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엠파이어지와의 인터뷰에서 마블영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자 영화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었습니다. 당시 그의 발언을 옮겨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저도 노력은 했어요." 마블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그건 시네마가 아닙니다.(But that’s not cinema.)"


 "솔직히 마블영화들은 배우들이 그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지만, 테마파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마블영화들은 인간의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시네마는 아니예요."

 위 인터뷰 이후 BFI 런던 영화제에서 가졌던 영화, '아이리쉬맨' 기자회견에서도 위 발언에 대한 추가질문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영화관은 테마파크가 되버렸습니다. 그것도 괜찮고 좋은 것이긴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런 테마파크에 점령당해선 안돼요." 

 "그런 종류의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에겐 괜찮고 좋은 일이죠.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기 때문에 저도 그들이 하는 일은 존경합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할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딱봐도 아니예요. 마블영화는 그걸 시네마라 생각하는 또 다른 종류의 관객을 만들어냈습니다."

 위 발언이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마블팬들과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시대를 못따라가느니 꼰대니 식의 온갖 종류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막무가내로 그를 욕하는 사람들이 그의 발언취지를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위 인터뷰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틴 스콜세지는 "마블영화는 영화가 아니다"가 아니라 "마블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콜세지 감독은 매체로서의 영화인 필름(Film)과 내러티브가 있고, 인간의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작품으로서의 영화인 시네마(Cinema)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을 이해하고 나면 스콜세지 감독의 발언이 마블영화는 영화축에도 못 낀다는 '비하'가 아니라, 그가 주로 만드는 시네마와 다른 종류의 영화임을 지칭한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업계에서도 저러한 용어적 구분이 통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들으면 오해를 살 수밖에 없는 발언임은 틀림없습니다. 당장 미국에서도 영화를 지칭하는 단어로 필름과 시네마가 혼용돼서 쓰이고 있고, 이러한 단어들은 한글로 번역하게 되면 필름이나 시네마나 둘다 '영화'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오해하기 쉽습니다.

 용어적 해석에 있어 그의 발언은 논쟁적 여지가 있고 분명 쎈 발언이지만, 저는 그의 발언이 틀린 말이라곤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의 발언 취지는 마블영화를 까내리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인간의 감정적, 심리적 경험을 전달하는' 시네마로서의 영화의 존립위기를 경고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틴 스콜세지가 왜 좀 쎄다 싶은 발언을 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만 해도 헐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은 블록버스터 영화로 돈을 벌면 마틴 스콜세지같은 감독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소규모 영화에도 투자를 많이 해줬습니다. 소수의 블록버스터로 안전하게 돈을 모은뒤 어느정도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있는 영화들에 투자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해왔던거죠. 당장 최근만해도 양극화는 심해졌을지언정 이런 식의 선순환은 아직도 적잖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마블이 속한) 디즈니는 애초부터 그런 식의 투자를 하는 스튜디오가 아니었습니다.[각주:1] 하지만, 그런 디즈니가 마블 스튜디오를 필두로 성공적인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해서 돈 넣고 돈 먹는 구조로 영화계를 재편시키자 말이 달라졌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면서 중소규모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극장이 블록버스터 보러가는 곳으로 전락해버리니 마틴 스콜세지같은 감독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헐리우드는 이제 마틴 스콜세지는 고사하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투자받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어요.

