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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17 [Opinion] 마틴 스콜세지의 마블영화 비판에 관해...

 최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엠파이어지와의 인터뷰에서 마블영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자 영화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었습니다. 당시 그의 발언을 옮겨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저도 노력은 했어요." 마블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그건 시네마가 아닙니다.(But that’s not cinema.)"


 "솔직히 마블영화들은 배우들이 그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지만, 테마파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마블영화들은 인간의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시네마는 아니예요."

 위 인터뷰 이후 BFI 런던 영화제에서 가졌던 영화, '아이리쉬맨' 기자회견에서도 위 발언에 대한 추가질문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영화관은 테마파크가 되버렸습니다. 그것도 괜찮고 좋은 것이긴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런 테마파크에 점령당해선 안돼요." 

 "그런 종류의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에겐 괜찮고 좋은 일이죠.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기 때문에 저도 그들이 하는 일은 존경합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할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딱봐도 아니예요. 마블영화는 그걸 시네마라 생각하는 또 다른 종류의 관객을 만들어냈습니다."

 위 발언이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마블팬들과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시대를 못따라가느니 꼰대니 식의 온갖 종류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막무가내로 그를 욕하는 사람들이 그의 발언취지를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위 인터뷰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틴 스콜세지는 "마블영화는 영화가 아니다"가 아니라 "마블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콜세지 감독은 매체로서의 영화인 필름(Film)과 내러티브가 있고, 인간의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작품으로서의 영화인 시네마(Cinema)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을 이해하고 나면 스콜세지 감독의 발언이 마블영화는 영화축에도 못 낀다는 '비하'가 아니라, 그가 주로 만드는 시네마와 다른 종류의 영화임을 지칭한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업계에서도 저러한 용어적 구분이 통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들으면 오해를 살 수밖에 없는 발언임은 틀림없습니다. 당장 미국에서도 영화를 지칭하는 단어로 필름과 시네마가 혼용돼서 쓰이고 있고, 이러한 단어들은 한글로 번역하게 되면 필름이나 시네마나 둘다 '영화'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오해하기 쉽습니다.

 용어적 해석에 있어 그의 발언은 논쟁적 여지가 있고 분명 쎈 발언이지만, 저는 그의 발언이 틀린 말이라곤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의 발언 취지는 마블영화를 까내리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인간의 감정적, 심리적 경험을 전달하는' 시네마로서의 영화의 존립위기를 경고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틴 스콜세지가 왜 좀 쎄다 싶은 발언을 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만 해도 헐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은 블록버스터 영화로 돈을 벌면 마틴 스콜세지같은 감독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소규모 영화에도 투자를 많이 해줬습니다. 소수의 블록버스터로 안전하게 돈을 모은뒤 어느정도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있는 영화들에 투자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해왔던거죠. 당장 최근만해도 양극화는 심해졌을지언정 이런 식의 선순환은 아직도 적잖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마블이 속한) 디즈니는 애초부터 그런 식의 투자를 하는 스튜디오가 아니었습니다.[각주:1] 하지만, 그런 디즈니가 마블 스튜디오를 필두로 성공적인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해서 돈 넣고 돈 먹는 구조로 영화계를 재편시키자 말이 달라졌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면서 중소규모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극장이 블록버스터 보러가는 곳으로 전락해버리니 마틴 스콜세지같은 감독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헐리우드는 이제 마틴 스콜세지는 고사하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투자받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어요.

