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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08 [Interview] 제임스 윌비의 모리스(1987) 인터뷰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모리스'가 무려 32년만에 국내에서 정식개봉합니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에서 으레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보기 드물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상당히 인상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E. M. 포스터의 원작이 쓰여진 당시의 시대상이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리스'에서 동성애는 단순한 금기가 아니라 바꿀 수 없는 본능, 주인공이 느끼는 순수한 감정으로써 그려지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시대를 한참 앞서나간 작품이죠. 뒤늦게나마 국내 관객들이 이 작품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어서 기쁘네요. 

 미국과 해외등지에서는 작년에 4K 복원판이 재개봉 했었는데 이를 기념해 주연배우, 제임스 윌비가 헤이유가이즈(클릭)와 인터뷰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인터뷰를 가져와봤습니다. 오역이나 의역이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헤이유가이즈(이하 HU): 저희에게 이 멋진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개봉한지) 30년이 지나서도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는게 이상하게 느껴지시나요?


제임스 윌비(이하 JW): 네, 하지만 제 커리어가 '모리스'와 함께 시작됐기 때문에 이 영화는 늘 저와 함께 해왔어요. 이 영화 이후로도 머천트-아이보리[각주:1]와 두 번 더 작품을 하면서 둘과는 친한 친구가 되었죠. 언제나 자주보는 사이였구요. 유감스럽게도 이스마일은 이제 떠났고, 그것 자체만으로도 큰 비극이었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을 잃은 것만 같았으니까요. 여전히 이스마일이 그립고, 그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해요. 몇 달전에 BFI(영국 영화 협회)에서 '모리스' 상영회가 있었는데, 휴 (그랜트)와 제가 참석해서 무대인사를 했었어요. 그 때 휴에게 "남아서 영화 보고갈래?" 물어봤었는데,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던 휴가 그러자고 하더군요. 저도 20년간 '모리스'를 보지 않았는데 그 때 휴와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봤어요.


HU: 영화에 캐스팅되기 전에 E. M. 포스터의 원작을 알고 계셨나요?


JW: 아뇨, 그전엔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이런말 하긴 좀 부끄럽지만 '모리스'를 하기 전엔 E. M. 포스터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본적이 없어요. 물론 캐스팅되고 나선 모두 읽었죠.


HU: 윌비씨가 캐스팅 되기 전 (휴) 그랜트씨는 이미 영화에 캐스팅된 상태였다는걸 알고계셨나요? 이미 서로 아는 사이여서 더 편하셨는지?


JW: 전 원래 주인공 역할이 아니었어요, 모리스역으로 처음 캐스팅된건 줄리언 샌즈[각주:2]였죠. 이유는 모르지만, 촬영 직전에 줄리언이 하차했고, 제가 다시 주인공 후보가 되었어요. 전 원래 다른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고, 짐 (아이보리)은 캐스팅 감독에게 "쟨 줄리언이랑 너무 닮아서 영화에 넣으면 안돼"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줄리언이 하차하고 제가 다시 주인공 후보가 돼서 휴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나요.[각주:3] 휴랑 함께 대본을 읽고 오디션 할 걸 알고있었거든요, 휴는 이미 (클라이브 역으로) 캐스팅된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오디션 하루 전에 휴랑 대본을 쭉 훑어봤어요. 오디션 전에 배우랑 함께 합을 맞춰볼 수 있었다는게 제겐 큰 이득이었고,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죠.


HU: 게이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한 우려는 있으셨나요? 혹은 당시 주류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하셨는지 궁금해요.


JW: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질문을 하던데, 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그런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우린 배우고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 연기를 할 뿐입니다. 모리스 역할은 그 당시 제 나이대의 배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 중 하나였어요. (그런 역할을 맡게 돼서) 너무나 좋았을 따름이예요, 이 역할과 함께 제 커리어도 시작됐구요. 아시다시피 그런 걱정은 미국스런 걱정이죠, 미국 배우들은 게이 역할이나 약하게 비춰지는 역할을 연기하는걸 우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영국배우들은 그런 걱정을 많이 안하거든요.


HU: 휴, 루퍼트 (그레이브스)[각주:4]와는 어떤 추억을 갖고 계신가요? 촬영 당시는 많이 기억나시나요?


JW: 모두 기억해요 (웃음), 대단했죠. 휴는 대단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솔직면서도 웃긴 친구죠. 장난치기 딱 좋은 친구랄까, 루퍼트는 그냥 정말 솔직하면서도 놀라울정도로 따뜻하고, 열려있는 배우였어요. 모리스 캐릭터나 제가 모리스를 연기했던 방식에 있어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면, 모리스는 주변에 좌우되는 캐릭터였다는 거예요. 모리스는 끊임없이 이끌려 다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스토리에 있어 앞발보단 뒷발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배우로서) 제가 할 일은 그냥 제게 일어날 일들이 일어나는 걸 받아들이는 거였어요, 루퍼트나 휴 같은 배우들과 합을 맞추는 일은 좋았습니다.

 다른 멋진 배우들을 언급하자면, 잠깐 등장해서 경이로운 연기를 보여주는 뎀홈 엘리엇[각주:5]이나 사이먼 캘로[각주:6], 벤 킹슬리[각주:7]가 있었죠. 그런 역량있는 배우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저처럼 젊은 배우에겐 정말 환상적일 따름이었습니다.


