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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06 [Review]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 2017)

*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30년 만의 속편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공석은 헐리웃의 새로운 작가주의 감독으로 떠오르는 드니 빌뇌브 감독이 채웠습니다. 그을린 사랑, 시카리오 등에서 펼쳤던 드니 빌뇌브 감독의 개성이 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특유의 느리고 정적인 연출, 천천히 끓어오르는 분위기는 블레이드 러너의 필름 누아르적 특성과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그 만듦새가 훌륭함은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런 영화는 아닙니다. 가장 큰 불만은 재미가 없었다는 것. 이건 개인의 취향입니다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시종일관 진지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심리적인 피로감을 주는 연출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지나치게 긴 영화의 러닝타임까지 겹치니 후반부까지 관객이 집중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밀도있게 편집 했다면 싶은 아쉬움이 듭니다. 지루하진 않았지만, 2시간 40분이란 러닝타임 내내 흥미롭게 보진 못했습니다.

 더욱 아쉬운 점은 이번 속편만의 매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블레이드 러너(1982)가 엄청 재밌는 영화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 영화 역시 모두를 위한 재밌는 영화는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시각적인 혁명, 매력적인 캐릭터들, 영화가 끝나도 관객들이 파고들만한 질문이 가득했습니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SF영화의 레퍼런스가 된 전편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번 속편에 불만은 없습니다. 전편에 기초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최선을 다했고, 로저 디킨스는 충분히 인상적인 장면들을 찍어냈습니다. 전편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은 없었지만, 디스토피아 미래의 새로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제 몫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는 것은 문제입니다. 새로운 주인공, 케이는 전형적인 누아르 영화의 형사 캐릭터입니다. 레플리칸트라는 설정덕에 차별점이 생기긴 했지만, 영화 내내 그가 하는 행동들은 예측가능하며 후반부 반전과 함께 주변부 인물로 밀려나기 때문에 상당부분 힘을 잃습니다. 인간보다 인간적인 레플리칸트란 점에서 영화의 주제에 맞닿아 있는 인물이지만, 영화의 내용을 전달하는 서술자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긴 힘듭니다. 

 하지만 전편(1982)에서도 주인공인 데커드는 그다지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건 빌런이었던 로이 베티였죠. 루트거 하이거의 훨친한 피지컬과 광기어린 연기는 주인공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최후는 영화 최고의 하이라이트이자 영화의 주제, 그 자체였습니다. 로이 베티는 전편(1982)이 가진 한 방이었습니다.

 이번 속편은 그런 한 방이 없습니다.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러브는 독기 이외에 의미를 찾기 힘들며, 월레스는 야심으로 가득찬 창조주를 표방하지만 후반부에는 거의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강한 빌런이 없다면 내용에서라도 강한 한 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영화 내내 중심이 되는 레플리칸트의 아이, 그 정체는 좀 뜬금 없었습니다. 케이에게 심어진 기억을 토대로 케이가 그 선택받은 아이였다면 너무나 뻔한 전개였겠죠. 하지만, 기억 설계자인 그녀가 선택받은 아이인 것도 딱히 납득가는 전개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놓친 복선 혹은 암시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순간 카타르시스보다 당황스러움이 더 컸던건 정말 아쉬웠습니다.

 생식능력과 그 기술이 중심이 되는 내용전개도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자식을 만드는 것일까요? 1편이나 이번 속편에서도 레플리칸트들이 인간보다 인간답게 느껴졌던 건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이를 대변하는 것이 케이와 조이의 사랑입니다. 영화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인간들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레플리칸트와 AI입니다. 오히려 이들의 사랑이 중반부 급히 퇴장하고, 데커드와 레이첼의 아이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 전 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자식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려는 레플리칸트 레지스탕스의 계획은 설득력이 부족했구요. 레플리칸트의 반란 동기가 감정이 아니라 생식능력이 되는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차라리 케이와 조이를 끝까지 밀고가는게 영화의 주제와 더 맞지 않나 싶었습니다.

 종(種)의 생존 관점에서 생식능력은 충분히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면 월레스와 레지스탕스가 마치 대립관계처럼 묘사되는게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둘이 협력해야 이치에 맞죠. 경찰, 레플리칸트, 월레스 모두 생식능력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이 설득력있게 그려지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좋은 영화임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자취를 감춘 필름 누아르를 SF에 녹여 부활시켰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 하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은 분명 이 영화에 무언가가 있다는 반증입니다. 하지만, 오리지널 영화의 팬으로서 이 영화를 100% 즐겼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느낀 아쉬움이 재관람을 통해 바뀔 것 같진 않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팬들에겐 추천하고 싶지만, 아니라면 전 분명 망설일 겁니다.


P. S. : 전편 최고의 떡밥이었던 데커드가 레플리칸트이냐, 아니냐에 대해선 현명하게 잘 대처한 것 같습니다. 이번 속편에서도 뚜렷한 정답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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