 다만 스콜세지 감독도 간과한 점은 있습니다. 그의 주 활동지인 미국일 경우 관객들에게 극장가는 일이 그의 전성기때 만큼 저렴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미국에서도 표값이 저렴했기 때문에 영화보러가는 일이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물가상승과 함께 표값이 크게 뛰어버렸고, 미국이면 당장 아이라도 있는 집인 경우 베이비시터 구해야지, 시내까지 가려면 차까지 몰고가야 합니다. 결국 올라버린 표값이나 베이비시터, 기름, 팝콘 등 이런저런 돈 드는걸 고려하면 현재 미국에선 영화관 가는 일 자체가 큰 맘 먹어야할 수 있는 일이 되버린 겁니다. 그만큼 극장가는데 투자하는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관객들은 표값은 하는 영화만 보고싶을테고, 여기서 토마토지수나 평론가들 평에 의존한 취사선택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로 뛰어나진 않더라도 일정수준의 재미는 보장하는 마블영화가 더 흥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미국에서 스콜세지 감독이 만드는 작품성있는 영화들, 소위 시네마들은 오스카 버프 없이는 흥행은 커녕 손익분기점도 넘기 힘들어졌습니다.[각주:2] 게다가 영화가 조금만 호불호가 갈리거나 논란이라도 있어봐요, 토마토지수, 메타지수가 50까지 폭락하고 관객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입니다. 실험적인 영화들도 갈 곳을 잃은지 오래입니다. 극장개봉을 그렇게 고집하던 스콜세지같은 명장도 '아이리쉬맨' 만들려고 넷플릭스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겁니다.

