재와 캐릭터를 갖고도 이 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한건 분명 실책입니다.

:

[Review] 맹크(Mank, 2020)

movies 2020. 11. 30. 23:05 |

국내개봉 후 먼저 본 일반관객들의 지루하다는 평들이 좀 보이길래 넷플릭스에 뜰 때까지 기다릴까 고민도 많이 했네요, 실화 소재라는 점에서 '조디악'처럼 덤덤하게 일대기를 보여주는 형식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핀처 영화 중 유일하게 재미없게 본 영화였습니다...) 그래도 핀처의 신작인데 이왕이면 극장에서 보자란 생각으로 내리기전에 얼른 보고 왔습니다.

 하지만 보고난 영화는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핀처 커리어에서 톱3에 꼽아도 아깝지 않은 영화예요. 일단 맹크라는 주인공 자체가 괴짜 달변가라 지켜보기 참 재밌는 인물이예요. 여기에 주변의 마리온 데이비스,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루이스 B. 메이어, 오슨 웰스까지 개성 넘치는 주변인물들도 더해지면서 서로간에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개인적으로 취향저격이었습니다. 장르팬으로서 고전 스크루볼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화면이나 사운드, 편집 등이 고전영화(그 중에서도 '시민 케인')의 형식만 따랐을 뿐 핀처의 전작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빠른 페이스로 진행되는 점도 좋았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나 '나를 찾아줘' 등과 마찬가지로 핀처 영화 특유의 '리듬'도 살아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의 사전지식을 전제로 깐 감상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전 이런 류의 영화를 선호하진 않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전지식의 유무와 무관하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더 좋은 영화라 생각합니다.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했어도 배경지식과 무관하게 재밌게 만든 영화가 많기도 하구요. 각설하고 '맹크'로 돌아가자면, '맹크'는 오슨 웰스 감독의 '시민 케인'을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100% 즐길 수 없는 영화입니다. '시민 케인'의 내용이 영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건 아니지만, 영화의 굵직굵직한 사건 하나하나가 주인공 맹크의 '시민 케인' 각본 집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재미 자체가 이 사건이 '시민 케인'의 이 내용에 영감을 주었구나식으로 연결짓는데서 비롯되는 점도 있구요. 두 영화를 오가며 마지막 완성된 퍼즐을 보고 감탄할 수 있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영화기도 합니다. 감독 본인도 그걸 의도한 것 같구요. 주인공이 겪는 창작적 사투의 결과물로서 '시민 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알고 보느냐 모르고 보느냐는 천지차이입니다.

 문제는 '시민 케인'이 고전영화의 걸작으로 칭송받긴하나 현시점에서 볼 때는 큰 재미를 주는 작품은 아니란 점입니다. 저도 '맹크' 보기전에 억지로 꾸역꾸역 감상했는데 두 번이나 조는 바람에 무려 세 번째 도전에서야 겨우 다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봐도 세련된 테크닉을 구사하는 영화지만, 재미면에선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에 진입장벽이 꽤 높다고 생각됩니다. '시민 케인'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말은 고로 '맹크'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말이나 다름 없기에, '맹크'는 이전 핀처영화들과 달리 상당히 어려운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장벽만 뛰어넘는다면 '맹크'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전 핀처 영화들을 채웠던 차갑고 냉소적인 감성에서 벗어나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바라본다는 점도 신선합니다. 전작들에서 인물들이 핀처 특유의 완벽주의 무대 위에서 장기말처럼 움직였던 것과 달리 '맹크'에서 헐리웃 영화 산업의 무심한 일원이었던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성장하는 서사는 분명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후로 가장 인간미 넘치는 핀처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누구에게나 추천하긴 힘든 영화지만, 고전영화팬들이라면 필히 관람해야만 하는 영화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영화에 대한 사랑이 충만하신 분들껜 '시민 케인'과 함께 한 번쯤 (세트로) 도전해볼만한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구요.



