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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05 [Review] 싱어의 슈퍼맨이 스나이더의 슈퍼맨보다 나은 이유, 슈퍼맨 리턴즈(Superman Returns, 2006) 3

*본문에 영화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디씨 유니버스 캐릭터는 슈퍼맨입니다. 망해가는 디씨 유니버스 영화를 슈퍼맨 때문에 꼬박꼬박 다 챙겨보고 있습니다. 맨 오브 스틸은 결코 잘만든 영화는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어느 영화도 제대로 해낸 적이 없었던 드래곤볼풍의 초능력 대결을 구현 했다는 점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슈퍼맨의 능력을 그만큼까지 끌어낸 영화도 없었을겁니다. 하지만, 맨 오브 스틸 때부터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에 대한 묘사가 잘못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인류에 대한 사랑과 배려는 온데간데 없고 싸움하기 급급한 슈퍼맨의 모습에 실망했습니다. 

 여기서 그쳤으면 좋았을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는 더 설상가상입니다. 이 영화에서 슈퍼맨은 자기목적에 따라 움직이기 바쁘고,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배트맨과 치고박고 싸우죠. 화로 가득한 슈퍼맨의 모습에 한 번, 기대이상으로 멍청한 모습에 두 번 놀랐습니다.

 저스티스 리그에서는 한 술 더 떠서 부활한 슈퍼맨이 폭주해서 '분노의 화신'으로 거듭납니다. 영화가 워낙 할 말이 많다보니 금방 되돌아오긴 합니다만, 전작들에서 소홀한 캐릭터 묘사로 비판받은 통에 또 캐릭터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설정이 눈쌀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맨 오브 스틸부터 저스티스 리그까지 슈퍼맨은 예측불가능한 대량살상무기같은 느낌입니다. 인류의 친구이자 수호자같은 슈퍼맨의 이미지는 전혀 찾을 수 없고, '분노한 신'의 이미지만 남게 되었습니다. 자극적인 묘사로 슈퍼맨의 원작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최근 영화 중에 슈퍼맨을 가장 잘 묘사한 영화는 브라이언 싱어의 2006년작, 슈퍼맨 리턴즈라고 생각합니다.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 슈퍼히어로가 안고 가야할 책무 등 최근 영화에서 얕게 다루어졌던 슈퍼맨의 고뇌가 세심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트릴로지의 성공요인이기도 합니다.) 캐릭터의 심리가 중심이 되다보니 영화가 자연스럽게 진지해질 수 밖에 없었고, 그저 진지한 척만 해대는 스나이더의 영화와 차별화됩니다. 

 싱어와 스나이더의 가장 큰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은 액션씬입니다. 스나이더가 액션연출면에서는 세련된 감각을 지닌건 인정하지만, 그의 영화에서는 각본보다 액션이 우선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주객이 전도된거죠. 반면 싱어는 액션을 철저히 내용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합니다. 슈퍼맨 리턴즈에서 펼쳐지는 모든 액션씬은 슈퍼맨이 인간을 구하고, 보호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입니다. 슈퍼맨 캐릭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류애, 자비와 같은 정신과 일맥상통하고 있죠. 슈퍼히어로 대 빌런의 구도에서 벗어나 슈퍼맨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최근의 주류 슈퍼히어로물과 확실히 다릅니다. 비행기 구출씬이나 대륙을 들어올리는 씬들은 슈퍼맨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가깝기 때문에 박진감은 다소 떨어지나 여기서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온화한 신 같은 슈퍼맨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대부분 슈퍼히어로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싸우지만, 빌런의 실체가 그림자에 가려진[각주:1] 슈퍼맨 리턴즈에선 슈퍼히어로 개인보다 그의 사명에 더 방점이 찍히는 것이지요.

 스나이더의 영화에서 버려지다시피했던 클락 켄트와 슈퍼맨 사이의 이중생활이 잘 그려진 점도 좋습니다. 영화 속 클락 켄트는 전형적인 소시민 남자의 모습을 대변하는 캐릭터이고, 인간으로서 슈퍼맨의 면모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신과 같이 느껴졌던 슈퍼맨도 클락 켄트일때는 그저 어리숙한 쑥맥남에 불과하죠. 관객에게 그런 갭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슈퍼히어로의 모습만 강조했던 스나이더의 슈퍼맨과 달리 싱어의 슈퍼맨에 관객들이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측면을 부여합니다. (솔직히 스나이더의 슈퍼맨에서 클락이라는 존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생각없이 모성애를 들먹거리다 욕이란 욕은 다먹었던 배대슈와 달리 슈퍼맨 리턴즈가 부성애와 슈퍼히어로서의 고뇌를 성공적으로 혼합시킨 점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영화 초반 크립톤 행성을 방문한 슈퍼맨은 자신만이 유일한 크립톤의 생존자라는 씁쓸한 사실과 마주합니다. 그순간, 인간사회에서 그가 느끼는 소외감과 고독은 그가 지고가야할 십자가입니다. 그런 그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막판에 밝혀지는 아들이라는 존재입니다. 조엘과 칼엘, 슈퍼맨과 아들이라는 3대에 걸친 부성애를 부각시켜 슈퍼맨이 고독을 털어버리고 희망을 찾게되는 결말은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후속편에서 슈퍼맨의 부성애를 어떻게 다룰지 궁금했었는데 아쉬울 따름..

 슈퍼맨을 맡은 배우들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브랜든 루스가 크리스토퍼 리브의 우직하고 선한 이미지를 계승했다면, 헨리 카빌은 코믹스에서 튀어나온 듯한 우락부락한 몸매로 슈퍼맨의 '신'과 같은 면모를 과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근래 캐릭터를 다루는데 있어 슈퍼맨의 본질과도 같았던 인류애, 온정 같은 것들이 자극적인 액션에 자꾸 희석되어가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그럼 점을 염두에 뒀을 때 고전의 기품과 원작의 정수를 녹여낸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는 언젠가 재평가받을 이유가 다분한 훌륭한 슈퍼맨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P. S. : 로이스 레인에 대해 얘기 안하고 넘어가려니 아쉬울 것같아 덧붙입니다. 최근 디씨 유니버스에서 로이스 레인의 묘사는 정말 기대 이하입니다. 맨 오브 스틸부터 저스티스 리그까지 그 평가도 점점 낮아만지고 있죠. 매편 슈퍼맨의 발목만 잡아대는 민폐 캐릭터니 미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슈퍼맨 리턴즈의 로이스 레인은 슈퍼맨에게 도움이 되는(!) 캐릭터입니다. 기자 다운 면모를 발휘해서 슈퍼맨이 눈치 못채는 사이 렉스 루터의 계획에 서서히 다가가고, 막판에는 슈퍼맨을 직접 구하기까지 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여자친구 역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만, 세 편이나 걸쳐 꾸준히 나쁜 모습만 보여주는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에이미 아담스란 배우에게도 이건 커리어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1. 영화 속 렉스 루터는 초능력이나 힘을 과시할만한 무기같은 것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커튼 뒤에 숨어서 악행을 진두지휘한다는 느낌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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