 스콜세지 감독의 마블 비판에 공감하지만, 그 발언이 너무 쎄서 대중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점은 백 번 인정합니다. 좀 더 신중한 워딩이었다면 훨씬 좋았겠죠. 하지만, 마블영화들의 점령으로 인한 미국 영화계의 다양성 실종과 양극화 심화를 보고있노라면 스콜세지가 할 말은 했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다행히도 중소규모 영화들이 스트리밍으로 옮겨가면서 완전히 설 자리를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극장=블록버스터 보러 가는 곳'이 되어버리는 건 영화팬으로서 좀 슬픕니다. (제작규모면에서 차이가 나는 국내영화계는 또 다른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계도 마블의 영향에선 결코 자유롭지 않고, 국내영화들도 대형 제작사들의 입맛에 맞는 오락영화만 즐비하고 있기 때문에 먼나라 일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아무리 넷플릭스로 집에서 영화 보는게 편할지언정 극장의 대화면, 고음질 스피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경험 자체는 절대 대체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말처럼 극장이 테마파크화 되어버렸다? 잘못된건 전혀 아닙니다. 어차피 영화산업도 돈벌려고 하는 일이고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만 만드는 것 또한 자본주의 논리로 치면 당연한 이치죠. 다만 누구든 똑같은 음식만 맨날 먹으면 질리지 않습니까? 매일 짜장면 먹다가도 가끔은 김밥도 먹고싶고, 어쩌다 한 번은 스테이크도 썰어보고 싶은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근데 막상 다른거 먹고싶은 날에도 메뉴에 짜장면밖에 없다면 그건 슬픈거죠. 모든 영화가 테마파크식 재미만 추구해선 안된다는 스콜세지 감독의 발언에도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희망이 사라진건 아닙니다. 최근 흥행하고 있는 '조커'같은 케이스도 있으니까요. 어두운 주제, R등급 진입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조커'에 호응해준 걸 보면 슈퍼히어로 붐은 당분간 계속될지 몰라도 좀 더 그 장르내에서 다양한 시도를 볼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조커'를 통해 관객들은 단순히 테마파크식 재미만 추구하지 않는다는걸 보여주었고, 디즈니(마블)도 이 영화의 흥행에 뭔가 느끼는게 있을것입니다. 슈퍼히어로 장르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영화계를 이끄는 주류가 된 현시점에서 '조커'같은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가 많아져서 작가주의 감독들이 설 자리도 만들어주고, 사라진 다양성도 좀 회복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 디즈니는 예전부터 애니든 실사든 돈 많이 들인 소수의 대작만 선보임으로써 운영해가던 스튜디오였어요. [본문으로]
  2. 네임드 감독들의 영화들이 죄다 10월부터 연말에 개봉이 몰려있는 것도 다 오스카 시즌을 노리기 위해서 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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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란티노 영화팬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저의 기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높았습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 일까요? 영화를 보고난 뒤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입니다. 사전지식이 충분하다면 이 영화의 여러가지 레퍼런스들을 즐기며 감탄을 연발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은 영화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전 타란티노 영화들이 오마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긴 했지만, 오마쥬는 보너스 개념이었지 영화 자체를 즐기는데 관여하진 않았습니다. 반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관객들이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에 대한 사전지식을 구비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주제를 정하고, 내용을 전개해나갑니다. '폴란스키가 살인사건'만 해도 관객의 부담이 상당한데 여기에 '60년대 할리우드'라는 배경이 갖는 중요성마저 상당히 큽니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두고 타란티노가 60년대 할리우드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을 살아가는 관객들 중 이 테마에 공감할 수 있는 관객들이 몇이나 될까요? 영화내에는 60년대 영화와 TV쇼에 대한 레퍼런스가 넘쳐납니다. 이러한 레퍼런스들은 영화학도나 평론가가 아닌 이상 100% 이해가 힘듭니다. 60년대 헐리우드 영화나 TV쇼가 현재만큼 전세계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상황을 감안하면 60년대를 보낸 한국노인들도 이 영화에 공감하긴 힘들거예요. 영화내에서 당시 시대상이나 무비 메이킹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긴 하지만 관객들이 바란것은 '타란티노 영화'이지 '타란티노의 영화사 해설'이 아닙니다. 결국 영화는 초반부부터 지루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메인 이벤트인 찰스 맨슨의 스토리라인은 사전지식 문제와 별개로 메인 스토리라인을 계속 겉돌기 때문에 재미가 떨어집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초중반 찰스 맨슨 패밀리가 찔끔찔끔 등장하며 떡밥을 뿌려대다가 후반부 주인공 일당과 엮이면서 3막을 장식하는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초중반에 이 두 스토리라인이 너무 따로 놀다보니 3막에서 메인 스토리라인과 합쳐지는 과정도 이전 타란티노 영화들처럼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시원함이 부족합니다.[각주:1] 영화적 구성에서 영리함과 재치를 잃어버리니 타란티노만의 개성도 죽고, 퇴보한 느낌마저 듭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에서 찰스 맨슨 사건을 끌어온 이유가 찰스맨슨 사건을 통해 60년대 미국의 이상주의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 사건이 미국 사회문화 전반에 끼친 충격여파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해석입니다. 그런 주제의식 측면에서 60년대 할리우드란 배경과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은 훌륭한 조합이라 생각하지만, 주제의식을 구현하는 영화 속 실행과정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지루한 초중반을 견딘 관객들한테 후반부가 팡 터져줘서 카타르시스라도 느끼게 해줬어야했는데 이번 영화는 그마저도 신통치가 않습니다. 후반부가 그나마 우리가 익히 알고있던 타란티노 영화의 진수에 가장 가깝긴 하지만, 타란티노의 장기인 인물들의 맛깔스런 대화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서스펜스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은 드물게 아는 자와 모르는 자를 모두 만족시켰던 감독입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처음으로 그는 그 균형을 깨뜨리고 좀 더 편향적인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어차피 영화란 주관적인 매체이니 그의 선택을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할 겁니다. 하지만, 대중의 입장에서 섭섭함을 숨기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1. 3막에서 시전되는 '비틀기'는 철저히 관객들의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에 대한 사전지식에 의존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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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영화와 소설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주의해주세요.

 2년전 영화판 1편을 정말 재밌게봐서 원작소설을 살까말까 고민했었는데 영화와 원작이 판이하게 다르단 말도 있고, 소설의 결말을 알게되면 속편보는 재미가 떨어질까봐 지난주에 2부를 보고나서야 원작소설 세트를 구입했습니다. 원래 책 읽는걸 그렇게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고, 원작 소설이 3권(국내판 기준 1,852쪽)이나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터라 배송을 받고 나서야 그 분량에 압도 당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니 뭔가 달랐습니다. 술술 잘 읽힌다는 말이 뭔지 이해가 되더라구요. 그렇게 원작소설을 5일만에 독파하고 나니 스티븐 킹이 왜 인기작가인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원작소설은 영화와 다르게 시간적 배경과 서술시점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루저클럽 일원 7명 뿐만 아니라 조연들 시점도 소개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읽다보면 자연스레 적응도 되고, 각 시점이 바뀌는 장면 전환도 기막힌 지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서에 상당한 감칠맛을 더해줍니다.

