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모리스'가 무려 32년만에 국내에서 정식개봉합니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에서 으레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보기 드물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상당히 인상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E. M. 포스터의 원작이 쓰여진 당시의 시대상이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리스'에서 동성애는 단순한 금기가 아니라 바꿀 수 없는 본능, 주인공이 느끼는 순수한 감정으로써 그려지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시대를 한참 앞서나간 작품이죠. 뒤늦게나마 국내 관객들이 이 작품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어서 기쁘네요. 

 미국과 해외등지에서는 작년에 4K 복원판이 재개봉 했었는데 이를 기념해 주연배우, 제임스 윌비가 헤이유가이즈(클릭)와 인터뷰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인터뷰를 가져와봤습니다. 오역이나 의역이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헤이유가이즈(이하 HU): 저희에게 이 멋진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개봉한지) 30년이 지나서도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는게 이상하게 느껴지시나요?


제임스 윌비(이하 JW): 네, 하지만 제 커리어가 '모리스'와 함께 시작됐기 때문에 이 영화는 늘 저와 함께 해왔어요. 이 영화 이후로도 머천트-아이보리[각주:1]와 두 번 더 작품을 하면서 둘과는 친한 친구가 되었죠. 언제나 자주보는 사이였구요. 유감스럽게도 이스마일은 이제 떠났고, 그것 자체만으로도 큰 비극이었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을 잃은 것만 같았으니까요. 여전히 이스마일이 그립고, 그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해요. 몇 달전에 BFI(영국 영화 협회)에서 '모리스' 상영회가 있었는데, 휴 (그랜트)와 제가 참석해서 무대인사를 했었어요. 그 때 휴에게 "남아서 영화 보고갈래?" 물어봤었는데,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던 휴가 그러자고 하더군요. 저도 20년간 '모리스'를 보지 않았는데 그 때 휴와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봤어요.


HU: 영화에 캐스팅되기 전에 E. M. 포스터의 원작을 알고 계셨나요?


JW: 아뇨, 그전엔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이런말 하긴 좀 부끄럽지만 '모리스'를 하기 전엔 E. M. 포스터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본적이 없어요. 물론 캐스팅되고 나선 모두 읽었죠.


HU: 윌비씨가 캐스팅 되기 전 (휴) 그랜트씨는 이미 영화에 캐스팅된 상태였다는걸 알고계셨나요? 이미 서로 아는 사이여서 더 편하셨는지?


JW: 전 원래 주인공 역할이 아니었어요, 모리스역으로 처음 캐스팅된건 줄리언 샌즈[각주:2]였죠. 이유는 모르지만, 촬영 직전에 줄리언이 하차했고, 제가 다시 주인공 후보가 되었어요. 전 원래 다른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고, 짐 (아이보리)은 캐스팅 감독에게 "쟨 줄리언이랑 너무 닮아서 영화에 넣으면 안돼"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줄리언이 하차하고 제가 다시 주인공 후보가 돼서 휴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나요.[각주:3] 휴랑 함께 대본을 읽고 오디션 할 걸 알고있었거든요, 휴는 이미 (클라이브 역으로) 캐스팅된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오디션 하루 전에 휴랑 대본을 쭉 훑어봤어요. 오디션 전에 배우랑 함께 합을 맞춰볼 수 있었다는게 제겐 큰 이득이었고,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죠.


HU: 게이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한 우려는 있으셨나요? 혹은 당시 주류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하셨는지 궁금해요.


JW: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질문을 하던데, 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그런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우린 배우고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 연기를 할 뿐입니다. 모리스 역할은 그 당시 제 나이대의 배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 중 하나였어요. (그런 역할을 맡게 돼서) 너무나 좋았을 따름이예요, 이 역할과 함께 제 커리어도 시작됐구요. 아시다시피 그런 걱정은 미국스런 걱정이죠, 미국 배우들은 게이 역할이나 약하게 비춰지는 역할을 연기하는걸 우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영국배우들은 그런 걱정을 많이 안하거든요.


HU: 휴, 루퍼트 (그레이브스)[각주:4]와는 어떤 추억을 갖고 계신가요? 촬영 당시는 많이 기억나시나요?


