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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10 [Review] 카운슬러(The Counselor, 2013)
*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개봉이 다음주라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떡하니 예매가 가능하길래 얼른 관람하고 왔습니다. 영화사에서 홍보차원으로 마련한 유료 GV 시사회였습니다. 상영관 입장전 민음사에서 이달 초 출판한 코맥 맥카시의 각본판 책까지도 나눠줘서 무척 좋았습니다. 천천히 읽어보면서 영화화되면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비교해봐도 재밌을 것 같네요.
아무튼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헐리웃 대표 비쥬얼리스트답게 리들리 스콧 감독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영상미가 눈을 압도합니다. 차가움이 서려있는 코맥 맥카시의 각본과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세련된 연출이 뭔가 상반되면서도 굉장히 잘 어울려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감독의 전작, 프로메테우스와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내용에서 허술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구멍도 여기저기 보여요. 특히 영화에서 다뤄지는 범죄 자체가 여러모로 좀 두루뭉실하게 그려져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카운슬러가 처한 상황이 좀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영화 전체적으로 생각해볼 때, 영화는 '범죄' 자체보다 선택에 따른 결과에 반응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데 관심이 있긴합니다. 결과적으로 영화 속 '범죄'가 주제를 표현해내는 한 장치에 불과합니다만, 좀더 논리적이고 개연성있게 배치했다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코맥 맥카시가 각본에서 나타내고자한 선택과 결과, 인간의 이면성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은 영화에서 뚜렷한 해답을 주지 않기에 관객들이 다시한번 영화를 곱씹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시작되는 그런 류의 영화랄까.
파격적이고 노골적인 섹스묘사에 좀 놀랐는데, 영화가 예견된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펼쳐지는 인간의 생존욕구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일례로 말키나의 자동차신이 그 대표적인 예죠. 영화 속 가장 쇼킹한 장면이었는데, 이 여자가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레이너와 관객을 동시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사랑에 기초하는 카운슬러와 로라의 섹스가 두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반면, 이 자동차 신은 말키나의 비인간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주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위 자동차 신에서도 드러나듯 카메론 디아즈가 맡은 말키나는 결과적으로 볼 때, 영화 속 카운슬러가 겪는 좌절의 진정한 배후이면서 그의 선택에 따라 그가 겪는 또 다른 세계, 그 자체입니다. 말키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온도 없는' 현실 자체를 나타내는 캐릭터죠. 말키나의 세계는 그저 카운슬러가 자신의 세계로 들어와주길 기다리기만 했을뿐.. 영화 주제 자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캐릭터이기도하고, 마이클 패스벤더의 카운슬러는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무력한 캐릭터이기에 상대적으로 더욱더 빛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밝고 경쾌한 코미디 이미지가 강했던 카메론 디아즈를 기용했던 것이 오히려 반전된 매력을 가져와서 캐릭터를 극대화시키기도 했구요. 카운슬러, 영화 자체가 카메론 디아즈의 재발견이라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습니다. 혹독한 현지 평가만 아니었다면 연기상 수상까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결과적으로 눈과 귀(사운드 트랙 역시 좋습니다.)가 호강하는 비쥬얼 영화이기도 하지만, 코맥 맥카시 특유의 무미건조하면서도 철학적인 주제까지 담고있는 욕심많은 영화였습니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영화예요.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는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추락하고 좌절하는 주인공의 괴로운 모습을 보며 동정하거나, 여기서 만족을 느껴야하는 Guilty Pleasure를 찾는 편이 빠를겁니다. 이런 류의 영화와 다양한 열린 해석을 즐기는 관객들에게 분명 카운슬러는 매력적인 영화가 될 것임에 틀림없어요. 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 P. S. : 말키나 역할은 원래 안젤리나 졸리에게 갔었다죠? 만약 안젤리나 졸리가 캐스팅됐으면, 졸리가 피트를 죽이는 괴랄한 연출이...
 게다가, 크루즈-바르뎀에 이은 졸리-피트, 두 부부가 동시에 캐스팅된 영화가 되었을겁니다.

+ P. S. : 영화가 예정된 상영시간에 시작하다가 갑자기 툭 끊기고 다시 시작했었어요. 근데, GV시간까지 촉박하다고 영화사 직원이 영화 크레딧을 잘라먹는 통에 관객들의 강력한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전 영화 크레딧까지 챙겨보는 편은 아닙니다만, 카운슬러처럼 여운있는 영화는 크레딧 올라가면서 생각도 좀 하고 앉아있는터라 갑자기 툭 끊어지는 크레딧이 좀 깨긴했어요... GV는 궁금하긴했지만 기분도 상하고해서 그냥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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