P. S.: '시민 케인' 외에도 찰스 댄스가 연기하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란 인물에 대해 알고가는 것도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 그가 개입했던 프랭크 메리엄과 업튼 싱클레어의 주지사 선거에 관한 내용도 함께 알고 있으면 더욱 좋구요. 관람전에 간단히 검색해보고 가세요.

:

 영화는 심한 의처증을 보이는 남편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세실리아의 자취를 따라갑니다. 언니의 도움으로 세실리아는 가까스로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는데 성공하고, 얼마되지 않아 남편의 부고를 전해 듣게 됩니다. 부고를 접한 세실리아를 이내 덮치는 것은 안도 대신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다는 불안감입니다. 그리고, 세실리아의 예상은 적중합니다.

 '인비저블 맨'은 보이지 않는다는 투명인간의 특징을 영화 내외적으로 영리하게 활용합니다. 소재 자체가 그저 빈화면을 잠시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공포영화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효율적인 장치입니다. 언제 어디서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관객들을 주인공과 함께 항상 주위를 경계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서서히 고립되어가는 주인공의 처지와 겹치게되면 그 효과는 배가되구요.

 투명인간의 특징이 주제면에서 기여하는 부분도 무척 큽니다. 공포영화는 단순한 장르영화로 치부되기 십상인데 투명인간이란 소재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소재이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해석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정폭력에 대한 은유입니다. 투명인간의 보이지 않는 특징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지만 누구도 쉽게 볼 수 없고, 보여주기도 힘든 가정폭력의 특징과 일맥상통합니다. 사라진 남편으로부터 문자 그대로 쫓기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가해자가 있든 없든 그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찾아볼 수 있죠. 

 가해자 남편의 스토커적인 면모는 감시사회, 관음증에 대한 혐오를 연상하기도 합니다. CC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이 필수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은 단순히 남여관계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공포심을 자극합니다.

 최근 헐리웃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에 편승한 얕은 접근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될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신다면 생각이 달라질거라 확신합니다. 이 영화는 관객을 교화하려 들거나 무거운 주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소모하지도 않습니다. 가정폭력이란 결코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지만 이를 다루는 영화의 태도는 결코 가볍지 않죠. 그런 태도가 이 영화에 무게감을 부여하지만, 한편으론 여기서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영화 러닝타임 내내 약자입장인 주인공에게 폭력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보니 관객들이 불편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인 주인공이 속수무책으로 주구장창 당하고만 있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관객입장에선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즐겨도 되는건가?'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영화 속 공포나 긴장감의 조성이 관객들이 오락영화에서 기대하는 유희 목적의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보니 오히려 보고나면 기분나쁜 불편한 영화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거죠. 물론 영화의 구조 자체는 기존 헐리웃 공포영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습니다. 예상하듯 결국 주인공은 승리하고,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니까요.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인 톤 덕분인지 폭력이 끝났을 뿐 누구도 승리하진 못했다는 인상이 더 강합니다.

 결론적으로 '인비저블 맨'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기존 투명인간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성공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던 만큼이나 누구에게 선뜻 추천하긴 힘든 영화기도 하며 개인적으로는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는 불편한 명작입니다. 장르팬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봐도 좋을 법한 영화지만, 아니라면 개인의 선택에 맡기고 싶습니다. 가정폭력 가해자들에게 교화용으로 강제관람하게 만든다면 효과적인 처벌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