JW: 모두 기억해요 (웃음), 대단했죠. 휴는 대단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솔직면서도 웃긴 친구죠. 장난치기 딱 좋은 친구랄까, 루퍼트는 그냥 정말 솔직하면서도 놀라울정도로 따뜻하고, 열려있는 배우였어요. 모리스 캐릭터나 제가 모리스를 연기했던 방식에 있어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면, 모리스는 주변에 좌우되는 캐릭터였다는 거예요. 모리스는 끊임없이 이끌려 다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스토리에 있어 앞발보단 뒷발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배우로서) 제가 할 일은 그냥 제게 일어날 일들이 일어나는 걸 받아들이는 거였어요, 루퍼트나 휴 같은 배우들과 합을 맞추는 일은 좋았습니다.

 다른 멋진 배우들을 언급하자면, 잠깐 등장해서 경이로운 연기를 보여주는 뎀홈 엘리엇[각주:5]이나 사이먼 캘로[각주:6], 벤 킹슬리[각주:7]가 있었죠. 그런 역량있는 배우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저처럼 젊은 배우에겐 정말 환상적일 따름이었습니다.


HU: 30년 전 이 영화를 본 뒤 이 영화가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놨는지 사람들이 말할 때면 놀라시나요?


JW: 수백통은 받았을거예요, 특히 미국에서 말이죠. 많은 분들이 이 영화가 자신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고, 자신감을 주었다고 말하더군요, 꼭 커밍아웃을 안 하더라도 자신의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줬다고요. 제가 받았던 팬레터들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론 다 같은 말을 하고 있었어요. 누군가의 삶에 진정 변화를 가져온 영화에 출연했다는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메인스트림, 그것도 매우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였다는 사실이 동성애자 관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실패한 사랑과 성공적인 사랑, 두 가지 게이 러브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는 점 역시 동성애자 관객들에겐 일종의 긍정으로 다가갔겠죠.


HU: 완전히 새로운 세대가 당신이 주연한 30년 전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건 어떤 느낌인가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각주:8]의 팬들에게 이 영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기대해봐도 될까요?


JW: 오, 그럴것 같아요. 젊은 동성애자들의 사랑이란 점에서 ('모리스'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비슷한 테마를 가지고 있죠, 같은 사람이 각본을 쓰기도 했구요. 그런 점에서 '모리스'가 새로운 관객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거라 생각해요, 여전히 시대에 뒤쳐지지도 않았구요. '모리스'는 깊이있는 작품이예요, '하워즈 엔드'와 '전망 좋은 방'[각주:9]도 좋아하지만, 그 작품들은 '모리스'보단 거품이 낀 작품들이죠. 제 말은, 포스터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모리스'에서) 에드워드 시대의 영국사회의 취약한 부분 아래를 제대로 표현해냈단 뜻이예요, '모리스'는 정말 그런 부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관객을 밀어부치고 재촉하기도 해요, 편히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죠.


HU: 영화는 계급제에 대한 아름다운 연구물이기도 해요, 촬영하실 때도 그렇다는걸 알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JW: 물론이죠! 포스터는 정말 뛰어난 작가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늘상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 원작을 바이블로 삼았어요. 포스터는 부드럽게 기득권의 민낯을 드러내게 하는 멋진 능력을 갖고있죠. '모리스'는 작가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었기 때문인지 작가의 그런 능력이 특히 더 잘 드러나는 소설이기도 해요, 소설 속 계급제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구요. 이 책이 정말 뛰어난 이유는 모리스가 영웅으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이예요, 제 말은 즉슨, (소설 속에서) 모리스는 빈민층에 대한 막말을 서슴치 않고, 스커더의 아버지가 동네 도살업자란걸 알고나선 정말로 역겨움을 느끼죠... (도살업자란) 생각 자체에 거부감이 드는거예요, 하지만 소설 말미에는 하층민에 대한 그의 거부감이 그의 스승과 부모, 모든 사회가 모리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려준 것에 불과하다는걸 깨닫고 모리스는 그걸 뛰어넘게 됩니다.


HU: 최근에는 '폴다크'[각주:10]에 출연하고 계신데,  드라마에 참여하신건 재밌으셨나요?


JW: 네, 재밌는 드라마죠. 각본도 좋고, 사랑스런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좋습니다. 가서 제 분량만 하면 되기 때문에..(웃음) 조연 역할은 늘 조금 어색하게 느껴져요, 아시다시피 드라마의 스토리는 메인 캐릭터들 중심이라 (조연으로서) 주연배우들에 맞춰주다가 제 차례가 와야 몸 좀 푸는거 거든요.


