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는 감독의 전작들과는 굉장히 다른 영화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JSA이후 대중성보다는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들 위주로 활동해왔고, 그 와중에도 올드보이로 개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인정받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어렵게 느껴져서 가까이하기 힘들었어요. 헐리웃 데뷔작인 스토커가 그나마 최근작들 중에선 가장 나은편이었지만, 미장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속은 텅빈듯한 공허함을 지울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상업영화로 보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메시지나 주제가 뚜렷하게 다가오지도 않았죠. 아가씨는 이런 아쉬움을 날려버려주는 동시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어렵다는 제 생각을 바꿔준 영화였습니다.

 감독의 전작에 비해 상당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미장센, 즉 영화의 비쥬얼로 승부를 봤던 박찬욱 감독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나 아가씨는 대사의 비중이 상당히 큰 영화입니다. 물론 치밀하다 못해 징그러울 정도로 정교한 미장센도 여전합니다만, 이 영화는 우리말 특유의 어조나 표현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재미가 상당해요. 블랙 유머의 코드만 맞다면 아가씨는 상영시간 내내 웃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대사의 뉘앙스를 느끼기 힘든 외국관객들에겐 확실히 재미가 덜 할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이렇게 많이 웃어본 게 스파이[각주:1]이후로 처음이었습니다. 주인공들간 속고 속이는 상황이 속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있는 관객들만 느낄 수 있는 냉소와 자조가 아가씨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대사에 대한 욕심이 많은 영화고, 그만큼 대사를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합니다. 때로는 대사가 지나쳐 보일 때도 있지만, 이 때문에 자칫 동성애나 SM같은 소재에 가릴 수 있었던 영화의 이야기가 존재감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동성애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생소하고 어려운 개념입니다. 아가씨는 동성애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여성 해방과 동성애를 엮음으로써 대중들의 거부반응을 줄이는데 성공합니다. 영리한 시도입니다. 사악한 이모부로부터 착취받던 히데코가 백마탄 왕자 대신, 자기 하녀로 들어온 숙희에게서 사랑과 탈출구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해방시키는거죠. 영화는 동성애의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감추려 들지도 않는 동시에 여성 해방의 주체가 여성이 되게 함으로써 그 의미를 극대화합니다. 관객들이 동성애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대신, 두 주인공 사이의 진실한 감정에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도 저는 아가씨가 한국 퀴어영화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지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동성애고 뭐고 '사랑'의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니까요.

  아가씨는 여성해방을 노래하는 사랑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박찬욱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결코 순수하거나 평범하기만하진 않죠. 이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사랑이야기는 감독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 명쾌하고 시원하며, 장르적 재미도 두루 갖추었습니다. 철학과 심도있는 메시지를 찾던 관객들에게는 아가씨가 실망스러운 작품일지도 모릅니다만, 이렇게 대중적이고도 감독의 매력을 잘 살린 영화가 드물다는 점에서 저는 박찬욱 감독의 선택이 결코 '퇴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 멜리사 맥카시 주연의 헐리웃 코미디 영화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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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티저 예고편은 통속적인 시대물처럼 보였는데, 역시나 새롭게 공개된 예고편을 보니

이 작품 역시 평범한 영화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박감독 본인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들 중 가장 명쾌한 영화라고 말했는데,

이게 과연 무슨 의미인지 상당히 궁금해집니다.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스토커를 제외하고) 난해하다는 인상을 받아서 

이번 영화는 그런 느낌이 좀 덜하지 않을까 싶네요. 내용 자체가 막 깊은 메시지를 담은 그런 영화는 아닐 것 같습니다.


올해 칸 영화제 출품된 경쟁작들 중엔 아가씨와 네온 데몬이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됩니다.

아가씨는 6월 개봉예정만 되있고 아직 구체적인 개봉날짜는 안 잡은 것 같네요.

빨리 보고싶습니다.


아가씨 20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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