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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13 [Review] 어카운턴트(The Accountant, 2016) 1

*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톰 하디와 조엘 에저튼 주연의 워리어(Warrior, 2011)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나요?[각주:1] 워리어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고 다르게 성장한 형제가 복싱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만난다는 기상천외(...)한 내용의 가족스포츠물이었습니다. 티비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신파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워리어는 알면서도 속아줄 수밖에 없는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톰 하디, 닉 놀테의 훌륭한 연기와 짜임새있는 연출덕분에 말도 안되는 내용에 관객들을 서서히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자취를 감춰가던 열혈스포츠물(...)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구요. 워리어는 박스오피스에선 아쉬운 성적을 냈지만, 헐리우드는 상투적인 소재를 훌륭히 재단해낸 게빈 오코너 감독에게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게빈 오코너 감독의 차기작, 제인 갓 어 건은 정말 악명높은 영화의 제작비화[각주:2]에 걸맞는 퀄리티를 보여주었습니다. 제인 갓 어 건은 감독이 대타로 들어가서 남이 만든 깽판(...)을 수습한 것치고는 괜찮았지만, 영화 자체가 별로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었죠. 하지만 제작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다고 관객들이 사정을 봐주는 것은 아니기에 그의 차기작은 여러모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게빈 오코너 감독의 세번째 메이저 작품, 어카운턴트야말로 워리어에서 보여줬던 그의 역량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진정한 차기작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어카운턴트의 내용은 여러모로 배트맨을 연상시킵니다. 남다른 능력을 가진 주인공아 불우한 가족사를 딛고 스승을 만나 다크히어로로 거듭난다는 내용만으로도 배트맨이 생각나는데, 심지어 주연배우마저도 배트맨이란 말이죠(...)[각주:3]. 하지만 특별한 점은 게빈 오코너 감독이 이 닳고 닳은 다크히어로물을 현대물로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점이며, 심지어 이게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보다 훨씬 재밌다는 겁니다. 올해 초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보고 대실망한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어카운턴트는 최근 액션영화들이 빠지고 있는 주객전도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부터 칭찬해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액션은 내용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쓰이고 있지, 주가 되는 것은 스토리예요. 영화는 자폐증 소년의 불우한 어린시절과 위장신분을 가진 다크히어로가 된 현재를 보여주면서 시작됩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어린시절과 현재, 그를 추적하는 요원들 세가지 줄기를 왔다갔다하면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 생기는 공백을 서서히 채워가기 시작합니다. 퍼즐맞추기를 연상시키는 이 과정이야말로 어카운턴트가 가진 진정한 재미이자, 매력입니다. 후반부 클라이막스에서 밝혀지는 그의 진정한 모습이야말로 어카운턴트의 진정한 마지막 퍼즐이고, 퍼즐로 완성된 큰 그림을 보는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상당합니다. 

 스릴러적 전개와 재미가 좋은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액션이 약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어카운턴트는 스케일은 작지만 알찬 액션위주로 승부하는 영화입니다. 본 시리즈와 같이 과도한 스타일보다는 '날것'을 느낌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본 시리즈에서 주가 되는 격투대신 어카운턴트는 총기액션으로 승부를 봅니다. 주인공의 스나이퍼 액션과 단거리 총기액션 모두 상당히 색다른 느낌을 선사합니다. R등급 영화답게 폭력의 묘사에 있어 거침이 없기때문에 호불호는 갈릴지 모르지만, 총을 쐈는데도 피가 안나는 밍밍한 기존 헐리웃 액션영화들에 질리셨던 분들이라면 상당한 쾌감을 느끼실 수 있을거라 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어카운턴트는 분명 한계를 지닌 작품입니다. 게빈 오코너 감독은 어카운턴트에서 워리어에서 보여줬던 치명적인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서 주인공의 과거 플래시백에는 아버지와 함께 주인공의 남동생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아버지야 그를 단련시킨 첫번째 스승이니 그려려니 하지만 동생일 경우는 대체 왜 등장하는지 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후반부 클라이막스가 되서야 그 동생이 등장합니다(!) 클라이막스에서 드러난 빌런의 정체가 바로 그것인데, 관객입장에서는 상당히 김이 샐 수밖에 없습니다.[각주:4] 영화 전반에 걸쳐서 현재 시점에서 회계일을 통해 접근한 기업의 비밀을 공들여서 묘사하고 있는데, 하이라이트의 순간 갑자기 주인공의 가족사가 결말에 와서 깽판을 치고있는 것이니까요... 워리어일 경우 가족스포츠물이니 당연히 가족애가 중요할 수 밖에 없었지만, 어카운턴트는 액션/스릴러물이고 강조해야할 것이 따로 있습니다. 가족애라면 플래시백을 통해서 이미 공들여서 충분히 묘사한 상태인데 뜬금없이 이 카드가 다시 나오니 관객입장에서는 물먹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어카운턴트는 화룡점정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써 열심히 다 그려놓은 용을 마지막 눈 그리기에서 삐끗해버린거죠. 어카운턴트는 친숙한 다크히어로물의 내용을 스릴러적인 구성을 통해 신선하게 재해석해냈지만, 후반부 쓸모없는 가족사에 빠져서 그 모든 노력의 빛이 바래져버렸습니다. '가족애'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기에 이 영화는 너무 아깝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보다는 훨씬 훌륭한 작품입니다...


P. S. : 벤 애플렉은 뛰어난 연기력의 소유자는 아닙니다만, 그 특유의 무심한 듯 시크한 연기가 자폐증 증상과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면서 이 영화에서는 역대급 연기를 보여줍니다. 배우 특유의 인상, 연기, 캐릭터 모두가 딱 들어맞는 느낌이랄까요. 나를 찾아줘에 이어서 벤 애플렉이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었어요.


P. S. 2: 벤 애플렉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배트맨인지 이 영화에서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번지수를 잘못찾았어..

  1. 우리나라에선 배급사의 마음대로 본편을 일부를 잘라낸채 상영되어 안 좋은 의미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다행히도 정발된 블루레이에는 온전한 버전이 수록. [본문으로]
  2. 본래 내정되있던 감독 림 램지가 촬영을 목전에 두고 의견차이로 영화에서 하차했었습니다. 린 램지 감독의 무책임한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업계에서 퇴출된다해도 놀랍지 않을텐데, 놀랍게도 2017년 개봉예정의 신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3. 심지어 중요한 조연으로 출연한 J. K. 시몬스마저 차기 고든국장으로 캐스팅된 상태. 심지어 그의 캐릭터마저도 고든 국장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본문으로]
  4. 이 점이 어카운턴트를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더 빼닮아보일 수밖에 없게 만들죠. 어카운턴트의 동생=마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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