 시사회를 통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프론트 러너로 활약중인 '1917'을 감상하고 왔습니다. '1917'은 적진을 가로질러 1,600명 아군의 목숨이 달린 편지를 전달하는데 투입된 두 병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동안 FPS게임을 하는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카메라가 러닝타임 내내 롱테이크로 주인공을 잡고있기 때문에 제한된 관객의 시야가 관객들로 하여금 게임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유사체험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간단명료한 스토리까지 겹쳐져 장군의 편지를 전달한다는 임무가 주인공 뿐만 아니라 주인공에게 동화된 관객들의 목표가 된다는 점 역시 엔딩을 목표로 게임을 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게임적인 체험(또는 몰입)이 주인공과 동화된 관객들로 하여금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게 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는 측면에서 '1917'이 가진 게임과의 유사성은 단순한 기믹 이상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17'에서의 '체험'은 액션에만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 아니라 쉬어가는 구간처럼 보이는 작은 장면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널부러진 과일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휘날리는 꽃잎이 손에 닿는 그런 소소한 장면 역시 주인공과 함께 느낌으로써 영화는 관객들에게 전장에서 피어나는 일상에 대한 향수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킵니다. 그러한 작은 장면들이 모여서 액션씬들에 무게감을 더하고, 더 나아가 영화의 주제적 측면에도 기여합니다. '1917'은 내내 휘몰아치는 태풍으로 관객들을 몰아세우고 압도하기 보다는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이따금씩 비를 피하게 해주면서 관객이 맑은 날씨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에 가깝습니다.

 물론 제작진은 '체험'에 방점을 두고 영화를 기획한 것이겠지만, 의도든 아니든 요즘 관객들에게 생소한 1차 세계대전이란 소재나 이제는 슈퍼히어로물로 대체되어버린 전쟁장르의 현상태를 고려할 때 '1917'이 제공하는 게임적인 체험은 게임이나 VR에 익숙한 신세대 관객들과 영화간의 거리감을 줄여주는 '무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클래식 전쟁물이 가진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 시대에 걸맞는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1917'은 구세대와 신세대를 모두 아우르는 2010년대의 대표 전쟁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뛰어난 완성도와 별개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역대급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현시점에 국내에 공개된다는 점이 무척 아쉬울 따름입니다. 

:

 *본문에 영화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주의해주세요.

 블록버스터로써 나쁘진 않습니다. 다만 1편과 2편 성공의 일등공신인 제임스 카메론의 복귀[각주:1]로 시리즈 팬들의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은 것치곤 실망스러운 작품입니다. 1편과 2편의 호러/스릴러적 요소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스토리적으로는 2편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신선함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크 페이트의 가장 큰 패착은 애매한 세대교체에 있습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의 복귀는 다크 페이트에서 '득'이 아니라 '실'입니다. 원년 멤버들의 복귀가 화제성 측면에서 영화의 홍보나 초반 흥행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스토리상 사라 코너와 T-800의 이야기와 신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엮는 과정에서 신 캐릭터들이 피 봤습니다. 특히 새로운 사라 코너+존 코너 역할을 맡은 대니 라모스일 경우 부득이하게 사라 코너와 캐릭터가 겹치면서 도무지 활약할 구석이 하나도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대니역할 배우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한 게 뭐냐 식으로 비판하는데 대니가 아무것도 안 한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대니가 할 일을 사라가 대신해주는 부분도 너무 많습니다. 미래의 저항군 리더로서 리더십을 보여줘야할 인물은 대니인데 영화 속에서 정작 주인공 일행을 이끄는건 사라 코너가 다 하기 때문이죠. 대니 캐릭터가 2편의 사라 코너가 아닌 1편의 사라 코너라 봐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입니다. 대니가 1편의 일반인 사라 코너 포지션이었다면 Rev-9에게 쫓기는 과정에서 대니에게 동기를 부여했어야 하는데 다크 페이트는 이 과정에 사라 코너와 T-800의 이야기를 우겨넣다 보니 대니의 여정,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지 못합니다. 결국 영화를 보고나면 이게 대니의 이야기인지 돌아온 사라 코너의 이야기인지 애매해지는거죠.

