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오브 헤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4.11 [Review]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2005)


이 영화는 볼까말까 고민하다가 개봉한지 10년이 다되서야 보게되는군요.. 저도 어렸을 적엔 에픽물, 전쟁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때문에 이 영화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 리들리 스콧감독은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작품마다 편차가 확실히 존재하는 감독이다보니 취향에 맞지않겠다 싶으면 보기가 좀 꺼려집니다. 더군다나, 킹덤 오브 헤븐은 스콧감독의 영화가 확실히 편집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실로 증명해주는 케이스라 더욱더 꺼려질 수밖에 없었어요.

 당연히 역사 전쟁물에 있어서 명작의 평을 받고있는 감독판을 감상했습니다. 찾아보니 영화에 맞게 실제 역사를 많이 각색하긴했지만, 뚜렷하고 멋진 주제로 각색의 영향이 많지 않다는 게 중론이더군요. 확실히 영화는 재미있고, 생각해볼 꺼리를 던져준다는 점이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전세계의 뜨거운 감자로 군림중인 '종교'에 대해 이렇게 중립적이고도 객관적으로 접근한 영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헐리웃 영화에서 늘 부정적으로만 그려졌던 무슬림들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 정말 좋았습니다. 십자군 전쟁에서의 무슬림세력을 악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악역 역할을 내부세력으로 옮김으로써, 영화가 나타내고자하는 종교와 평화가 가지는 의미를 좀 더 강조하는 쪽으로 잘 전달되었습니다. 많은 메인 캐릭터들이 종교라는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따라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주인공 발리앙이 대표적이지만, 보두앵 4세와 살라딘, 두 캐릭터가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서로를 적으로 여기기 전에 타협해서 공존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는 캐릭터들이잖아요. 영화화를 거쳐 실제와 물론 다르긴하겠지만, 오늘날 종교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역사속의 인물들을 통해 이렇게 보여주니 아이러니한 동시에 교훈적이기도합니다. 종교라는 명목하에 저질러진 인류역사 속 수많은 비극들은 종교들이 서로를 맹목적으로 적대시하지 않고, 서로의 종교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선행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겠죠. 결론적으로, 킹덤 오브 헤븐은 이런 간단명료하고도 보편적으로 먹힐 수 있는 메시지를 실제 역사와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케이스입니다. 영화는 현대 정치 메시지를 역사물에 끼워넣다가 이상한 괴리감만 낳는 실수를 범하지 않습니다. 각색의 수준도 영화의 주제를 명료화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이뤄져서 역사의 큰 줄기는 건드리지 않았어요. 명석한 접근법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상당한 영화입니다. 주인공 발리앙의 올랜드 블룸과 시빌라역의 에바 그린을 제외하면, 대다수 주요 캐릭터들이 베테랑 연기자들로 채워졌습니다. (비중이 낮거나 단역 수준의 배우들도 잘 찾아보면 나름 미드에서 이름 좀 알린 분들이 많이 출연했더라구요.) 그중에서도 보두앵 4세역의 에드워드 노튼은 짧은 출연분량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존재감을 남겨줘서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병과 주변의 압박을 이겨내고 자기 정치를 펼치는 성군연기가 일품이예요. 작중내내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노튼 특유의 앳되면서도 선한 목소리만으로도 단번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가면사이로 보이는 눈빛연기도 좋았구요. 배역에 딱 맞는 이미지의 배우가 캐스팅된 것같습니다. 주인공역의 올랜드 블룸일경우 지금도 연기를 별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역시 이런 역사물에 잘 어울리는 것 같긴합니다. 캐릭터 자체가 올곧고 정직한 터라 연기가 좀 뻣뻣해도 어느정도 커버가 되더군요. 다만 커버해도 주변 온사방에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선배들이 많이 포진해있어서 비교되는건 사실입니다(...) 시빌라역의 에바 그린의 경우, 들은바로 극장판에서 시빌라 비중이 편집으로 대폭 삭제되서 에바 그린이 엄청 실망했다고 하던데 감독판은 엄연히 극중 히로인으로 굉장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팬으로서, 그냥 남주인공 여친역으로 사라질 줄 알았는데 시빌라 나름대로의 스토리라인도 엄연히 존재하고, 그녀가 겪는 갈등과 삶이 굴곡있게 그려져서 정말 좋았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이 헐리웃 첫 진출작인데, 최근 작품들만큼의 연기를 보여줘서 놀랐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은 역사를 바라보는 영화만의 시각, 주제, 배우들의 호연, 철저한 고증이 잘 어울어진 에픽물계의 명작입니다. 저처럼 역사나 종교에 관해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몰입시킬수 있을 정도로 매력도 다분하고, 영화 자체만으로도 그냥 재미있습니다. 3시간이면 정말 너무 길어서 토할정도는 아니었는데 애초에 이걸 극장에 걸것이지, 20세기 폭스사는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요? 관객들은 무조건 2시간짜리의 생각없는 폭풍전개 액션물만 좋아할 거라 생각한걸까요?.. 좋은 스토리가 있고, 완성도도 따라주는데 좀더 자신감을 밀고, 관객들의 수준을 믿었어야 했습니다. 물론 감독판을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한 스콧 감독도 잘한건 없습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