HU: 마지막으로 현재 하고 계신 다른 일에 대해 말씀 좀 해주세요.


JW: 어, 들으면 웃을지도 몰라요, 왜냐면 제가 '모리스'연극을 연출하거든요. '어보브 더 스태그'란 작은 극장에서 상연하고 있다가 최근에 박스홀의 새로운 장소를 옮겼어요. 작지만 정말 아름다운 극장이죠, 리허설 공간이랑 사랑스런 바도 갖추고 있구요. 9월 중순쯤 '모리스' 상연을 시작할 예정인데, 이거 '모리스'가 절 괴롭히려고 돌아온 것처럼 보이네요. (웃음)

  1.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연인이자 제작자였던 이스마일 머천트와 많은 작품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특히 E. M. 포스터의 소설을 많이 영화화 했었죠. [본문으로]
  2. 아이보리 감독의 또다른 영화, '전망 좋은 방'의 주연배우. 공교롭게도 제임스 윌비 역시 '전망 좋은 방'에 단역으로 잠깐 출연한 바 있습니다. [본문으로]
  3. '모리스' 이전에 둘은 이미 함께 작업한 적이 있었습니다. [본문으로]
  4. 스커더 역할을 맡은 배우. [본문으로]
  5. 배리 박사역. [본문으로]
  6. 듀시 선생님역. [본문으로]
  7. 레스커-존스역. 최면술사. [본문으로]
  8. '모리스'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각본을 집필해서 2018년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초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공동 연출까지 생각했으나 연출에는 손대지 않았죠. [본문으로]
  9. E. M. 포스터의 또다른 작품들. 제임스 아이보리-머천트 이스마일에 의해 두 작품 모두 영화화 되었습니다. [본문으로]
  10. 윈스턴 그래햄의 소설을 영상화한 영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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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맨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스토리 중 하나인 '엑스맨: 다크 피닉스 사가'는 20세기 폭스사에 의해 두 번이나 영상화되었습니다. 다크 피닉스 사가를 처음으로 영상화했던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명성에 먹칠을 했던 졸작이었고, 두 번째 영상화 작품인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시리즈 역사상 최악의 흥행을 기록하며 폭스의 엑스맨 유니버스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소수의견이겠지만 전 다크 피닉스를 무척 재밌게 봤습니다. 영화에 대한 리뷰도 언젠가 써보고 싶어요.)

 첫 번째 영화야 처음이니까 변명이라도 가능하지, 두 번째 영화가 실패하면 첫 번째 실패에서 배운게 전혀 없다는 걸 증명하는 꼴밖에 안됩니다. 헐리웃이 자신의 창작물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말아먹는 꼴을 보고있자니 원작자들의 가슴은 더 심하게 무너졌을겁니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디지털 다운로드와 블루레이 출시를 앞두고, 원작자[각주:1] 중 한 명인 크리스 클레어몬트가 인사이더(클릭)와 다크 피닉스 사가의 영상화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인터뷰를 찬찬히 읽어보니 '엑스맨: 다크 피닉스' 역시 '엑스맨: 최후의 전쟁' 못지 않게 제작 당시 잡음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원작자의 안타까움이 절절히 느껴지는 흥미로운 기사이니 엑스맨 팬분들이라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래 번역은 어느정도 의역이 있음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다크 피닉스 사가'의 작가, 헐리웃의 두 번의 영상화 시도에 대해 입을 열다

트래비스 클라크, 8. 20. 2019

 

 "엑스맨: 다크 피닉스 사가"는 사랑받는 클래식 엑스맨 코믹북 스토리라인들 중 하나지만, 영화판에서는 순탄치 못한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다크 피닉스 사가는 2006년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서 처음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진 그레이(팜케 얀센)는 자신의 돌연변이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악한 매그니토 무리에 합류해 돌연변이 치료제인 '큐어'를 상대로 전쟁을 벌입니다. 올해 개봉한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새로운 배우-소피 터너-와 감독이 우주적 존재인 "피닉스 포스"에 더 집중하며 전작과는 다른 시도를 선보였습니다.