 대니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신 캐릭터, 그레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레이스가 전면에 나서서 Rev-9와 맞붙어야 관객들이 이 캐릭터에 더 몰입할 수 있을텐데 그레이스가 조금이라도 활약하겠다 싶으면 어김없이 사라 코너가 끼어들고, T-800이 끼어듭니다. 그레이스는 대니에 비하면 액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좀 더 존재감은 있었으나 역시나 비중문제에선 구 캐릭터들로 인해 피해를 많이 봤습니다. 신 캐릭터들 중 가장 호감이었는데다 캐릭터 자신만의 개성도 뚜렷하고, 대니보다 나은 자신만의 스토리까지 갖추고 있었음에도 결국 엔딩에 가선 죽어버리는게 무척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캐릭터가 가진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것도 억울한데 후속편에 출연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없애버리다니, 이건 분명한 실책입니다.

 차라리 후반부에 사라 코너와 T-800이 협공해서 Rev-9을 막고, 대니와 그레이스를 살려야 했습니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생존자는 사라 코너와 대니 라모스인데 이건 뭐 세대교체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것도 아니고 애매한 맛만 남겨버렸습니다. 호쾌한 액션을 위해서라도 그레이스와 대니 콤비가 남는게 더 나았을텐데 대체 무엇 때문에 할머니가 다 되가는 사라 코너와 대니를 붙여둔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 시작부터 존 코너를 죽일 패기는 있었으면서 왜 끝까지 사라 코너는 놔주지 못한건지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사라 코너와 T-800, 노장들의 희생으로 새로운 세대가 살아남고 어두운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이런 결말이 훨씬 깔끔했을텐데 말이죠.

 새로운 캐릭터들로 확실하게 세대교체를 이루고, 프랜차이즈를 확장하고 싶었다면 신 캐릭터들에게 스토리의 초점을 맞추고, 적절한 러닝타임을 할애했어야 합니다. 다크 페이트는 올드팬과 새로운 관객을 모두 잡으려고 욕심만 부리다가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버린거 같아 무척 아쉬웠습니다.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1, 2편의 주제적 측면을 계승하는 것이지, T-800과 사라 코너가 아닙니다. T-800과 사라 코너만으로 시리즈를 계속 하기엔 세월이 너무나 흘러버렸고 두 배우의 체력적 한계도 너무 명확합니다. 특히, 시리즈의 간판이라 볼 수 있는 T-800 역시 앞서 만들어진 속편들에서 이미지 소비가 너무 많았습니다. 다크 페이트는 새로운 피 수혈을 통한 세대 교체의 기회를 추억팔이에 놓쳐버렸고, 시리즈의 미래는 어느때보다 암담합니다. 어쩌면 시리즈의 운명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또다시 안전함을 추구하다 놓친 격입니다. 영화의 부제와 마찬가지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미래에도 '어두운 운명(Dark Fate)'의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1. 물론 스토리와 각본 한정이지만, 그가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으로]
:

 타란티노 영화팬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저의 기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높았습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 일까요? 영화를 보고난 뒤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입니다. 사전지식이 충분하다면 이 영화의 여러가지 레퍼런스들을 즐기며 감탄을 연발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은 영화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전 타란티노 영화들이 오마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긴 했지만, 오마쥬는 보너스 개념이었지 영화 자체를 즐기는데 관여하진 않았습니다. 반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관객들이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에 대한 사전지식을 구비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주제를 정하고, 내용을 전개해나갑니다. '폴란스키가 살인사건'만 해도 관객의 부담이 상당한데 여기에 '60년대 할리우드'라는 배경이 갖는 중요성마저 상당히 큽니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두고 타란티노가 60년대 할리우드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을 살아가는 관객들 중 이 테마에 공감할 수 있는 관객들이 몇이나 될까요? 영화내에는 60년대 영화와 TV쇼에 대한 레퍼런스가 넘쳐납니다. 이러한 레퍼런스들은 영화학도나 평론가가 아닌 이상 100% 이해가 힘듭니다. 60년대 헐리우드 영화나 TV쇼가 현재만큼 전세계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상황을 감안하면 60년대를 보낸 한국노인들도 이 영화에 공감하긴 힘들거예요. 영화내에서 당시 시대상이나 무비 메이킹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긴 하지만 관객들이 바란것은 '타란티노 영화'이지 '타란티노의 영화사 해설'이 아닙니다. 결국 영화는 초반부부터 지루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메인 이벤트인 찰스 맨슨의 스토리라인은 사전지식 문제와 별개로 메인 스토리라인을 계속 겉돌기 때문에 재미가 떨어집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초중반 찰스 맨슨 패밀리가 찔끔찔끔 등장하며 떡밥을 뿌려대다가 후반부 주인공 일당과 엮이면서 3막을 장식하는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초중반에 이 두 스토리라인이 너무 따로 놀다보니 3막에서 메인 스토리라인과 합쳐지는 과정도 이전 타란티노 영화들처럼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시원함이 부족합니다.[각주:1] 영화적 구성에서 영리함과 재치를 잃어버리니 타란티노만의 개성도 죽고, 퇴보한 느낌마저 듭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에서 찰스 맨슨 사건을 끌어온 이유가 찰스맨슨 사건을 통해 60년대 미국의 이상주의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 사건이 미국 사회문화 전반에 끼친 충격여파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해석입니다. 그런 주제의식 측면에서 60년대 할리우드란 배경과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은 훌륭한 조합이라 생각하지만, 주제의식을 구현하는 영화 속 실행과정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지루한 초중반을 견딘 관객들한테 후반부가 팡 터져줘서 카타르시스라도 느끼게 해줬어야했는데 이번 영화는 그마저도 신통치가 않습니다. 후반부가 그나마 우리가 익히 알고있던 타란티노 영화의 진수에 가장 가깝긴 하지만, 타란티노의 장기인 인물들의 맛깔스런 대화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서스펜스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은 드물게 아는 자와 모르는 자를 모두 만족시켰던 감독입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처음으로 그는 그 균형을 깨뜨리고 좀 더 편향적인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어차피 영화란 주관적인 매체이니 그의 선택을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할 겁니다. 하지만, 대중의 입장에서 섭섭함을 숨기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1. 3막에서 시전되는 '비틀기'는 철저히 관객들의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에 대한 사전지식에 의존합니다. [본문으로]
:

 시리즈의 스타트를 끊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동시에 캐릭터도 구축해야 하고, 후속작에 대한 기대까지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죠. 많은 '1편'들이 지나치게 많은 역할로 인해 갈팡질팡하다가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 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알리타 역시 이러한 1편의 함정에선 자유롭지 않습니다. 2시간이란 러닝 타임동안 지나치게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전개는 급해지고, 설정구멍도 눈에 띄는 편입니다.

 빠른 전개로 인해 캐릭터들의 변화나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든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실사영화에서는 어느정도 여유를 두고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엔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전개가 너무 많아요. 카메론과 로드리게즈가 몇편의 시리즈를 구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편에선 조금 느긋하게 가야 했습니다. 

 영화는 원작의 1, 2권과 3권의 전반부만을 다룹니다.[각주:1] 플롯의 큰 두 줄기가 되는 이도 박사와 휴고의 이야기는 각각 한 편의 영화에 따로 담아도 될 정도 매력적입니다. 두 명 다 이중성을 지닌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라 주인공보다 흥미롭게 그려낼 수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데 영화는 이 둘을 100%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휴고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담당하면서 깊은 인상이라도 남겼지만, 이도 박사는 해설역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럴바에야 무게 중심을 휴고 이야기쪽에 두고 이도 박사 이야기는 더 과감하게 쳐냈어야 합니다. 두 이야기를 모두 다루고 싶었다면 러닝 타임을 적어도 10~20분 정도 늘려야 했구요.

