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영화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주의해주세요.

 블록버스터로써 나쁘진 않습니다. 다만 1편과 2편 성공의 일등공신인 제임스 카메론의 복귀[각주:1]로 시리즈 팬들의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은 것치곤 실망스러운 작품입니다. 1편과 2편의 호러/스릴러적 요소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스토리적으로는 2편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신선함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크 페이트의 가장 큰 패착은 애매한 세대교체에 있습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의 복귀는 다크 페이트에서 '득'이 아니라 '실'입니다. 원년 멤버들의 복귀가 화제성 측면에서 영화의 홍보나 초반 흥행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스토리상 사라 코너와 T-800의 이야기와 신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엮는 과정에서 신 캐릭터들이 피 봤습니다. 특히 새로운 사라 코너+존 코너 역할을 맡은 대니 라모스일 경우 부득이하게 사라 코너와 캐릭터가 겹치면서 도무지 활약할 구석이 하나도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대니역할 배우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한 게 뭐냐 식으로 비판하는데 대니가 아무것도 안 한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대니가 할 일을 사라가 대신해주는 부분도 너무 많습니다. 미래의 저항군 리더로서 리더십을 보여줘야할 인물은 대니인데 영화 속에서 정작 주인공 일행을 이끄는건 사라 코너가 다 하기 때문이죠. 대니 캐릭터가 2편의 사라 코너가 아닌 1편의 사라 코너라 봐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입니다. 대니가 1편의 일반인 사라 코너 포지션이었다면 Rev-9에게 쫓기는 과정에서 대니에게 동기를 부여했어야 하는데 다크 페이트는 이 과정에 사라 코너와 T-800의 이야기를 우겨넣다 보니 대니의 여정,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지 못합니다. 결국 영화를 보고나면 이게 대니의 이야기인지 돌아온 사라 코너의 이야기인지 애매해지는거죠.

 대니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신 캐릭터, 그레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레이스가 전면에 나서서 Rev-9와 맞붙어야 관객들이 이 캐릭터에 더 몰입할 수 있을텐데 그레이스가 조금이라도 활약하겠다 싶으면 어김없이 사라 코너가 끼어들고, T-800이 끼어듭니다. 그레이스는 대니에 비하면 액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좀 더 존재감은 있었으나 역시나 비중문제에선 구 캐릭터들로 인해 피해를 많이 봤습니다. 신 캐릭터들 중 가장 호감이었는데다 캐릭터 자신만의 개성도 뚜렷하고, 대니보다 나은 자신만의 스토리까지 갖추고 있었음에도 결국 엔딩에 가선 죽어버리는게 무척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캐릭터가 가진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것도 억울한데 후속편에 출연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없애버리다니, 이건 분명한 실책입니다.

 차라리 후반부에 사라 코너와 T-800이 협공해서 Rev-9을 막고, 대니와 그레이스를 살려야 했습니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생존자는 사라 코너와 대니 라모스인데 이건 뭐 세대교체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것도 아니고 애매한 맛만 남겨버렸습니다. 호쾌한 액션을 위해서라도 그레이스와 대니 콤비가 남는게 더 나았을텐데 대체 무엇 때문에 할머니가 다 되가는 사라 코너와 대니를 붙여둔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 시작부터 존 코너를 죽일 패기는 있었으면서 왜 끝까지 사라 코너는 놔주지 못한건지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사라 코너와 T-800, 노장들의 희생으로 새로운 세대가 살아남고 어두운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이런 결말이 훨씬 깔끔했을텐데 말이죠.

 새로운 캐릭터들로 확실하게 세대교체를 이루고, 프랜차이즈를 확장하고 싶었다면 신 캐릭터들에게 스토리의 초점을 맞추고, 적절한 러닝타임을 할애했어야 합니다. 다크 페이트는 올드팬과 새로운 관객을 모두 잡으려고 욕심만 부리다가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버린거 같아 무척 아쉬웠습니다.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1, 2편의 주제적 측면을 계승하는 것이지, T-800과 사라 코너가 아닙니다. T-800과 사라 코너만으로 시리즈를 계속 하기엔 세월이 너무나 흘러버렸고 두 배우의 체력적 한계도 너무 명확합니다. 특히, 시리즈의 간판이라 볼 수 있는 T-800 역시 앞서 만들어진 속편들에서 이미지 소비가 너무 많았습니다. 다크 페이트는 새로운 피 수혈을 통한 세대 교체의 기회를 추억팔이에 놓쳐버렸고, 시리즈의 미래는 어느때보다 암담합니다. 어쩌면 시리즈의 운명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또다시 안전함을 추구하다 놓친 격입니다. 영화의 부제와 마찬가지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미래에도 '어두운 운명(Dark Fate)'의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1. 물론 스토리와 각본 한정이지만, 그가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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