 두 번의 시도 모두 도전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이 유명한 원작 만화를 아티스트, 존 번과 함께 창작한 코믹북 작가, 크리스 클레어몬트는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디지털 다운로드 개시(9월 3일)와 블루레이 발매(9월 17일)를 앞두고 가진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두 번의 영상화에서 가장 큰 도전은 영화와 달리 코믹스가 계속 이어지는 매체라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엑스맨 오리지널 트릴로즈 삼부작 중 최종장인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박스 오피스에서는 흥했지만, 비평적으로는 실패작이었습니다. 6월에 개봉했던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비평과 흥행 모든 면에서 폭망이었습니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마케팅 비용을 제외하고) 2억 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어져 전세계적으로 2억 5,200만 달러 수익을 거두는데 그쳤습니다.


 다크 피닉스 사가는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언캐니 엑스맨" 시리즈에서 열 두 편이 넘는 분량에 걸쳐 그려졌고, 이 장대한 이야기를 2시간 짜리의 한 편 영화에 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데드라인의 기사에 따르면 6월 개봉했던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원래 두 편의 영화로 기획되었지만, 20세기 폭스사가 이러한 계획을 취소시키면서 -오랫동안 폭스의 엑스맨 프랜차이즈에서 제작자이자 각본가로서 활동한-각본가이자 감독이었던 사이몬 킨버그는 수정된 기획에 맞춰 각본을 재집필해야 했습니다.


 "사이몬은 다크 피닉스 사가를 두 편의 영화로 만들고 싶어했어요. 첫 편에서 관객들이 진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 다음, 두 번째 영화에선 가슴아픈 이별을 다룰 예정이었습니다. 갑자기 그걸 1시간 50분짜리 한 편에 다 담으려니 어려울 수 밖에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들[각주:2]의 외부적인 개입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이몬은 꽤 잘 해냈습니다." 


 현 시점에서 20세기 폭스사를 소유한 디즈니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된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코멘트 요청에 불응했습니다.


 제작과 관련해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 것과 별개로 클레어몬트는 "엑스맨: 다크 피닉스"에 대해 여전히 호감을 갖고있었습니다.


 "원작의 공동창작자로서, 또 동료직원으로서 저는 사이몬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가능한 최고의 작업물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좋은 영화였어요. '엑스맨: 최후의 전쟁'보단 훨씬 나은 작품이죠."


 "엑스맨 2"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크 피닉스 스토리라인에 대한 암시를 남기며 끝났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뒤 클레어몬트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에게 다크 피닉스 사가를 어떻게 두 편 내에 담을 것인지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2000년에 개봉했던 "엑스맨"에 이어 "엑스맨 2"까지 연출을 맡았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다크 피닉스 사가를 결국 다루지 못한채 2006년 워너 브라더스사로부터 "슈퍼맨 리턴즈"의 감독직을 제안받고 엑스맨 프랜차이즈를 떠나게 됩니다.


 클레어몬트는 싱어의 프로젝트 하차에 대해 브라이언 싱어와 20세기 폭스사 사이의 기나긴 협상에 원인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두 당사자 모두 협상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고 합니다.


 "싱어 감독은 워너 브라더스로부터 -20세기 폭스사보다-더 좋은 제안을 받았어요. 슈퍼맨은 싱어 감독이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프로젝트기도 했구요. 둘 사이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두 명의 감독을 갈아치운 다음에야-브라이언 싱어와 매튜 본[각주:3]- 비로소 감독-브랫 레트너-을 찾을 수 있었죠. 브랫 레트너 감독은 그 영화를 성급하게 찍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사이몬[각주:4]과 다른 작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브라이언 싱어, 20세기 폭스/디즈니사 누구도 코멘트 요청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클레어몬트가 자기 나름대로 후회하는 일도 있습니다. 클레어몬트에 따르면 팜케 얀센이 그에게 다크 피닉스 영화의 각본을 써달라고 요청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그 기회를 놓쳤죠. 제가 마블에서 간부로 재직하던 당시에 얀센씨가 제게 그런 요청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얼마지나지 않아 저는 그 직위에서 내려왔고, 모든 상황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헐리웃에선 자주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이 이미 두번이나 영상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레어몬트는 여전히 또다른 영상화를 기대하고 있다. - 이왕이면 다른 포맷을 통해서 말이다.


 "저는 다크 피닉스 사가가 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TV도 영화와 동등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미니시리즈는 관객들이 진 그레이란 캐릭터와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만든다면 관객들의 손에서 땀을 쥐게하는 서스펜스도 구현할 수 있을거구요. 작가입장에서 저는 다크 피닉스 사가를 제대로 구현할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긴 하지만, 제가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니 어쩔 수 있나요."


