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우리 시대에 필요했던 이야기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골든 글러브때부터 시작된 미투 운동의 광풍과 작년 작품상 수상작 발표 실수를 인식해서 인지 시상식의 분위기 자체가 상당히 가라앉아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거의 모든 부문의 수상자가 미디어가 예측한 대로 맞아 떨어져서 보는 재미가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재미와 별개로 받아야할 사람들이 받았다는 점에서 이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예측하기 힘들었던 부문이 있었으니... 바로 작품상 부문이었습니다. 마틴 맥도나의 쓰리 빌보드가 직전까지도 다수의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휩쓸면서 분위기가 쓰리 빌보드 쪽으로 기울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작품상 수상은 기분좋은 반전이었습니다. 후보작들 중 가장 감명깊게 본 작품이었고, 현재 그 어느때보다 미국이란 나라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은 분열과 증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쌓여온 인종갈등, 성차별 문제가 곪아 터지면서 위기에 직면 했고, 트럼프 취임을 기점으로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국가 내부의 분열 조짐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런 사회적 상황을 고려할 때 사랑과 관용을 부르짓는 셰이프 오브 워터의 개봉은 그 어느때보다 시의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인공, 일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인이자 변변하게 자라지 못한 고아출신입니다. 정부 기밀기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녀가 하는 일은 실험실이나 화장실을 청소하는 하찮은 일일 뿐이죠. '농아'라는 설정은 말을 할 수 있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소수자들의 애환을 은유한 것일 겁니다. 델 토로 감독은 말을 할 수 없는 주인공의 한계를 활용하여 자칫 단순하게 그칠 수 있었던 사랑얘기에 풍부한 깊이를 더했습니다. 일라이자의 목소리, 행동을 대신해줄 조연캐릭터들이 바로 그 장치입니다. 커밍아웃하지 않은 동성애자 룸메이트(자일스), 흑인 직장동료(젤다), 러시아 스파이(드미트리). 성적지향, 인종, 국적을 상징하는 이 세 인물들은 일라이자 대신하여 그녀의 생각을 목소리와 행동으로 옮기고, 그녀와 어인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일라이자와 어인의 사랑이 영화의 중심이 되지만, 일라이자의 또다른 자아라 볼 수 있는 이 셋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전개되면서 넷의 이야기가 촘촘히 겹쳐져 결국에는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젤다의 이야기가 나머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지는 점은 아쉽습니다.) 조연들의 비중이 생각 외로 높아서 어인과 이어지는 영화의 결말은 일라이자의 개인적인 해피엔딩이라기 보다 사랑의 가치를 알고있는 모두의 승리처럼 보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60년대나 악역, 스트릭랜드는 겉보기에 번지르르 하지만, 나르시즘과 오만에 빠져 자신들의 업적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타인'을 보지 못합니다. 현 미국의 문제점도 이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는 비단 미국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기도 합니다. 국수주의, 이기주의의 늪에 급속도로 빠져들고 있는 전 세계의 문제입니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런 국가 내부에서는 권력자들이 온갖 기준을 들이대며 국민을 억압하며, 또 국민들 사이에선 소수자를 차별하고 증오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델 토로 감독은 각자 혼자일 때는 아무런 목소리도 가지지 못하는 일라이자와 자일스, 젤다, 드미트리가 서로 힘을 합쳐 정부나 권력자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분열의 시대에 있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넌지시 조언하고 있습니다. 감정보다 이성을 강요받는 시대에 영화는 아무리 사회가 발전하더라도, 그 사회의 주체가 되는 인간에게 존중과 관용, 사랑이 없다면 그 무수한 발전과 영광도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사랑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자 정답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감정이 이성을 앞선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두려워서 정답을 외치길 주저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그렇게 주저하는 사람들, 시대, 국가에게 외치는 사랑의 절규이자 찬가입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절실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저는 이 영화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 그 어느때보다 유의미한 수상이었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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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두려움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말이죠.

매일 아침 당신은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되지만, 그것이 당신을 규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행동에는 선과 악이 24시간 공존 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당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짓느냐 입니다.

두려움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왜냐하면 사랑이 정답이니까요.

멍청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사랑이야말로 모든것의 정답입니다."


지난해 토론토 영화제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 상영이후 Q&A 섹션에서 있었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발언 중 일부입니다.

저는 델 토로 감독의 이 발언이야말로 셰이프 오브 워터 영화가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를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 분열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진정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

셰이프 오브 워터를 통해 델 토로 감독은 서로에 대한 두려움 대신 사랑을 선택할 때 공존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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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화이트 라이즈는 2개월에 한 번씩 발매되는 영국의 영화전문 잡지입니다.

매 호마다 한 작품의 특집으로 꾸며져 출연 배우나 감독의 인터뷰, 리뷰, 분석글까지 영화팬이라면 솔깃할만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리틀 화이트 라이즈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특유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다양한 작가들이 그려낸 개성 넘치고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이 내용에 앞서 눈을 사로잡습니다.

영국 잡지다 보니 구매할 엄두는 별로 안나서 홈페이지(클릭)에서 눈팅이나 가끔하는 정도였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 이슈는 놓칠 수가 없어서 결국 직구했습니다.

다행이 홈페이지에서 해외배송까지 다 지원하는터라 배대지를 끼는 수고없이 쉽게 구입했네요.

이번 73번째 이슈는 셰이프 오브 워터 특집입니다.

리틀 화이트 라이즈의 영화 리뷰는 기대/즐거움/총평 세 가지로 나뉩니다.

별점 대신 5점 만점 점수를 매기는 식이죠.

즐거움과 총평에서 4점 이상을 기록한 영화는 '리틀 화이트 라이즈 추천' 표식을 받습니다.[각주:1]

셰이프 오브 워터는 즐거움과 총평에서 5점 만점을 기록!

맛보기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크리쳐 역을 맡은 덕 존스의 인터뷰 페이지.

특집에 선정된 영화 말고도 다른 영화들의 소개나 리뷰, 인터뷰도 함께 수록되어있습니다.

(물론, 특집에 선정된 영화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긴 합니다.)

이번 호에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의 인터뷰도 있는 것 같네요.

내용도 빨리 읽어보고 싶지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것 같아 일단은 영화 감상전 까진 보류..

다른 페이지나 살살 읽어볼까 싶습니다.

  1. 기대도는 말 그대로 영화 감상 전 평론가의 그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리틀 화이트 라이즈 추천'과는 무관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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