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5.25 [Review]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페미니즘 영화라고?

*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고왔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에게 쉴 틈도 안주고 전력질주하는 통에 보고나니 제가 다 피곤하더군요. 좋은 의미로 말이죠.

 해외평들을 읽어보니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평가하는 통에 대체 무슨 의민지 궁금했었습니다. 근데, 영화를 보고나니 이 영화는 정말 페미니즘 영화가 맞습니다. (전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최근 몇년간 여성 캐릭터가 이렇게 강렬하고 동등하게 그려진 적이 있었나요? 실제로 남자들과 동등하게 힘으로 겨루면서 말이죠. 더군다나 액션 영화에선 킬빌 이후로 여성이 메인 타이틀롤로 나오는 영화 자체가 드물었습니다. (당장, 이 영화의 메인 포스터를 보세요. 샤를리즈 테론의 얼굴이 톰 하디보다 더 잘 보입니다.) 샤를리즈 테론이 맡은 퓨리오사는 영화에서 맥스를 뛰어넘는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감정을 거의 표출하지 않고, 말수까지 적은 맥스 캐릭터 자체의 특징때문이기도 합니다.) 퓨리오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맥스보다 더 밀접하게 연결되있고, 영화에서 감정을 건드리는 역할을 맡고 있기때문에 맥스보다 더 강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게 분노의 도로는 퓨리오사의 거대한 여정처럼 보였습니다. 전반부는 과거의 자신의 '집'을 찾아떠나는 그녀의 시타델 탈출기이고, 중반부는 돌아갈 '집'이 사라졌다는데서 오는 분노와 절망이죠. 후반부 그녀는 맥스의 도움으로 '집'으로 가는 방법에는 집을 찾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집'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액션에 있어서도 퓨리오사는 맥스나 다른 남성들의 곁에 숨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맥스에게 먼저 달려드는 것도 퓨리오사고, 운전대를 잡고 전력질주하는 것도 태반은 그녀죠. 여성은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약하니뭐니 퓨리오사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있고, 퓨리오사는 그것을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달려듭니다. 앞서 말한 모든 것들은 그동안 액션영화에서 남성들이 늘 해오던 것들입니다. 그저 성별만 바꾸었는데 이렇게 신선하게 보이니 그동안 영상물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충 짐작이 가지 않나요? 안타까우면서도 이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주인공, 맥스의 존재가 마냥 퓨리오사의 그림자에 가려진다고만 생각하진 않습니다. 맥스야말로 희망을 잃은 퓨리오사에게 최후의 기회를 제시한 장본인이고, 맥스가 없었다면 퓨리오사도 결코 임모탄조 일당을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었을겁니다. 하지만, 분노의 도로가 진정한 페미니즘 영화로 발돋움하는 것은 퓨리오사 역시도 맥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퓨리오사는 완벽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녹지로 돌아갈 희망만 그리면서 전력질주하지만, 녹지가 사라졌다는 소리를 들을 때 그녀는 있는 힘껏 좌절합니다. 액션신에서도 늘 모든 적의 공격을 다 피하고 천하무쌍하진않죠. 맥스는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죽어가는 그녀에게 자신의 피를 수혈함으로써 시련을 함께 이겨나가려고하죠. 맥스 자신도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구요. 결국 절망하는 여자와 상처받은 남자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됨으로써 위험을 헤쳐나가고 희망을 쟁취하게 됩니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맘에 들었던 점이 이 점입니다. 여자만세, 여자가 혼자 다하는 그런 막무가내식 페미니즘을 역설하지 않고, 당장 남자 관객이 봐도 수긍할 수 있게끔 페미니즘을 그려줬다는 겁니다. 페미니즘이 바라는 성평등도 결국 여자도 남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때로는 남성의 도움도 받으면서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자는 게 아닐까요? 맥스와 퓨리오사가 서로가 필요했던 것처럼 여성과 남성도 서로에게 똑같이 필요한 존재란 것이죠. 영화는 진정한 의미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조지 밀러 감독이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영화의 액션면에서도 그렇고,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면에서도 이 영화는 정말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온갖 스턴트와 카 체이스신들로 부르는 페미니즘과 희망에 대한 찬가입니다. 가장 이질적으로 보이는 남성향 액션 시리즈와 페미니즘의 조합이라니, 그것도 70이 다 된 남자 감독에게서 탄생한 영화라는게 믿어지시나요? 분명 액션영화계에, 덧붙여서 영화사에 있어서 페미니즘에 한 획을 그을 우리 시대의 명작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후속편에선 감독이 과연 어떤 비전을 보여줄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흥분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