 원작소설 역시 성인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폭력, 성 묘사가 엄청 과감한 편입니다. 하지만, 영화와 마찬가지로 루저클럽의 '우정'에 좀 더 방점이 찍혀있다보니 '공포'가 중심이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영화나 소설이나 페니와이즈가 선사하는 공포보다는 루저클럽 일원들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힘을 모아서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이 더 흥미롭고 그려지기 때문에 본질적인 측면에선 영화판도 원작의 정신을 잘 이어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호러적인 요소들을 고려할 때 소설의 과거시점은 50년대 말인터라 그 당시 아이들이 무서워하던 것들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현시점에서는 별로 유효하지 못하다는 게 흠입니다. 체감도 힘들 뿐더러 무섭지도 않죠. 장르적인 관점에서는 그러한 소재들을 현대적으로 업데이트한 영화판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영화판 2편이 개봉하고 난 뒤 후반부 그것과 최후의 결전이 많이 비판받고 있는데, 저 역시도 이 부분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원작소설을 읽고나서 돌이켜보니 영화를 저 정도로 각색한 것도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소설에선 '쿠드 의식'이 우주차원에서 펼쳐지는 정신대결로 그려지는데 이는 시각화하기도 까다로울 뿐더러 그대로 옮겼다간 정말 뜬금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내용이 안드로메다로 갈 수 있는거죠. 영화판에서 최후의 결전부분은 주인공들이 페니와이즈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페니와이즈를 다굴(...)하기 시작하면서 상대방의 공포를 먹고사는 페니와이즈가 무너지는걸로 그려집니다. 2편에서도 쿠드 의식에 실패한 루저클럽이 결국 이 방법으로 돌아가죠. 솔직히 1편 때 내용을 그대로 복붙한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좋게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내용의 반복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에선 어린 시절의 루저클럽 역시 쿠드의식을 통해 페니와이즈를 무너뜨리고, 성인 시점에서도 이를 반복할 뿐입니다. 영화와 다르게 원작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와 현재 시점이 교차되고, 성인이 된 루저클럽이 어린시절 페니와이즈를 물리친 방법을 최후의 결전에 이를 때까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린시절 페니와이즈를 쿠드의식으로 물리쳤다는 기억은 성인시점에서 최후의 결전 직전에서야 드러나기 때문에 반복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영화판 2편에서 성인이 된 빌 덴브로가 결말을 개떡처럼 쓰는 소설작가로 끊임없이 욕먹는데 이는 분명 셀프 디스입니다. (스티븐 킹마저 영화에서 카메오로 출연해서 빌을 디스하는거 보면 작가 본인도 인지하고 있는 비판인걸 알 수 있습니다.) 영화판 1편이 이미 일부 내용에서 새로운 전개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2편 후반부에서 갈등해결방식을 아예 새로운 전개로 밀고 나갈 수 도 있었을텐데 굳이 1편의 재탕을 선택한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럴거면 같은 방식이라도 제대로 업데이트를 했어야죠. 영상화는 어차피 2차 창작이고, 주제의식면에선 1편부터 이미 원작을 충분히 존중했기 때문에 조금 더 머릴 굴려서 더 과감하고 새로운 엔딩을 보여줘도 관객들이나 원작팬들이나 큰 거부감은 없었을 겁니다.

 소설은 방대한 배경 및 심리 묘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디테일면에서 영화보다 훨씬 뛰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시간적인 한계와 시각적 묘사에 의존해야하는 표현적인 한계가 분명합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보다 원작소설을 미리 접하는 경우 실망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그것일 경우, 영상화를 거치면서 원작소설과 다른 시간적 배경과 전개방식을 취했고, (방대한 분량을 모두 그릴 수 없으니 여건상[각주:1]) 원작의 내용을 상당부분 오리지널로 각색해서 원작소설과는 차별화 된 지점이 꽤 많습니다. 원작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내가 본 영화가 맞나 싶은적이 많았지만 부정적 의미에서 든 의문은 아니었어요.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동시에 흐지부지한 결말은 공유하고 있지만...) 

