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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21 [Review] 스티브 잡스(Steve Jobs, 2015)


 대니 보일 감독의 스티브 잡스는 잡스의 커리어에서 굵직굵직했던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영화의 1막, 2막, 3막이 프레젠테이션 직전의 짧은 순간순간을 담고 있어요. 영화는 당연히 잡스의 젊은 시절부터 죽음까지를 다룬 전기영화일거란 관객의 기대감을 기분좋게 배반합니다. 하지만 잡스의 인생을 압축시켜놓은 듯한 그 짧은 순간들 속에는 잡스의 철학과 인성, 사람들과의 관계가 모두 담겨져있습니다. 각 장마다 일정한 완결성을 갖추고 있기에 영화는 종종 연극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늘 세상에 혁신적인 기술을 전하고자 노력했었던 스티브 잡스의 인생을 돌이켜본다면 이 영화의 신선한 구성은 그의 인생을 다루는 영화에 딱 맞는 연출이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신선하고 감각적인 연출보다 저를 사로잡은 것은 영화가 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잡스가 가졌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은 영화가 각 장마다 다루고 있는 잡스와 다른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잡스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자 악역을 자처하고있고, 주요 등장인물 전원과 대립관계에 서있습니다. 이 각기다른 관계들 속에는 자신의 가족, 동료직원, 회사를 바라보는 잡스의 관점이 잘 녹아나 있어요. 시간을 거치면서 3막을 통해 모든 갈등관계는 어느정도 마무리 되지만, 이는 잡스의 선택이라기보다 감독과 각본가의 선택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각주:1] 하지만 결국 이를 통해서 영화가 관객들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과연 개인의 이상이 인간관계를 희생할 정도로 과연 가치있는 것인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질문은 답이 정해져있지도, 답을 쉽게 내릴 수도 없는 까다로운 질문입니다. 영화에서 잡스가 악역처럼 보일정도로 괴팍하게 그려져있긴 하지만,[각주:2] 영화 속 그의 말대로 잡스가 독불장군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밀어부치지 못했다면 세상은 지금과 달라졌을 겁니다. 세상은 그가 선보였던 혁신적인 기술들의 이점을 누리지 못했을테니까요. 하지만 잡스 인생 속의 주위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마냥 그것이 옳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잡스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상처받았던 사람들의 삶은 어떤가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희생시켜야 할정도로 잡스가 선보인 혁신들이 가치있는 것일까요? 

 스티브 잡스는 근래 제가 봤던 어떤 영화들보다 직접적이고 대범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극장을 나서면서도 과연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주제와 메시지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는 현재 영화계의 판도를 생각해볼 때 저는 이 영화가 분명 가치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잡스의 인생만큼이나 영화는 강렬하고 인상적입니다.


+ P. S.: 본래 데이빗 핀처 감독이 연출을 맡고, 크리스찬 베일이 잡스 역할을 맡기로 되있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하차했지만, 영화는 여러모로 핀처의 잔상이 남아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1. 실제로 그의 인생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기에 명확한 답은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전기라도 읽어봐야할까요? [본문으로]
  2. 실제 성격이 그랬다고 하긴해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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