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3.25 [Review]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2017)

2017년 최대의 기대작 중 하나 였던 미녀와 야수가 베일을 벗었습니다. 디즈니의 지난 애니메이션 실사화 작품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이 연식때문에 원작의 그늘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반면, 미녀와 야수는 90년대를 거친 성인들이라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너무나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만큼 이전 작품들에 비해 미녀와 야수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티저 예고편이 역대 예고편 조회수 기록을 갱신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뚜껑을 열어본 미녀와 야수는 마치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원작의 명성을 한없이 드높인 사운드트랙 중 단 한 곡도 빼놓지 않고 충실하게 영화에 옮겨놨습니다. 영화의 모든 씬 연출마저 애니메이션에 극도로 충실하게 재현됐습니다. 'Belle'이나 'Be Our Guest'같은 씬들은 정말 애니메이션이 팝업북으로 뛰쳐나온듯한 싱크로율을 자랑합니다. 원작의 역동적인 연출까지 그대로 재현한 두 장면에서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은 디즈니팬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나면 원작에서 느꼈던 감동보다는 아쉬움이 앞섭니다. 초반의 두근거림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죠. 저는 이게 고민없이 원작을 그대로 카피 해놓은 각본탓인지, 엠마 왓슨의 미숙한 연기력탓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엠마 왓슨은 거의 최악의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이미 해리포터 시리즈를 통해 책벌레 모범생 이미지를 쌓아놓은 엠마 왓슨보다 벨 역에 더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요? 이미지로만 볼 때 엠마 왓슨은 정말 적절한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다른 어떤 배우보다 단점이 많이 보입니다. 뮤지컬씬에 필요한 가창력은 기대이상이었지만, 이외의 일반 대화씬에서 엠마 왓슨의 연기는 정말 실망스럽더군요. 주연 캐릭터를 뒷받침 하던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는 주연의 그림자에 묻어갈 수라도 있었겠지만, 미녀와 야수에서 벨은 다름아닌 주인공입니다. 감정연기 하나하나가 너무나 어색해서 혼났습니다. 이건뭐 발성이 문제인지, 표정이 문제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총체적 난국입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베테랑 연기파 배우들이 조연으로 대거 포진한 통에 상대적으로 비교당하는 것은 덤. CG캐릭터들이 난무하는 이 영화에서 유일무이한 인간 캐릭터인 벨이 관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답 없는 연기력과 함께 오히려 길을 헤매고 있으니 한숨이 나올 따름입니다.

 하지만 엠마 왓슨의 연기탓만 하기에 미녀와 야수는 너무 게으른 영화입니다. 그것도 아주 선택적으로 말이죠.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작 따라가기에 너무 급급해서 원작의 단점 마저도 그대로 옮겨 놨습니다.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이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었던 만큼 이야기는 빠르고 단순하게 진행되었고 개연성을 따지기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그걸 실제 사람이 등장하는 실사화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하니 현실과의 괴리가 더 커져버렸습니다.

 반면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준 개성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고풍스러운 스테인드글라스를 이용한 심플한 오프닝에는 신비스러움이 있었고, 고딕호러의 그림자가 드리운 야수의 성에는 범접하기 힘든 으스스함이 베여 있었습니다. 전래동화나 그림동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분위기를 잘 옮긴 것이죠. 즐겁고 아름다운 뮤지컬씬 사이사이에 도사리고 있던 어둠과 긴장감은 관객들을 더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사영화에서 이러한 요소들은 모조리 거세되었습니다. 그로테스크한 루미에르와 콕스워즈의 디자인에 일부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익숙한 판타지에서 제자리 걸음입니다. 그림동화의 매력이 사라진 자리는 말끔하게 정돈된 CG들만이 가득 채울뿐입니다. 

 실사영화가 원작과의 차별화를 위해 내놓은 대책들도 안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원작에 없었던 벨과 야수의 어린시절, 오리지널 신곡들을 끼워넣긴 했지만, 그 어떤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진 않죠. 관객들이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던 벨과 야수의 어린시절을 추가해놨는데 흥미롭지도 않은 내용들이라 사족같이 느껴집니다. 벨이나 야수의 감정을 보충해줄 신곡들이 그나마 괜찮긴한데, 역시 있으나 마나입니다. 

 결론적으로 2017년판 미녀와 야수는 원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고민 없이 '실사화' 트렌드를 잇기위한 디즈니의 안일한 결과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은 풀HD로 업스케일링된 이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을 찾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기 때문에 관객들마저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26년전 영화에서 오히려 퇴보한 작품의 흥행으로 우쭐했다간 디즈니는 언젠가 크게 큰 코 다칠 겁니다. 박스오피스 성적만으로 자위하면서 공장장처럼 안일한 작품만 쏟아낸다면 꿈과 희망을 주었던 디즈니는 또 소리소문없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P. S. : 리뷰에서는 엠마 왓슨의 단점을 지적하느라 언급하지 못했지만, 괜찮은 배우들도 있습니다. 루크 에반스와 조시 가드 듀오는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게스톤과 르푸도 원작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지만, 이들은 원작 캐릭터들의 매력을 100% 소화해낸 케이스입니다. 연기와 노래, 생김새 삼 박자가 모두 갖춰진 덕에 가장 돋보입니다. 만약 벨과 야수, 기타 캐릭터들도 이 둘 만큼만 해줬다면 평가가 확 달라질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