 원작이 가진 명성과 팬들의 기대를 고려할 때 두 편의 영화판 모두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1편은 2편이 없다치고 독립적인 영화로 봐도 충분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지닌 '성장드라마'였고, 2편은 1편의 다운그레이드판이지만 1편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그 다운그레이드판 또한 수용가능한 품질의 작품이란거죠. 1편의 성공에 기대긴 했어도 헐리웃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코스믹 호러 어드벤처'물에 도전한 점은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1. 원작에 대한 충실함을 따지자면 원작소설은 2편의 영화로는 어림도 없는 분량입니다. 정말 원작에 충실하고 싶다면 미니 시리즈 드라마의 포맷이 가장 적절해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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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맨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스토리 중 하나인 '엑스맨: 다크 피닉스 사가'는 20세기 폭스사에 의해 두 번이나 영상화되었습니다. 다크 피닉스 사가를 처음으로 영상화했던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명성에 먹칠을 했던 졸작이었고, 두 번째 영상화 작품인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시리즈 역사상 최악의 흥행을 기록하며 폭스의 엑스맨 유니버스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소수의견이겠지만 전 다크 피닉스를 무척 재밌게 봤습니다. 영화에 대한 리뷰도 언젠가 써보고 싶어요.)

 첫 번째 영화야 처음이니까 변명이라도 가능하지, 두 번째 영화가 실패하면 첫 번째 실패에서 배운게 전혀 없다는 걸 증명하는 꼴밖에 안됩니다. 헐리웃이 자신의 창작물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말아먹는 꼴을 보고있자니 원작자들의 가슴은 더 심하게 무너졌을겁니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디지털 다운로드와 블루레이 출시를 앞두고, 원작자[각주:1] 중 한 명인 크리스 클레어몬트가 인사이더(클릭)와 다크 피닉스 사가의 영상화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인터뷰를 찬찬히 읽어보니 '엑스맨: 다크 피닉스' 역시 '엑스맨: 최후의 전쟁' 못지 않게 제작 당시 잡음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원작자의 안타까움이 절절히 느껴지는 흥미로운 기사이니 엑스맨 팬분들이라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래 번역은 어느정도 의역이 있음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다크 피닉스 사가'의 작가, 헐리웃의 두 번의 영상화 시도에 대해 입을 열다

트래비스 클라크, 8. 20. 2019

 

 "엑스맨: 다크 피닉스 사가"는 사랑받는 클래식 엑스맨 코믹북 스토리라인들 중 하나지만, 영화판에서는 순탄치 못한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다크 피닉스 사가는 2006년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서 처음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진 그레이(팜케 얀센)는 자신의 돌연변이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악한 매그니토 무리에 합류해 돌연변이 치료제인 '큐어'를 상대로 전쟁을 벌입니다. 올해 개봉한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새로운 배우-소피 터너-와 감독이 우주적 존재인 "피닉스 포스"에 더 집중하며 전작과는 다른 시도를 선보였습니다.


 두 번의 시도 모두 도전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이 유명한 원작 만화를 아티스트, 존 번과 함께 창작한 코믹북 작가, 크리스 클레어몬트는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디지털 다운로드 개시(9월 3일)와 블루레이 발매(9월 17일)를 앞두고 가진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두 번의 영상화에서 가장 큰 도전은 영화와 달리 코믹스가 계속 이어지는 매체라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엑스맨 오리지널 트릴로즈 삼부작 중 최종장인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박스 오피스에서는 흥했지만, 비평적으로는 실패작이었습니다. 6월에 개봉했던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비평과 흥행 모든 면에서 폭망이었습니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마케팅 비용을 제외하고) 2억 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어져 전세계적으로 2억 5,200만 달러 수익을 거두는데 그쳤습니다.