HU: 30년 전 이 영화를 본 뒤 이 영화가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놨는지 사람들이 말할 때면 놀라시나요?


JW: 수백통은 받았을거예요, 특히 미국에서 말이죠. 많은 분들이 이 영화가 자신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고, 자신감을 주었다고 말하더군요, 꼭 커밍아웃을 안 하더라도 자신의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줬다고요. 제가 받았던 팬레터들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론 다 같은 말을 하고 있었어요. 누군가의 삶에 진정 변화를 가져온 영화에 출연했다는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메인스트림, 그것도 매우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였다는 사실이 동성애자 관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실패한 사랑과 성공적인 사랑, 두 가지 게이 러브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는 점 역시 동성애자 관객들에겐 일종의 긍정으로 다가갔겠죠.


HU: 완전히 새로운 세대가 당신이 주연한 30년 전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건 어떤 느낌인가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각주:8]의 팬들에게 이 영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기대해봐도 될까요?


JW: 오, 그럴것 같아요. 젊은 동성애자들의 사랑이란 점에서 ('모리스'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비슷한 테마를 가지고 있죠, 같은 사람이 각본을 쓰기도 했구요. 그런 점에서 '모리스'가 새로운 관객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거라 생각해요, 여전히 시대에 뒤쳐지지도 않았구요. '모리스'는 깊이있는 작품이예요, '하워즈 엔드'와 '전망 좋은 방'[각주:9]도 좋아하지만, 그 작품들은 '모리스'보단 거품이 낀 작품들이죠. 제 말은, 포스터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모리스'에서) 에드워드 시대의 영국사회의 취약한 부분 아래를 제대로 표현해냈단 뜻이예요, '모리스'는 정말 그런 부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관객을 밀어부치고 재촉하기도 해요, 편히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죠.


HU: 영화는 계급제에 대한 아름다운 연구물이기도 해요, 촬영하실 때도 그렇다는걸 알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JW: 물론이죠! 포스터는 정말 뛰어난 작가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늘상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 원작을 바이블로 삼았어요. 포스터는 부드럽게 기득권의 민낯을 드러내게 하는 멋진 능력을 갖고있죠. '모리스'는 작가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었기 때문인지 작가의 그런 능력이 특히 더 잘 드러나는 소설이기도 해요, 소설 속 계급제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구요. 이 책이 정말 뛰어난 이유는 모리스가 영웅으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이예요, 제 말은 즉슨, (소설 속에서) 모리스는 빈민층에 대한 막말을 서슴치 않고, 스커더의 아버지가 동네 도살업자란걸 알고나선 정말로 역겨움을 느끼죠... (도살업자란) 생각 자체에 거부감이 드는거예요, 하지만 소설 말미에는 하층민에 대한 그의 거부감이 그의 스승과 부모, 모든 사회가 모리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려준 것에 불과하다는걸 깨닫고 모리스는 그걸 뛰어넘게 됩니다.


HU: 최근에는 '폴다크'[각주:10]에 출연하고 계신데,  드라마에 참여하신건 재밌으셨나요?


JW: 네, 재밌는 드라마죠. 각본도 좋고, 사랑스런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좋습니다. 가서 제 분량만 하면 되기 때문에..(웃음) 조연 역할은 늘 조금 어색하게 느껴져요, 아시다시피 드라마의 스토리는 메인 캐릭터들 중심이라 (조연으로서) 주연배우들에 맞춰주다가 제 차례가 와야 몸 좀 푸는거 거든요.


HU: 마지막으로 현재 하고 계신 다른 일에 대해 말씀 좀 해주세요.


JW: 어, 들으면 웃을지도 몰라요, 왜냐면 제가 '모리스'연극을 연출하거든요. '어보브 더 스태그'란 작은 극장에서 상연하고 있다가 최근에 박스홀의 새로운 장소를 옮겼어요. 작지만 정말 아름다운 극장이죠, 리허설 공간이랑 사랑스런 바도 갖추고 있구요. 9월 중순쯤 '모리스' 상연을 시작할 예정인데, 이거 '모리스'가 절 괴롭히려고 돌아온 것처럼 보이네요. (웃음)

  1.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연인이자 제작자였던 이스마일 머천트와 많은 작품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특히 E. M. 포스터의 소설을 많이 영화화 했었죠. [본문으로]
  2. 아이보리 감독의 또다른 영화, '전망 좋은 방'의 주연배우. 공교롭게도 제임스 윌비 역시 '전망 좋은 방'에 단역으로 잠깐 출연한 바 있습니다. [본문으로]
  3. '모리스' 이전에 둘은 이미 함께 작업한 적이 있었습니다. [본문으로]
  4. 스커더 역할을 맡은 배우. [본문으로]
  5. 배리 박사역. [본문으로]
  6. 듀시 선생님역. [본문으로]
  7. 레스커-존스역. 최면술사. [본문으로]
  8. '모리스'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각본을 집필해서 2018년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초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공동 연출까지 생각했으나 연출에는 손대지 않았죠. [본문으로]
  9. E. M. 포스터의 또다른 작품들. 제임스 아이보리-머천트 이스마일에 의해 두 작품 모두 영화화 되었습니다. [본문으로]
  10. 윈스턴 그래햄의 소설을 영상화한 영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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