  1. 크리스 클레어몬트와 존 번. 존 번은 스토리 뿐만 아니라 작화까지 담당했습니다. [본문으로]
  2. 정황상 20세기 폭스사와 디즈니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3. 브라이언 싱어의 하차 이후 매튜 본이 싱어의 후임으로 들어오지만, 폭스사와의 갈등으로 프로젝트에서 하차합니다. 매튜 본 감독은 2011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로 다시 엑스맨 프랜차이즈에 돌아오게 됩니다. [본문으로]
  4. 사이몬 킨버그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각본에도 참여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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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사랑은 지난해 말인가 프렌치 시네마 투어 기획전에서 인상깊게 본 작품인데, 리뷰를 올려야지 올려야지 생각만하다 마무리를 못해 아직도 못 올리고 있네요. 

 전 영 앤 뷰티풀로 오종 감독을 비교적 최근에야 알게되었는데, 프랑스 감독으로는 그나마 우리나라에 알려진 편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개봉안 된 영화도 많고, 인터뷰도 거의 없더군요. 아쉬운 마음에 영어로 된 인터뷰를 한번 번역해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영어권에서도 프랑스 영화 인기가 예전같지 않아서 인터뷰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아래 글은 지난해 가을 필름 스테이지와 프랑소와 오종감독이 가졌던 인터뷰를 한글로 옮긴 것입니다. 의역이 다소 가미된 점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필름 스테이지: 스위밍 풀부터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프란츠까지 정체성은 당신 영화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다. 두 개의 사랑이 기반을 두고 있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원작 속에 나타난 정체성이란 소재는 어떻게 당신의 관심을 끌게 되었나?

프랑소와 오종: 나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캐릭터를 따라가는 것이 좋다. 안 좋은 상황에 놓인 캐릭터와 영화를 시작하고 싶었고, 영화가 끝날 쯤엔 다른 위치에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다. 이야기의 여정 속 주인공인 클로이가 바로 그런 캐릭터다. 영화 초반 클로이는 자기 내부 속에 무엇이 있는지, 자신에게 무엇이 잘못된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쯤에 그녀는 그것을 깨닫고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된다.


필름 스테이지: 칸 영화제에서 영화를 봤다. 두 개의 사랑은 내게 이번 영화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다른 경쟁작들도 봤지만, 이 영화만큼 재밌게 보진 않았다. 영화를 만드는 것도 다른 "진지한" 영화들을 만들 때보다 재밌었나?

프랑소와 오종: 그렇다. 두 개의 사랑을 만드는 건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영화 뒤편에서 미장센이 펼쳐지는 고전 영화에 가까웠던 프란츠를 만드는 것보다 확실히 재밌었다. 나는 이번 영화가 내가 지금까지 시도해보지 못했던 미장센의 다양한 효과들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느꼈다. 호러와 코미디, 이런 다른 장르들을 혼합해 볼 수 있었기도 하고. 그래서 내 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두 개의 사랑은 재밌는 경험이었고, 만들면서 정말 재밌었다.


필름 스테이지: 영화 촬영은 빨리 끝났나?

프랑소와 오종: 8주 동안 찍었다. 프란츠는 9주가 걸렸는데 사실 별로 차이나지 않는다. 내 영화들의 촬영기간은 대개 꽤 짧은 편이다.


필름 스테이지 : 칸 영화제와 관련해서 언론 시사회와 갈라 프리미어가 동시에 열릴 수 있도록 티에리 프레모[각주:1]가 스크리닝 스케줄 재조정을 고려한다는 얘기를 들어봤나?

프랑소와 오종: 난 몰랐었다.