 다만 스콜세지 감독도 간과한 점은 있습니다. 그의 주 활동지인 미국일 경우 관객들에게 극장가는 일이 그의 전성기때 만큼 저렴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미국에서도 표값이 저렴했기 때문에 영화보러가는 일이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물가상승과 함께 표값이 크게 뛰어버렸고, 미국이면 당장 아이라도 있는 집인 경우 베이비시터 구해야지, 시내까지 가려면 차까지 몰고가야 합니다. 결국 올라버린 표값이나 베이비시터, 기름, 팝콘 등 이런저런 돈 드는걸 고려하면 현재 미국에선 영화관 가는 일 자체가 큰 맘 먹어야할 수 있는 일이 되버린 겁니다. 그만큼 극장가는데 투자하는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관객들은 표값은 하는 영화만 보고싶을테고, 여기서 토마토지수나 평론가들 평에 의존한 취사선택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로 뛰어나진 않더라도 일정수준의 재미는 보장하는 마블영화가 더 흥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미국에서 스콜세지 감독이 만드는 작품성있는 영화들, 소위 시네마들은 오스카 버프 없이는 흥행은 커녕 손익분기점도 넘기 힘들어졌습니다.[각주:2] 게다가 영화가 조금만 호불호가 갈리거나 논란이라도 있어봐요, 토마토지수, 메타지수가 50까지 폭락하고 관객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입니다. 실험적인 영화들도 갈 곳을 잃은지 오래입니다. 극장개봉을 그렇게 고집하던 스콜세지같은 명장도 '아이리쉬맨' 만들려고 넷플릭스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겁니다.

 스콜세지 감독의 마블 비판에 공감하지만, 그 발언이 너무 쎄서 대중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점은 백 번 인정합니다. 좀 더 신중한 워딩이었다면 훨씬 좋았겠죠. 하지만, 마블영화들의 점령으로 인한 미국 영화계의 다양성 실종과 양극화 심화를 보고있노라면 스콜세지가 할 말은 했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다행히도 중소규모 영화들이 스트리밍으로 옮겨가면서 완전히 설 자리를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극장=블록버스터 보러 가는 곳'이 되어버리는 건 영화팬으로서 좀 슬픕니다. (제작규모면에서 차이가 나는 국내영화계는 또 다른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계도 마블의 영향에선 결코 자유롭지 않고, 국내영화들도 대형 제작사들의 입맛에 맞는 오락영화만 즐비하고 있기 때문에 먼나라 일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아무리 넷플릭스로 집에서 영화 보는게 편할지언정 극장의 대화면, 고음질 스피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경험 자체는 절대 대체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말처럼 극장이 테마파크화 되어버렸다? 잘못된건 전혀 아닙니다. 어차피 영화산업도 돈벌려고 하는 일이고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만 만드는 것 또한 자본주의 논리로 치면 당연한 이치죠. 다만 누구든 똑같은 음식만 맨날 먹으면 질리지 않습니까? 매일 짜장면 먹다가도 가끔은 김밥도 먹고싶고, 어쩌다 한 번은 스테이크도 썰어보고 싶은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근데 막상 다른거 먹고싶은 날에도 메뉴에 짜장면밖에 없다면 그건 슬픈거죠. 모든 영화가 테마파크식 재미만 추구해선 안된다는 스콜세지 감독의 발언에도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희망이 사라진건 아닙니다. 최근 흥행하고 있는 '조커'같은 케이스도 있으니까요. 어두운 주제, R등급 진입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조커'에 호응해준 걸 보면 슈퍼히어로 붐은 당분간 계속될지 몰라도 좀 더 그 장르내에서 다양한 시도를 볼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조커'를 통해 관객들은 단순히 테마파크식 재미만 추구하지 않는다는걸 보여주었고, 디즈니(마블)도 이 영화의 흥행에 뭔가 느끼는게 있을것입니다. 슈퍼히어로 장르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영화계를 이끄는 주류가 된 현시점에서 '조커'같은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가 많아져서 작가주의 감독들이 설 자리도 만들어주고, 사라진 다양성도 좀 회복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 디즈니는 예전부터 애니든 실사든 돈 많이 들인 소수의 대작만 선보임으로써 운영해가던 스튜디오였어요. [본문으로]
  2. 네임드 감독들의 영화들이 죄다 10월부터 연말에 개봉이 몰려있는 것도 다 오스카 시즌을 노리기 위해서 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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