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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7.16 [Review] 부산행(Train to Busan, 2016)

 연상호 감독의 실사영화 데뷔작, 부산행을 보고왔습니다. 곡성에 이어서 제대로 만들어진 호러물입니다. 한국영화계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웰메이드 호러물들이 강세네요. 신인감독들의 저예산 공포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획된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란 점이 놀라울 따름입니다.[각주:1] 그래도 곡성이야 이미 추격자, 황해 등으로 검증된 바있는 나홍진 감독의 기량을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부산행은 애니메이션쪽에서만 일하던 감독의 데뷔작이란 점에서 어떻게 투자자들을 설득했는지 좀 궁금했었습니다. 

 부산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초기 좀비영화들이 갖고있던 사회비판의식이 살아있다는 점입니다. 좀비물의 원산지(...)인 미국에서 조차 좀비물이 재미를 위한 호러영화의 하위장르로 전락해버린지 오랩니다. 그런 이유에서 부산행이 초기 좀비영화의 정신으로 돌아가 좀비라는 존재를 영화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로 활용한 점은 칭찬할만 합니다. 영화의 초반은 좀비사태에 대해 너무나 구태의연하게 대처하는 무능한 정부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으며, 중후반부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이기주의의 만연은 저조차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따끔한 비유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좀비로 인해 촉발되는 감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인데, 한국 사회 특유의 '다름'에 대한 혐오의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남혐, 여혐, 소수자혐오 등 다양한 혐오증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 시대상황을 지독히도 적절하게 잘 비유해주지 않았나 싶더군요.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막연한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혐오야말로 좀비보다 무서운 존재입니다. 관객들이 부산행을 마냥 즐길 수만 없는 이유에는 이렇듯 은연중에 느껴지는 영화 속 상황과 현실 사이의 유사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공포영화의 본질로 돌아가도 부산행은 잘만든 호러물입니다. 곡성에서도 느꼈다시피 우리나라 영화심의가 호러물에 대해 많이 관대해지고 있음을 부산행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좀비물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폭력'의 표현에 있어서 영화는 15세 관람가를 자유롭게 웃도는 수준으로 장르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겁니다. 좀비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액션은 거의 다 들어가있고, 중간중간 완급조절도 잘 되있는 편입니다. 좀비물과 거리가 있었던 한국 영화계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걸음마 수준에서 무리해서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해서, 긴장의 수준은 높이기위한 장치로서 적극 활용한 점도 칭찬할만 합니다. 영화에 목적의식을 주는 것은 물론 기차칸을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해서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죠.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좀비물과 기차의 조합이 굉장히 찰떡궁합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인물의 행동들은 납득하기 힘들고, 주요인물들의 행동 대부분이 예상가능하다는 점. 등장인물 대부분이 평면적이다보니, 배우들이 연기할만한 구석이 굉장히 적습니다. 김의성과 마동석을 제외하면 배우들 대부분이 기량을 펼치기엔 캐릭터가 너무 작게 느껴졌습니다. 마동석씨의 진중함과 코믹함이 섞인 연기도 무척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김의성씨의 캐릭터. 영화가 주고자하는 메시지와 맞닿아있다보니 가장 자유롭게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가장 최악은 주인공입니다.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이지 않지만, 후반부 최루성 결말은 이 영화 최대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쿨하게 처리했다면 굉장히 빛났을 캐릭터인데, 지나치게 오버연출해서 오히려 껄끄러웠습니다. 플래시백 대신 연기로 표현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많이 아쉬웠어요.

 결론적으로 부산행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좀비장르에 도전하는 동시에 좀비와 한국사회의 현실을 연결시킨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데 성공한 영화입니다. 재미와 메시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고사하고, 한 마리만 잡기도 힘든데 이 영화는 그걸 해냈습니다. 굳이 장르팬이 아니더라도 볼만한 좋은 영화이고, 곡성의 선례를 생각해보면 부산행의 미래는 밝다고 점쳐볼 수 있겠네요. 덧붙여서 감독의 차기작도 무척 기대됩니다.


+ P. S. : 공식 개봉일자는 7월 20일인데, 이번 주말부터 유료시사회 형식으로 선행개봉됐습니다. 몇년전에 잠깐 유행했다가 최근 보기힘들었던 변칙개봉인데 왜이런 꼼수를 썼는지 이해가 잘 안 되더군요. 영화의 완성도면를 보면 이렇게 설레발치면서 걱정할 정도는 아니란 말입니다. 별로 보기좋진 않네요.

  1. 이 점은 좋으면서도 뭔가 씁쓸하네요. 그래도 최근 몇년동안 졸작들이 판을 쳐서 사장되어가던 한국 호러영화를 생각하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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