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개봉이 다음주라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떡하니 예매가 가능하길래 얼른 관람하고 왔습니다. 영화사에서 홍보차원으로 마련한 유료 GV 시사회였습니다. 상영관 입장전 민음사에서 이달 초 출판한 코맥 맥카시의 각본판 책까지도 나눠줘서 무척 좋았습니다. 천천히 읽어보면서 영화화되면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비교해봐도 재밌을 것 같네요.
아무튼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헐리웃 대표 비쥬얼리스트답게 리들리 스콧 감독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영상미가 눈을 압도합니다. 차가움이 서려있는 코맥 맥카시의 각본과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세련된 연출이 뭔가 상반되면서도 굉장히 잘 어울려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감독의 전작, 프로메테우스와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내용에서 허술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구멍도 여기저기 보여요. 특히 영화에서 다뤄지는 범죄 자체가 여러모로 좀 두루뭉실하게 그려져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카운슬러가 처한 상황이 좀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영화 전체적으로 생각해볼 때, 영화는 '범죄' 자체보다 선택에 따른 결과에 반응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데 관심이 있긴합니다. 결과적으로 영화 속 '범죄'가 주제를 표현해내는 한 장치에 불과합니다만, 좀더 논리적이고 개연성있게 배치했다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코맥 맥카시가 각본에서 나타내고자한 선택과 결과, 인간의 이면성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은 영화에서 뚜렷한 해답을 주지 않기에 관객들이 다시한번 영화를 곱씹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시작되는 그런 류의 영화랄까.
파격적이고 노골적인 섹스묘사에 좀 놀랐는데, 영화가 예견된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펼쳐지는 인간의 생존욕구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일례로 말키나의 자동차신이 그 대표적인 예죠. 영화 속 가장 쇼킹한 장면이었는데, 이 여자가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레이너와 관객을 동시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사랑에 기초하는 카운슬러와 로라의 섹스가 두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반면, 이 자동차 신은 말키나의 비인간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주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위 자동차 신에서도 드러나듯 카메론 디아즈가 맡은 말키나는 결과적으로 볼 때, 영화 속 카운슬러가 겪는 좌절의 진정한 배후이면서 그의 선택에 따라 그가 겪는 또 다른 세계, 그 자체입니다. 말키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온도 없는' 현실 자체를 나타내는 캐릭터죠. 말키나의 세계는 그저 카운슬러가 자신의 세계로 들어와주길 기다리기만 했을뿐.. 영화 주제 자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캐릭터이기도하고, 마이클 패스벤더의 카운슬러는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무력한 캐릭터이기에 상대적으로 더욱더 빛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밝고 경쾌한 코미디 이미지가 강했던 카메론 디아즈를 기용했던 것이 오히려 반전된 매력을 가져와서 캐릭터를 극대화시키기도 했구요. 카운슬러, 영화 자체가 카메론 디아즈의 재발견이라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습니다. 혹독한 현지 평가만 아니었다면 연기상 수상까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결과적으로 눈과 귀(사운드 트랙 역시 좋습니다.)가 호강하는 비쥬얼 영화이기도 하지만, 코맥 맥카시 특유의 무미건조하면서도 철학적인 주제까지 담고있는 욕심많은 영화였습니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영화예요.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는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추락하고 좌절하는 주인공의 괴로운 모습을 보며 동정하거나, 여기서 만족을 느껴야하는 Guilty Pleasure를 찾는 편이 빠를겁니다. 이런 류의 영화와 다양한 열린 해석을 즐기는 관객들에게 분명 카운슬러는 매력적인 영화가 될 것임에 틀림없어요. 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 P. S. : 말키나 역할은 원래 안젤리나 졸리에게 갔었다죠? 만약 안젤리나 졸리가 캐스팅됐으면, 졸리가 피트를 죽이는 괴랄한 연출이...
 게다가, 크루즈-바르뎀에 이은 졸리-피트, 두 부부가 동시에 캐스팅된 영화가 되었을겁니다.

+ P. S. : 영화가 예정된 상영시간에 시작하다가 갑자기 툭 끊기고 다시 시작했었어요. 근데, GV시간까지 촉박하다고 영화사 직원이 영화 크레딧을 잘라먹는 통에 관객들의 강력한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전 영화 크레딧까지 챙겨보는 편은 아닙니다만, 카운슬러처럼 여운있는 영화는 크레딧 올라가면서 생각도 좀 하고 앉아있는터라 갑자기 툭 끊어지는 크레딧이 좀 깨긴했어요... GV는 궁금하긴했지만 기분도 상하고해서 그냥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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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모자 가정이 지명 수배자를 도와주면서 그와 얽히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늘 밝은 분위기의 코미디 드라마를 주로 연출해왔던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첫 정통극이라 매우 기대됩니다.
영화제 프리미어 때 반응은 좀 나뉘었던 것 같긴한데, 그래도 믿고보는 감독에 케이트 윈슬렛이라 두말없이 필관람..
예고편이 끈적하고 도발적인게 주인공들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참고로, 예고편에 사용된 음악은 Other Lives의 Take Us Alive입니다.
 
