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장장 10년만에 돌아온 중간계입니다. 피터 잭슨 감독과 이안 맥켈런이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가슴벅찼는데, 프리퀄 또한 반지의 제왕처럼 3년 동안 영화관을 찾는다니 팬으로서는 감지덕지할뿐..

그래도 호빗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만큼 뛰어나다고는 차마 못하겠습니다. 호빗 : 뜻밖의 여정은 할말은 없는 데 시간은 남고,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니 힘든 기색이 역력해보여요. 스피킹 시험 때 제한시간 채우려는 사람같이요. 원작이 너무나 길어서 어쩔 수 없이 잘라내기에 바빴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이를 삼부작으로 늘인 것도 지켜보는 입장에선 무리수같아 보이는데, 심지어 그 첫편의 러닝타임이 세시간이라니.. 피터 잭슨감독이 지나치게 전 시리즈의 명성을 무턱대고 이어나가고자 한게 아닐런지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판단해보되, 이 걱정은 들어맞기도했고, 빗나가기도 했습니다. 먼저 들어맞았던 것은 짧은 원작을 늘이다보니 필연적으로 이야기의 밀도는 떨어집니다. 호빗이 반지의 제왕처럼 압축적이고도 밀도있는 이야기는 못한다는거죠. 편집해서 적절히 생략해서 보여줄 수 있는 내용들까지 친절하고 자세하게 구구절절 이야기하다보니 영화의 흐름도 흐트러지고 호흡도 이상해집니다. 초반에 비해 중후반부 지나치게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이 중 일부는 그다지 없어도 상관없어 보이기에 더욱더 밸런스 조절 실패처럼 보입니다.
초반 13인의 드워프들과 빌보의 합류전까지 느릿느릿 진행되던 이야기가 후반부 액션 어드벤처물로 급물살을 타도 그렇습니다. 고블린 왕과 아조크로 빌런들의 역할이 어중간하게 분배되면서 둘 모두 그렇다할 통쾌한 마무리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고블린 왕은 뭐... 애초부터 그리 기대는 안했지만 영화에서 정말 잡몹(...)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조크는 여기저기 들어보니 애초에 존재 자체가 뻥튀기된 캐릭터인데다가 소린 일행과 빌보 사이의 연대감 형성을 위한 도구에 불과해보여요. (뭔가 엔딩에서 마무리는 지어야겠다는 사명감때문에 넣은 것 같았음..) 아예 아조크와의 대결 자체를 매듭짓지않고 후속편에 넘기는 태도도 그렇고. 차라리 골룸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호빗 시리즈의 느슨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빌보와의 긴장되면서도 유머러스한 대결을 보여주는데 그게 그나마 발군이었습니다. 골룸만큼 위협적이고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메인 빌런은 부재했다고 봅니다. 스마우그가 후속편에서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런지..
 

반면, 제 걱정을 빗나갔던 점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밝고 경쾌한 영화의 분위기입니다. 호빗은 원작부터가 거대한 판타지 대서사시를 그려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달리 아동용 동화풍에 가깝다죠. 분위기면에서 이런 원작의 색채는 영화의 태도를 완전히 달라지게 합니다.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하느냐 마느냐에 중간계 전체의 생사가 달렸던 반지의 제왕과 달리 호빗은 용이 뺏어간 왕국을 되찾으려는 드워프들과 마법사, 호빗의 모험극입니다. 세계관 전체의 운명에서 그 동기가 축소되고 작아진만큼 호빗은 반지의 제왕보다는 한층 가벼운 분위기로 일관됩니다. 고로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비장할 필요도 없고, 적절한 유머가 가미되어도 그다지 거슬리지 않아요. 빌보 배긴스는 그 점에서 호빗에 최적화된 주인공이죠. 빌보는 적당히 우스꽝스럽고 적당히 진지할 줄도 아는 캐릭터입니다. 영화 속 간달프가 말하듯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함이 이 캐릭터가 갖는 강점이자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저는 생각해봅니다. 그에겐 사명감보다는 모험 자체로써 여정이 더 의미있습니다. 얼떨결에 동참하게된 모험을 통해 철없던 주인공이 성장해나가는것, 판타지물에서 써먹고 써먹은 전형적인 인물상이지만 빌보는 여기에 유머와 재치로 차별을 둡니다. 심술궃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워할 수 없는 빌보는 마틴 프리먼의 살짝 과장되면서도 어수룩한 연기와 만나 100% 맞는 옷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게해요. 게다가 그 앙증맞은 행동과 걸음걸이란.. 동화에서 뛰쳐나온 것만 같습니다.
 

여전히 3부작은 너무 길다고 생각됩니다. 딱봐도, 초창기 의도대로 2부작으로 진행됐다면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는 내용같아 보이는데.. 굳이 피터 잭슨 감독이 왜 더 늘여야겠다고 마음먹은 건지는 남은 두 편을 일단 다 보고나서 판단해야겠지요. 후속편들의 완성도 여부에 따라 호빗이 원작뻥튀기에 그칠지, 새로운 신화의 탄생일지의 여부가 결정될겁니다. 아직 시작이기도하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증명된 매력적인 세계관을 믿는만큼 호빗 시리즈가 더 나아질거란 희망을 갖고 2편을 기다릴까합니다.


 
+ P. S. : 왕십리 아이맥스에서 관람했습니다. HFR 48 프레임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정말 애매해요. 정말 1.2배속 정도의 빠르기로 돌린것 같긴합니다.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서 빨리감기했나..? 그래도 너무 길어.. 솔직히 저는 엄청난 차이는 못 느꼈습니다. 다만 CG에서 지나치게 이질감이 느껴지더군요. CG기술이 퇴보했나 싶을정도 티가 팍팍.. 48프레임때문인지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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