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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18 [Review] 핵소 고지(Hacksaw Ridge, 2016) 1

 CGV 2017 아카데미 기획전으로 핵소 고지를 보고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헐리우드표 전쟁물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편이었는데, 2010년대에 들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트렌드가 슈퍼히어로 무비로 옮겨진 뒤로는 무척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물론 우후죽순 터져나왔던 2차 세계대전이란 소재 자체가 식상해진 면도 있고, 영화로 만들만한 전투를 많이 써먹었으니 소재의 고갈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전쟁물 역시 하나의 트렌드였으니까요. 

 핵소 고지는 멜 깁슨이 10년만에 선보이는 연출작입니다. 앞서말했듯이 닳고 닳은 소재를 어떻게하면 신선하게 풀어낼 수 있을지, 감독도 많이 고민했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핵소 고지의 주인공 데스몬드는 일반적인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는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든 양심적 병역거부자입니다. 영화의 절반은 그의 성장기를 따라 왜 그가 폭력을 거부하는지, 폭력을 거부하는 사람이 어떻게 입대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불우한 어린시절과 전쟁물에 빠질 수 없는 알콩달콩한 로맨스, 법정 드라마까지 평범하지만 흥미로운 드라마의 연속이죠. 입대전 데스몬드의 인생을 짧게 축약해서 그리고 있긴하지만, 그의 신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사건 위주로 서술된 영화 초중반은 상당히 압축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캐릭터 구축에 상당히 공을 들인덕에 관객들의 엉덩이는 조금 아플지언정, 후반부 하이라이트의 감동은 배가 됩니다. 관객들은 불필요해보이지만 중요한 이 준비과정을 지켜보며 이 캐릭터가 왜, 어떻게 자신의 신념과 대립되는 폭력의 한가운데 놓여지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는 중후반부는 여타 전쟁물과 다를바 없이 전쟁의 잔혹함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이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폭력 묘사에 일가견을 드러낸 멜 깁슨답게 조금의 미화도 없이 그 잔혹함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여기서 그쳤다면 핵소 고지는 과거 전쟁물의 재탕이라는 소리밖에 못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특별한 주인공, 데스몬드가 있기에 핵소 고지의 전쟁씬은 여느 영화들보다 훨씬 무섭고 긴장됩니다. 스릴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총도 없이 참전한 우리의 주인공이 어떻게 폭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살아남을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초중반 드라마를 본 관객이라면 이상해보이지만 듬직한 우리의 주인공을 응원할 수밖에 없구요. 

 핵소 고지는 특별한 영화입니다. 인간의 폭력성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전쟁에 폭력을 거부하는 주인공이라니.. 하지만 그 아이러니는 여지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특별한 감동과 교훈을 주죠. 신념대로 살아간다는 것, 수많은 손가락질과 비판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데스몬드 도스는 아름다운 모순입니다. 핵소 고지의 감동은 승리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에서 오는 것이지요. 데스몬드를 고깝게 여기던 부대원들도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야 데스몬드가 총 없이도 나와 함께 싸워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잃지않는 데스몬드의 태도도 멋있었지만, 나와 조금은 다른 '전우'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부대원들의 모습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핵소 고지가 가진 깊이와 색다른 주제는 이 영화를 평범한 전쟁영화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신념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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