 아쉬운 점이 많긴 해도 그동안 제작되었던 일본 만화 실사화 영화들과 비교하면 알리타: 배틀 엔젤은 현존하는 최상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이버펑크풍 디스토피아 배경이 근 20년간 수많은 SF영화들에서 자가복제 되면서 고유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점이 아쉬우나, 만화를 찢고 나온듯한 비쥬얼 자체가 주는 힘은 강력합니다. 예고편 공개 이후 여러모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알리타의 큰 눈은 막상 영화를 볼 때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으며, 비인간적인 비쥬얼이 사이보그와 인간 사이에서 펼쳐지는 알리타의 존재론적 갈등을 구현하는데 기여합니다. 오히려 실사배우의 얼굴과 CG몸체를 그대로 합성한 다른 사이보그들이 알리타보다 기괴한 느낌이 강한데, 모두 빌런들이기 때문에 이런 비호감적인 요소가 플러스가 된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액션 역시 만화를 보며 독자들이 상상했던 판타지를 그래도 옮기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원작팬이라면 결코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사이보그들의 초인간적인 신체적 스펙을 활용한 호쾌한 액션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상당한 수위의 폭력을 보여주는 원작 속 액션을 그대로 영상화하는 것이 가능할지 걱정스러웠는데 영화는 폭력의 대상이 인간이 아니란 점을 십분활용해서 12세 관람가(PG-13)의 한계를 시험합니다.[각주:2] 그런 점에서 팬들은 환호를 외치겠지만, 어린 관객들에겐 상당히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보호자의 유의가 필요합니다.

 리뷰 전반부에 걸쳐 내용전개나 캐릭터 구축에 있어 많이 지적하긴 했지만, 단점이 많을 지언정 기존 헐리웃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소재의 맛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특히 메인 플롯의 주축이 되는 알리타와 휴고의 로맨스는 뇌리에 박힐 정도로 굉장히 충격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깊이는 얕을 지언정 액션 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는 점도 알리타: 배틀 엔젤을 제가 높이 사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알리타: 배틀 엔젤은 최근 블록버스터물들 중 보기 드물게 독특한 개성을 갖춘 작품입니다. CG로 떡칠된 블록버스터에 이제 질렸다 싶은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만의 개성이 어필할 만한 여지는 분명 있다고 봅니다. 안전하고, 무난한 영화들로 점철된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과연 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합니다. 

  1. 이 분량은 원작의 OVA와 정확히 같은 분량인데, 영화는 이 OVA의 전개를 복사라도 한듯 정확하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급전개도 여기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본문으로]
  2. 인간의 신체절단도 그대로 묘사하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 두 국가 모두에서 어떻게 심의를 받은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본문으로]
:

 대중문화에서 조롱의 대상이었던 캐릭터가 영화판에서도 하필이면 디씨의 바닥을 찍었던 저스티스 리그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아쿠아맨 솔로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낮았습니다. 저스티스 리그에서도 호쾌한 기합 소리를 빼면 그다지 기억에 남을만한 활약도 없었고, 저 역시도 예고편 공개전까지 이 영화에 대해 반신반의했습니다.

 공개된 결과물은 기대 이상입니다.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며 관객들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게임식 구조를 취해서 익숙하지 않은 아쿠아맨의 세계관을 소개하고, 서사를 진행시킨 점은 어드벤처물을 표방한 영화에 신의 한수가 됐다 봅니다. 주인공이 퀘스트를 깰 때마다 새로운 액션이 등장하고 시퀀스가 넘어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쿠아맨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상 '극장'이라는 거대한 스크린, 뛰어난 사운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매력이 반감되기 때문에 아쿠아맨은 더더욱 극장관람을 놓쳐선 안 될 영화입니다.

 정형화된 영웅담의 기본적인 서사구조를 따르고 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쉴새 없이 몰아치는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봅니다. 영화는 익숙한 내용과 유치한 대사, 평면적인 캐릭터까지 최악의 영화가 될 수 있는 삼박자를 두루 갖추고 있지만, 괜히 어줍짢게 묵직한 메시지나 캐릭터 드라마를 구축하려고 무리수를 두지 않습니다. 다크나이트 삼부작부터 시작되었던 디씨의 진지병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는 자신의 유치함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오히려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이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야말로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다른 디씨, 마블 영화들과의 차별점 역시 여기서 발생하며, 앞으로도 이 고유한 매력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아쿠아맨 시리즈의 장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