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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20 [Review] 신데렐라(Cinderella, 2015)

 신데렐라는 디즈니가 네번째로 고전명작을 실사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말리피센트는 모두 어쭙잖은 원작 비틀기로 형편없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던 작품들입니다. 원작대로 갔으면 본전치기는 했을 터인데 너무나 많은 욕심을 부린 작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세 영화에서 과감한 시도가 보였던 것도 아니었죠. 그런 시도라도 보였으면 실험정신이라도 칭찬해줄 수 있지..

 하지만, 안전지대와 원작 비틀기 사이에서 어슬렁거리다 실패한 건 비단 디즈니뿐만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백설공주 영화화가 있어요. 타셈 싱의 백설공주는 비쥬얼 이외에는 디즈니의 위 세 영화보다 더 볼품없는 연출로 웃음을 샀던 케이스입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만 얼기설기 엮어놨다가 이도저도 아닌 코미디물로 남고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유니버셜의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이 결코 나았던 것도 아닙니다.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했던 이블퀸이란 멋진 구심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전개와 마무리로 아쉽기는 마찬가지였어요. 

 21세기에 들어서서 헐리웃 영화사들은 고전명작 속 판타지를 쉽게 실사화로 옮길 수 있는 CG기술을 보유하게된 반면, 이렇듯 뒤돌아보면 정작 제대로 영화화에 성공한 작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쁜 각본에 좋은 기술만 뒷받침되니 반쪽짜리 결과물이 될 수밖에요.. 물론 고전동화 속 캐릭터들이나 주제의식들은 지금와서 보면 너무 구식이고 뒤쳐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동화들이 디지털 시대에도 아직까지 읽히는 데는 이유가 있을겁니다. 전세계 만국 공통으로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교훈과 명료한 이야기 구조, 이런 특징때문에 아직까지 사랑받는 게 아닐까요? 현재적인 재해석을 한다면서 동화의 뿌리를 모두 날려버리니 어설프지가 않을 수가 없지요.

 잡설이 길었습니다만, 여러 불만에 가득 차있던 저에게 신데렐라는 처음으로 만족스러웠던 작품입니다. 신데렐라는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냥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흥미롭게 보여줄것인가를 고민한 작품이란거죠. 원작 애니메이션이라는 성공한 모델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실사 영화화에서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일까요? 제가 볼때는 조금씩 한층 더 깊어진 캐릭터 묘사입니다. 그 묘사가 원전이나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더 철학적이고 심도있게 깊어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말그대로 '조금', 어떻게 보면 얕은 차이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신데렐라에선 각 캐릭터들의 이런 조그만한 차이들이 모여 영화 전체를 달라보이게 합니다.

 일단, 이번 실사 영화에서는 신데렐라와 어머니 사이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려집니다. 영화내내 신데렐라로부터 모든 인물들에게 전파되는 '용기와 친절'의 정신이 여기서 비롯됩니다. 어린 신데렐라를 놔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산. 어머니와의 이야기가 추가되면서 신데렐라가 온갖 시련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을 이유가 생겼습니다. 신데렐라가 그냥 계모랑 새언니들에게 바보같이 당하는 건 아니란겁니다. 신데렐라가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버틸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를 준 거죠. 신데렐라가 왕자의 구원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인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영화 초반 5분정도의 짧은 이야기가 영화 전체를 지탱할만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계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계모는 첫 등장부터 케이트 블란쳇이 가진 기품과 시너지를 내면서 영화내내 놀라운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중반부까지 그냥 동화 속 계모와 별반 차이없이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력에 기댄 악역 캐릭터지만, 막판에 들어서 이 계모도 신데렐라에게 느끼는 질투와 부러움같은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이 캐릭터를 돌아볼만한 여지를 만들어줍니다. 생각없이 주인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존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객들이 어느정도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동정까지 할 수 있게되는 캐릭터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왕자 캐릭터입니다. 아시다시피, 디즈니 영화들에서 '왕자' 캐릭터들이란 그저 여주인공의 해피엔딩을 위한 구원자적 역할에 그치고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아버지와의 관계를 주목하면서 왕자에게도 나름대로 스토리 텔링의 기회를 줍니다. 여전히 잘생기고,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하는 캐릭터지만, 신데렐라의 왕자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을거란 불안함과 애뜻함이 묻어납니다. 또, 왜 첫눈에 반한 그녀를 잡을 수밖에 없는지 고민하는 과정이라도 그려져서 그간 여주인공들의 최종보너스 개념식으로 그려졌던 과거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고있습니다(...)

 미술과 특수효과에 대한 칭찬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고전미를 물씬 풍기는 영상미가 마치 옛날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종종 주기도해요. 연출에서 어느정도 의도한 것 같긴한데, 원작에 충실한 이번 영화의 컨셉과 맞아떨어져서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여기서도 과하게 실험정신을 시도하지 않은게 참 적절했다고 봅니다. 신데렐라가 요정대모의 도움으로 이미지 대변신(...)을 하는 장면은 워낙 원작에서도 손꼽히는 하이라이트라 실사화로 보는 매력이 대단했습니다. 신데렐라가 바뀐 드레스를 보며 거의 황홀한 경지(...)에 이르는 듯 보여서 황당하기도 했지만, 저 고생을 했으니 저 정도는 보상받아야지 싶기도했고.. 호박, 도마뱀, 쥐, 드레스 4단계에 걸쳐서 이뤄지는 변신장면들은 지금의 CG기술이 있기에 나올 수 있었던 멋진 장면들입니다. 요정대모의 어리숙한 매력이 더해져 더 귀엽게 느껴졌구요. 더불어 왕궁에서의 장면들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화려한 영상미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고전적인 스토리텔링에 맞지 않으신 분들도 적어도 영상미에서 만큼은 눈호강이라도 하고 나가실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주제의식에 관해 한번 말해보고 싶습니다. '용기와 친절'. 영화에서 때로는 너무 반복적으로 강조해서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신데렐라의 행동에 나름대로 근거가 되주기 때문에 존재이유는 분명하다고 봅니다. 어린이와 가족관객을 타겟으로하기에 이런 보편적인 모토가 필요하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그런 이유를 차치하고 보더라도, 이렇게 단순한 주제의식을 이토록 순수하고 정직하게 그린 영화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데렐라는 거의 직설적으로 이 정신을 설파하고있으니까요. 너무 순진한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때론 이런 때묻지않은 감성과 정신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극히 디즈니스러우면서도 아름다웠던 영화였습니다.



+ P. S. : 댄스신에서 왕자와 신데렐라 합이 너무 잘맞아서, 정말 짜고치는 고스톱 보는 기분이었어요.. 두번째 만남아니었니?... -_-;;


P. S. #2: 헬레나 본햄 카터가 요정 대모라니! 정말이지 반전매력이 돋보였습니다. 팀 버튼 영화들 출연했을 때 이미지가 워낙 강했어서.. 아무튼 짧은 출연이었지만, 잊혀지지가 않았어요.


P. S. #3: 케이트 블란쳇 의상들이 제일 아름답더군요. 특히나 마지막 장면에선 무슨 그림보는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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