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심한 의처증을 보이는 남편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세실리아의 자취를 따라갑니다. 언니의 도움으로 세실리아는 가까스로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는데 성공하고, 얼마되지 않아 남편의 부고를 전해 듣게 됩니다. 부고를 접한 세실리아를 이내 덮치는 것은 안도 대신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다는 불안감입니다. 그리고, 세실리아의 예상은 적중합니다.

 '인비저블 맨'은 보이지 않는다는 투명인간의 특징을 영화 내외적으로 영리하게 활용합니다. 소재 자체가 그저 빈화면을 잠시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공포영화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효율적인 장치입니다. 언제 어디서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관객들을 주인공과 함께 항상 주위를 경계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서서히 고립되어가는 주인공의 처지와 겹치게되면 그 효과는 배가되구요.

 투명인간의 특징이 주제면에서 기여하는 부분도 무척 큽니다. 공포영화는 단순한 장르영화로 치부되기 십상인데 투명인간이란 소재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소재이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해석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정폭력에 대한 은유입니다. 투명인간의 보이지 않는 특징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지만 누구도 쉽게 볼 수 없고, 보여주기도 힘든 가정폭력의 특징과 일맥상통합니다. 사라진 남편으로부터 문자 그대로 쫓기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가해자가 있든 없든 그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찾아볼 수 있죠. 

 가해자 남편의 스토커적인 면모는 감시사회, 관음증에 대한 혐오를 연상하기도 합니다. CC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이 필수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은 단순히 남여관계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공포심을 자극합니다.

 최근 헐리웃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에 편승한 얕은 접근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될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신다면 생각이 달라질거라 확신합니다. 이 영화는 관객을 교화하려 들거나 무거운 주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소모하지도 않습니다. 가정폭력이란 결코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지만 이를 다루는 영화의 태도는 결코 가볍지 않죠. 그런 태도가 이 영화에 무게감을 부여하지만, 한편으론 여기서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영화 러닝타임 내내 약자입장인 주인공에게 폭력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보니 관객들이 불편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인 주인공이 속수무책으로 주구장창 당하고만 있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관객입장에선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즐겨도 되는건가?'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영화 속 공포나 긴장감의 조성이 관객들이 오락영화에서 기대하는 유희 목적의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보니 오히려 보고나면 기분나쁜 불편한 영화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거죠. 물론 영화의 구조 자체는 기존 헐리웃 공포영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습니다. 예상하듯 결국 주인공은 승리하고,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니까요.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인 톤 덕분인지 폭력이 끝났을 뿐 누구도 승리하진 못했다는 인상이 더 강합니다.

 결론적으로 '인비저블 맨'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기존 투명인간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성공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던 만큼이나 누구에게 선뜻 추천하긴 힘든 영화기도 하며 개인적으로는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는 불편한 명작입니다. 장르팬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봐도 좋을 법한 영화지만, 아니라면 개인의 선택에 맡기고 싶습니다. 가정폭력 가해자들에게 교화용으로 강제관람하게 만든다면 효과적인 처벌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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