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맹크(Mank, 2020)

movies 2020. 11. 30. 23:05 |

국내개봉 후 먼저 본 일반관객들의 지루하다는 평들이 좀 보이길래 넷플릭스에 뜰 때까지 기다릴까 고민도 많이 했네요, 실화 소재라는 점에서 '조디악'처럼 덤덤하게 일대기를 보여주는 형식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핀처 영화 중 유일하게 재미없게 본 영화였습니다...) 그래도 핀처의 신작인데 이왕이면 극장에서 보자란 생각으로 내리기전에 얼른 보고 왔습니다.

 하지만 보고난 영화는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핀처 커리어에서 톱3에 꼽아도 아깝지 않은 영화예요. 일단 맹크라는 주인공 자체가 괴짜 달변가라 지켜보기 참 재밌는 인물이예요. 여기에 주변의 마리온 데이비스,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루이스 B. 메이어, 오슨 웰스까지 개성 넘치는 주변인물들도 더해지면서 서로간에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개인적으로 취향저격이었습니다. 장르팬으로서 고전 스크루볼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화면이나 사운드, 편집 등이 고전영화(그 중에서도 '시민 케인')의 형식만 따랐을 뿐 핀처의 전작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빠른 페이스로 진행되는 점도 좋았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나 '나를 찾아줘' 등과 마찬가지로 핀처 영화 특유의 '리듬'도 살아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의 사전지식을 전제로 깐 감상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전 이런 류의 영화를 선호하진 않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전지식의 유무와 무관하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더 좋은 영화라 생각합니다.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했어도 배경지식과 무관하게 재밌게 만든 영화가 많기도 하구요. 각설하고 '맹크'로 돌아가자면, '맹크'는 오슨 웰스 감독의 '시민 케인'을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100% 즐길 수 없는 영화입니다. '시민 케인'의 내용이 영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건 아니지만, 영화의 굵직굵직한 사건 하나하나가 주인공 맹크의 '시민 케인' 각본 집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재미 자체가 이 사건이 '시민 케인'의 이 내용에 영감을 주었구나식으로 연결짓는데서 비롯되는 점도 있구요. 두 영화를 오가며 마지막 완성된 퍼즐을 보고 감탄할 수 있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영화기도 합니다. 감독 본인도 그걸 의도한 것 같구요. 주인공이 겪는 창작적 사투의 결과물로서 '시민 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알고 보느냐 모르고 보느냐는 천지차이입니다.

 문제는 '시민 케인'이 고전영화의 걸작으로 칭송받긴하나 현시점에서 볼 때는 큰 재미를 주는 작품은 아니란 점입니다. 저도 '맹크' 보기전에 억지로 꾸역꾸역 감상했는데 두 번이나 조는 바람에 무려 세 번째 도전에서야 겨우 다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봐도 세련된 테크닉을 구사하는 영화지만, 재미면에선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에 진입장벽이 꽤 높다고 생각됩니다. '시민 케인'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말은 고로 '맹크'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말이나 다름 없기에, '맹크'는 이전 핀처영화들과 달리 상당히 어려운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장벽만 뛰어넘는다면 '맹크'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전 핀처 영화들을 채웠던 차갑고 냉소적인 감성에서 벗어나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바라본다는 점도 신선합니다. 전작들에서 인물들이 핀처 특유의 완벽주의 무대 위에서 장기말처럼 움직였던 것과 달리 '맹크'에서 헐리웃 영화 산업의 무심한 일원이었던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성장하는 서사는 분명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후로 가장 인간미 넘치는 핀처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누구에게나 추천하긴 힘든 영화지만, 고전영화팬들이라면 필히 관람해야만 하는 영화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영화에 대한 사랑이 충만하신 분들껜 '시민 케인'과 함께 한 번쯤 (세트로) 도전해볼만한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구요.



P. S.: '시민 케인' 외에도 찰스 댄스가 연기하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란 인물에 대해 알고가는 것도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 그가 개입했던 프랭크 메리엄과 업튼 싱클레어의 주지사 선거에 관한 내용도 함께 알고 있으면 더욱 좋구요. 관람전에 간단히 검색해보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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