필름 스테이지: 그가 이런 제안을 한 주된 이유는 부정적인 언론 반응이 프리미어 분위기를 자주 망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소와 오종: 그건 좋은 생각이다. 나는 그런 상황이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인들이 영화를 보자마자 트위터로 평을 올리곤한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는와중에도 이미 평론가들이 멍청한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그 영화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영화를 평가할 권리는 가지고있다. 하지만, 평론가들이 자신들이 쓸 평론에 대해 충분한 시간도 가지지 않는다면 그건 평론이라 부를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평론가들도 일반 관객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티에리 프레모의 제안이 좋은 생각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자비에 돌란이 초기 언론 시사회 반응으로 짓밟혔다고 알고있다.[각주:2]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쏟아부은 결과물인데, 단 1분만에 완전히 짓밟혀버릴 수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칸 영화제의 반응과 일반 관객의 반응은 매우 다를 수 있다. 칸 영화제에서는 명작이라 생각했던 영화가 막상 나중에 극장에서 개봉되면 "이게?" 싶은 경우도 가끔 있지 않나. 영화제에서는 너무나 많은 영화를 보기 때문에 항상 제대로된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평론가들도 실수를 할 수 있다.


필름 스테이지: 일반적으로 볼 때 당신과 평론간의 관계는 어떤가? 당신도 평론을 읽나?

프랑소와 오종: 그렇다, 난 평론가들이 말해야 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알다시피 난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볼 영화를 만든다. 내가 생각하기에 난 그런 것들에 대해선 명확한 태도를 갖고있다고 본다. 내가 어떤 작품을 만들었고, 어떤 실수를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숙고한 결과 나온 의견들을 신경써서 읽어보려고 한다. 작품 내 논란으로 내가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내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싫어하기 마련이다. 난 그런 극단적인 반응에 익숙하다. 그런 반응은 곧 내 작품이 그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해주기에 난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필름 스테이지: 그렇다면 부정적인 트윗에도 상처받진 않겠다.

프랑소와 오종: 그렇다. 난 그런데 있어서 꽤 달관했다.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평론가다. 20년이 지나고나서 내 작품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보자. 나쁘다고 여겨졌던 영화가 명작으로 재평가받는 일은 꽤 자주있는 일이다. 그래서 영화를 평가할 때 시간을 어느정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필름 스테이지: 일해보고 싶은 여배우가 있나?

프랑소와 오종: 난 여배우들이 좋다. 일해보고 싶은 여배우들은 많지만, 그 배우에게 맞는 역할을 기다릴 뿐이다. 역할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적당한 역할이 있어야 그 역할에 맞는 최고의 여배우를 찾을 수 있다.


필름 스테이지: 지난 몇년간 전세계에서 양질의 LGBTQ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퀴어 시네마의 아이콘으로서 그런 영화들에 퀴어/LGBTQ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 아직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프랑소와 오종: 난 그런 과정이 영화가 관객을 찾는데 언제나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관객몰이가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퀴어 시네마" 라벨에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그런것에 반대하진 않는다.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테디 어워드를 수상한 것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까지 난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았고, 테디 어워드를 수상했다는 사실로 인해 퀴어 관객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름 스테이지: 지난 몇년간 퀴어 시네마에서 당신의 이목을 끈 신인 영화인이 있었나?

프랑소와 오종: 몇주전에 파리에서 로빈 캉필로의 120BPM을 보았다. 매우 재밌게 봤다. 내가 그 시기를 겪었기에 더 인상 깊었다. 내가 ACT UP 미팅에 참가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그 시기를 성공적으로 영화로 옮겼다고 말할 수 있다. 로빈 캉필로의 전작 이스턴 보이즈도 정말 좋았다. 로빈 캉필로는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가장 실력있고 흥미로운 감독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필름 스테이지: 당신이 독일어도 하고, 젊었을 때는 함부르크에 있는 펜팔을 방문하기도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프랑소와 오종: 사실이다.


필름 스테이지: 독일 영화 문화가 당신의 영화에 영화를 미치기도 했나?

프랑소와 오종: 영화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파시빈더[각주:3]를 발견한 것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파리 라틴지구에서 열린 파시빈더의 회고전에서 그의 모든 작품을 감상했고, 그의 강렬한 작품에 매료되었다. 그의 나라, 2차 대전이후 독일 사회에 대해 말하는 그의 영화들은 매우 진실되고 강렬했다. 파시빈더는 장르를 뒤섞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매번 같은 배우들과 함께 일해도, 작품마다 방향성은 매우 다르다. 파시빈더는 확실히 내 롤모델 중 한 명이다.


필름 스테이지: 2012년에 당신은 베를린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경쟁작들을 보고나서 나는 프랑소와 오종이라면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바바라와 미구엘 고메즈의 타부를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둘 다 황금곰상은 못탔지만..