Labor Day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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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장장 10년만에 돌아온 중간계입니다. 피터 잭슨 감독과 이안 맥켈런이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가슴벅찼는데, 프리퀄 또한 반지의 제왕처럼 3년 동안 영화관을 찾는다니 팬으로서는 감지덕지할뿐..

그래도 호빗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만큼 뛰어나다고는 차마 못하겠습니다. 호빗 : 뜻밖의 여정은 할말은 없는 데 시간은 남고,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니 힘든 기색이 역력해보여요. 스피킹 시험 때 제한시간 채우려는 사람같이요. 원작이 너무나 길어서 어쩔 수 없이 잘라내기에 바빴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이를 삼부작으로 늘인 것도 지켜보는 입장에선 무리수같아 보이는데, 심지어 그 첫편의 러닝타임이 세시간이라니.. 피터 잭슨감독이 지나치게 전 시리즈의 명성을 무턱대고 이어나가고자 한게 아닐런지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판단해보되, 이 걱정은 들어맞기도했고, 빗나가기도 했습니다. 먼저 들어맞았던 것은 짧은 원작을 늘이다보니 필연적으로 이야기의 밀도는 떨어집니다. 호빗이 반지의 제왕처럼 압축적이고도 밀도있는 이야기는 못한다는거죠. 편집해서 적절히 생략해서 보여줄 수 있는 내용들까지 친절하고 자세하게 구구절절 이야기하다보니 영화의 흐름도 흐트러지고 호흡도 이상해집니다. 초반에 비해 중후반부 지나치게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이 중 일부는 그다지 없어도 상관없어 보이기에 더욱더 밸런스 조절 실패처럼 보입니다.
초반 13인의 드워프들과 빌보의 합류전까지 느릿느릿 진행되던 이야기가 후반부 액션 어드벤처물로 급물살을 타도 그렇습니다. 고블린 왕과 아조크로 빌런들의 역할이 어중간하게 분배되면서 둘 모두 그렇다할 통쾌한 마무리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고블린 왕은 뭐... 애초부터 그리 기대는 안했지만 영화에서 정말 잡몹(...)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조크는 여기저기 들어보니 애초에 존재 자체가 뻥튀기된 캐릭터인데다가 소린 일행과 빌보 사이의 연대감 형성을 위한 도구에 불과해보여요. (뭔가 엔딩에서 마무리는 지어야겠다는 사명감때문에 넣은 것 같았음..) 아예 아조크와의 대결 자체를 매듭짓지않고 후속편에 넘기는 태도도 그렇고. 차라리 골룸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호빗 시리즈의 느슨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빌보와의 긴장되면서도 유머러스한 대결을 보여주는데 그게 그나마 발군이었습니다. 골룸만큼 위협적이고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메인 빌런은 부재했다고 봅니다. 스마우그가 후속편에서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런지..
 

반면, 제 걱정을 빗나갔던 점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밝고 경쾌한 영화의 분위기입니다. 호빗은 원작부터가 거대한 판타지 대서사시를 그려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달리 아동용 동화풍에 가깝다죠. 분위기면에서 이런 원작의 색채는 영화의 태도를 완전히 달라지게 합니다.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하느냐 마느냐에 중간계 전체의 생사가 달렸던 반지의 제왕과 달리 호빗은 용이 뺏어간 왕국을 되찾으려는 드워프들과 마법사, 호빗의 모험극입니다. 세계관 전체의 운명에서 그 동기가 축소되고 작아진만큼 호빗은 반지의 제왕보다는 한층 가벼운 분위기로 일관됩니다. 고로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비장할 필요도 없고, 적절한 유머가 가미되어도 그다지 거슬리지 않아요. 빌보 배긴스는 그 점에서 호빗에 최적화된 주인공이죠. 빌보는 적당히 우스꽝스럽고 적당히 진지할 줄도 아는 캐릭터입니다. 영화 속 간달프가 말하듯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함이 이 캐릭터가 갖는 강점이자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저는 생각해봅니다. 그에겐 사명감보다는 모험 자체로써 여정이 더 의미있습니다. 얼떨결에 동참하게된 모험을 통해 철없던 주인공이 성장해나가는것, 판타지물에서 써먹고 써먹은 전형적인 인물상이지만 빌보는 여기에 유머와 재치로 차별을 둡니다. 심술궃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워할 수 없는 빌보는 마틴 프리먼의 살짝 과장되면서도 어수룩한 연기와 만나 100% 맞는 옷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게해요. 게다가 그 앙증맞은 행동과 걸음걸이란.. 동화에서 뛰쳐나온 것만 같습니다.
 

