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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10 [Review] 헤이트풀 8(Hateful Eight, 2015)

*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장고: 분노의 추적자 이후 3년만에 돌아온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 8을 보고왔습니다. 개봉 전부터 대본유출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품인데, 우여곡절끝에 빛을 보게된 사연많은 작품이죠. 서부극을 좋아하지 않지만, 단지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이란 이유만으로 개봉하자마자 고민없이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미 전작, 장고: 분노의 추적자로 서부극마저 타란티노가 만들면 다르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타란티노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다스러운 악당과 재치있는 유머, 화끈한 액션은 여전합니다. 다만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등장인물 전체가 그 '수다스러운 악당'들이란거죠. 영화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각주:1] 헤이트풀 8의 주요등장 인물 전원은 악당입니다. 따라서 기존 그의 작품들처럼 악당과의 대결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할 때 얻는 통쾌함[각주:2]은 사라졌다고 보셔도 됩니다. 대신 이 공백을 채우는 것은 악당들 사이의 속내를 추리하는 두뇌싸움입니다. 헤이트풀 8은 서부극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타란티노식 추리극입니다. 각자 다른 꿍꿍이를 가진 사람들이 눈보라때문에 외딴 여관에 고립된다는 설정부터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연상시키지 않나요? 물론 살인과 범인찾기는 타란티노식 유혈이 낭자하는 잔혹한 살인게임입니다. 문제는 이 추리극식 재미가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거죠. 왠지 모르겠지만, 이번 영화 초반부 타란티노의 유머는 전작들보다 상당히 적중률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여전히 어처구니 없고 웃기긴한데 이것 역시 후반부가 훨씬 좋아요. 결과적으로 인물들을 소개하고 본격적인 배경을 설정, 준비하는 1장과 2장은 지루해져 버렸습니다. 처음으로 이 감독 영화에서 쓸떼없이 길다고 느껴졌습니다. 더군다나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남북전쟁, 인종차별의 정서는 우리나라에서 딱히 입에 오르내리는 주제가 아니다보니 한국인 입장에서 완전히 이해하고 재미를 찾기가 힘들었어요. 

 등장인물들이 여전히 매력적이긴합니다. 사무엘 잭슨은 장고에 비하면 착해보일정도로 그나마 덜 악한(...) 워렌 소령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고, 유일한 홍일점인 제니퍼 제이슨 리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속내를 알 수 없는 질척거리는 악녀연기를 선보입니다. 하지만 제일 재밌었던 캐릭터는 단연 월튼 고긴스가 맡았던 크리스 매닉스입니다. 첫등장에서 그냥 허풍만 잔뜩 든 멍청이 역할로 보였던 매닉스는 관객들의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이죠. 사악하기 짝이 없는 증오의 8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가 묘수를 부린건 지, 단순히 운이 정말 좋은 인물인지 끝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매닉스란 인물은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영화는 결국 맥거핀처럼 그의 정체에 대해 아무런 답 없이 결말이 나버리기 때문에 더욱더 미궁속으로 빠지는 캐릭터기도 하고요. 

 결론적으로 헤이트풀 8은 감독의 전작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압도해서 끌고가는 힘은 부족합니다. 이 점이 정말 아쉽긴 하지만, 영화의 멋진 후반부를 보면 역시 좋은 의미로 '전형적인' 타란티노식 영화기도해요. 왁자지껄한 수다판 분위기로 서부극과 정통 추리극, 스플래터 영화를 짬뽕할 수 있는 감독은 타란티노 밖에 없고 그 유일성은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 P. S.: 캐스팅이 정말 좋았던 영화지만, 조디역의 채닝 테이텀은 좀 별로였습니다. 감독 의도는 히어로/선역만 맡은 배우를 써서 의외성을 주려고 한 거지만, 영화 속 조디가 너무 조금 등장하기도 하고, 채닝 테이텀의 연기가 사악한 갱 보스로 보이기엔 너무 위협적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자막에는 계속 조디가 데이지의 '오빠'라고 하는데 아무리봐도 조디가 동생이지 어떻게 오빠란겁니까?(...)

  1. 헤이트풀 8이라니.. '증오의 8인'이란 제목이 훨씬 더 낫습니다. 마케팅팀은 제목에 영어쓰면 쿨해보일거란 멍청한 생각은 이제 좀 접어두면 좋겠어요. [본문으로]
  2. 늘 그랬거나, 완전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전작들은 권선징악에 충실했었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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