프랑소와 오종: 황금곰상 선정에 있어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두 작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다. 사실 심사위원 경험은 좀 고통스러웠다. 심사는 민주주의지만 난 독재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에서야 말하지만 심사위원 중 나만 유일하게 터부를 지지했다. 미구엘 고메즈가 알프레드 바우어상 밖에 못받아서 꽤 화나있어서 그에게만 이 사실을 말해주었다. 내가 없었으면 아무 상도 못받았을 거라고.


필름 스테이지: 말도 안돼(...)

프랑소와 오종: 그렇다. 바바라를 가지도 심사위원들과 싸웠다. 난 바바라가 황금곰상을 받길 원했다. 내게 있어 황금곰상은 바바라와 터부 중 이중택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고, 영화제가 끝날 쯤엔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보통 난 심사위원자리는 늘 거절했는데, 그해 심사위원들은 모두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기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데 있어선) 모두 생각이 달랐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취향을 갖고있진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필름 스테이지: 그해 황금곰상은 결국 시저는 죽어야 한다에게 돌아갔다.

프랑소와 오종: 그 영화는 심사위원장이었던 마이크 리가 가장 좋아한 작품이었다. 내가 다음에는 심사위원장만 맡고 싶다 얘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필름 스테이지: 당신은 칸 영화제에서도 당신이 존경하는 영화인들이 심사위원이 되면 때때로 "의문이 드는" 결정을 내린다고 말한 적 있다.

프랑소와 오종: 내가 볼 때 올해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각주:4]은 페드로 알모도바르[각주:5]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심사위원장이 자기 선택을 강요하는데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올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알다시피 수상자 선정은 싸움이다. 심사위원이 되면 마냥 기쁠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일이 엄청 많다. 수많은 논쟁과 싸움을 거쳐야한다. 제이크 질렌할과는 자주 의견이 일치했던걸로 기억한다. 헐리웃 배우인 그와 의견이 잘 맞아서 놀랐다. 그와 팀을 이뤄서 다른 심사위원들과 맞서 싸우기도 했다.


필름 스테이지: 바바라에 나온 니나 호스는 알고 있나? 언젠가 그녀와 당신이 일한다면 멋질 것 같다.

프랑소와 오종: 그렇다, 그녀를 안다. 니나 호스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연출을 맡은 연극에 출연했을 때 날 초대했었다. 우리는 가끔 보는 사이다. 그녀는 훌륭한 배우다.


필름 스테이지: 당신은 파시빈더의 작품을 개작(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각주:6]하거나 독일과 합작(프란츠)을 하기도 했다. 독일 소재를 다루거나 독일 제작진과 함께 일해본 경험은 어땠나?

프랑소와 오종: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은 프랑스 영화에 더 가깝다. 프랑스에서 찍었고, 미국인들이 프랑스인척 하던 40년대, 50년대 헐리웃 영화에 가깝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배우들이 독일인인척 했을 뿐. 프란츠에서 독일 제작진과 함께 일한건 좋은 경험이었다. 독일 제작진이 프랑스 제작진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꽤 놀랐을거라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감독의 비전이 중요하고, 모두가 (감독이 제시한) 방향을 향해 작업한다. 다른 국가에서는 늘 그렇지만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필름 스테이지: 당신은 같은 제작진과 함께 여러번 작업하고 있다. 촬영감독 요리끄 르 소[각주:7]가 그 예이다. 시트콤(1998)을 통해 당신은 감독으로, 요리끄 르 소는 촬영감독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고 알고있다.

프랑소와 오종: 그렇다. 그는 매우 좋은 촬영감독이다. 내가 알기로 요리끄 르 소는 현재 클레어 데니스와 독일에서 촬영중이다. 우리는 영화학교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고, 여러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앞으로도 함께 더 작업하길 바란다. Fin.

  1. 칸 영화제 집행 위원장. [본문으로]
  2.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자비에 돌란은 단지 세상의 끝으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면서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본문으로]
  3.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뉴 저먼 시네마 시네아티스트들 가운데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친 감독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1982년 37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본문으로]
  4. 더 스퀘어(The Square). [본문으로]
  5. 2016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본문으로]
  6. 파시빈더의 연극을 영화화. [본문으로]
  7. 프랑소와 오종 감독과는 스위밍 풀, 시트콤과 같은 작품에서 함께 작업한 촬영감독입니다.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등의 작품의 촬영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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