여전히 3부작은 너무 길다고 생각됩니다. 딱봐도, 초창기 의도대로 2부작으로 진행됐다면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는 내용같아 보이는데.. 굳이 피터 잭슨 감독이 왜 더 늘여야겠다고 마음먹은 건지는 남은 두 편을 일단 다 보고나서 판단해야겠지요. 후속편들의 완성도 여부에 따라 호빗이 원작뻥튀기에 그칠지, 새로운 신화의 탄생일지의 여부가 결정될겁니다. 아직 시작이기도하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증명된 매력적인 세계관을 믿는만큼 호빗 시리즈가 더 나아질거란 희망을 갖고 2편을 기다릴까합니다.


 
+ P. S. : 왕십리 아이맥스에서 관람했습니다. HFR 48 프레임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정말 애매해요. 정말 1.2배속 정도의 빠르기로 돌린것 같긴합니다.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서 빨리감기했나..? 그래도 너무 길어.. 솔직히 저는 엄청난 차이는 못 느꼈습니다. 다만 CG에서 지나치게 이질감이 느껴지더군요. CG기술이 퇴보했나 싶을정도 티가 팍팍.. 48프레임때문인지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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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를 보려고 2012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각종 영화제들의 화제작들과 미개봉 작품들을 상영해주는데,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영화 자체나 영화관 시설들을 떠나서 관객분들 매너가 참 좋았어요. 여태까지 영화보면서 크레딧 끝날 때까지 좌석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남아주신건 처음 봤습니다. 정말 영화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는 느낌을 마구 받았습니다. 

여기서 상영하는 작품 대다수가 상업성과는 좀 거리가 멀어보이는 영화들. 개봉되더라도 소수관에서 교차상영당하다가 일주일만에 극장에서 내릴법한 영화들입니다.. 그러니, 혹시 상영작들 중에 관심갖고 계신 작품이 있으시다면 서두르시길. 개봉자체도 불투명하고 개봉하더라도 어차피 발품팔아야 겨우 볼 수 있을듯한데 차라리 이런 페스티벌로 미리 보는게 낫다는게 제 결론. 제가 오늘 보고온 더 헌트만해도 몇달전부터 개봉이 12월로 예정만 되있었지, 아직까지 정확한 개봉일을 잡지 못했습니다. 개봉하긴 하려는건지..

더 헌트, 영화는 시놉시스 대충보고 매즈 미켈슨때문에 보러간건데, 시간 아깝지 않았습니다. 의도치않게 누명을 쓰고 집단 히스테리에 당하는 한 교사의 이야기입니다. 
매즈 미켈슨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죠. 우직하게 참고 견디는 성격의 캐릭터를 참 잘 소화해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하는 주인공을 보다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하고... 이런 류의 영화는 관객들은 진실을 아니까 더욱 속이 터지죠. 하지만, 먹먹한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이끈다고해서 영화가 지루한 것은 아닙니다. 결말까지 그런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하는 맛이 있달까요. 관계란 것이 한번 깨지면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 마치 깨진 거울을 테이프로 붙여도 금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똑같죠.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주인공, 루카스가 정말 잘못해서 그렇게된건 아닐지라도, 한번 금이 간 관계를 예전처럼 돌리는 건 쉽지 않은 겁니다.


보고나서 연상됐던 영화는 조 라이트 감독의 어톤먼트.주제는 다르지만, 아무튼 둘 다 보시면 이해가 될겁니다... 한명의 캐릭터가 관객들을 빡치게하는 게.. 조 라이트 감독의 신작, 안나 카레리나도 이 페스티벌에서 프리미어되던데, 벌써 매진됐더라구요.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듯. 정식개봉은 내년에 된다고합니다.

더 헌트뿐만아니라, 매즈 미켈슨이 주연한 영화가 이 페스티벌에서 한 편 더 공개됩니다. 로얄 어페어. 이미 해외에선 호평받았던 시대극입니다. 정식 개봉은 12월 말인데, 매즈 미켈슨의 또다른 연기변신이 기대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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