 다크 피닉스 사가는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언캐니 엑스맨" 시리즈에서 열 두 편이 넘는 분량에 걸쳐 그려졌고, 이 장대한 이야기를 2시간 짜리의 한 편 영화에 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데드라인의 기사에 따르면 6월 개봉했던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원래 두 편의 영화로 기획되었지만, 20세기 폭스사가 이러한 계획을 취소시키면서 -오랫동안 폭스의 엑스맨 프랜차이즈에서 제작자이자 각본가로서 활동한-각본가이자 감독이었던 사이몬 킨버그는 수정된 기획에 맞춰 각본을 재집필해야 했습니다.


 "사이몬은 다크 피닉스 사가를 두 편의 영화로 만들고 싶어했어요. 첫 편에서 관객들이 진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 다음, 두 번째 영화에선 가슴아픈 이별을 다룰 예정이었습니다. 갑자기 그걸 1시간 50분짜리 한 편에 다 담으려니 어려울 수 밖에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들[각주:2]의 외부적인 개입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이몬은 꽤 잘 해냈습니다." 


 현 시점에서 20세기 폭스사를 소유한 디즈니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된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코멘트 요청에 불응했습니다.


 제작과 관련해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 것과 별개로 클레어몬트는 "엑스맨: 다크 피닉스"에 대해 여전히 호감을 갖고있었습니다.


 "원작의 공동창작자로서, 또 동료직원으로서 저는 사이몬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가능한 최고의 작업물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좋은 영화였어요. '엑스맨: 최후의 전쟁'보단 훨씬 나은 작품이죠."


 "엑스맨 2"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크 피닉스 스토리라인에 대한 암시를 남기며 끝났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뒤 클레어몬트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에게 다크 피닉스 사가를 어떻게 두 편 내에 담을 것인지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2000년에 개봉했던 "엑스맨"에 이어 "엑스맨 2"까지 연출을 맡았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다크 피닉스 사가를 결국 다루지 못한채 2006년 워너 브라더스사로부터 "슈퍼맨 리턴즈"의 감독직을 제안받고 엑스맨 프랜차이즈를 떠나게 됩니다.


 클레어몬트는 싱어의 프로젝트 하차에 대해 브라이언 싱어와 20세기 폭스사 사이의 기나긴 협상에 원인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두 당사자 모두 협상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고 합니다.


 "싱어 감독은 워너 브라더스로부터 -20세기 폭스사보다-더 좋은 제안을 받았어요. 슈퍼맨은 싱어 감독이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프로젝트기도 했구요. 둘 사이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두 명의 감독을 갈아치운 다음에야-브라이언 싱어와 매튜 본[각주:3]- 비로소 감독-브랫 레트너-을 찾을 수 있었죠. 브랫 레트너 감독은 그 영화를 성급하게 찍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사이몬[각주:4]과 다른 작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브라이언 싱어, 20세기 폭스/디즈니사 누구도 코멘트 요청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클레어몬트가 자기 나름대로 후회하는 일도 있습니다. 클레어몬트에 따르면 팜케 얀센이 그에게 다크 피닉스 영화의 각본을 써달라고 요청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그 기회를 놓쳤죠. 제가 마블에서 간부로 재직하던 당시에 얀센씨가 제게 그런 요청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얼마지나지 않아 저는 그 직위에서 내려왔고, 모든 상황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헐리웃에선 자주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이 이미 두번이나 영상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레어몬트는 여전히 또다른 영상화를 기대하고 있다. - 이왕이면 다른 포맷을 통해서 말이다.


 "저는 다크 피닉스 사가가 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TV도 영화와 동등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미니시리즈는 관객들이 진 그레이란 캐릭터와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만든다면 관객들의 손에서 땀을 쥐게하는 서스펜스도 구현할 수 있을거구요. 작가입장에서 저는 다크 피닉스 사가를 제대로 구현할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긴 하지만, 제가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니 어쩔 수 있나요."


  1. 크리스 클레어몬트와 존 번. 존 번은 스토리 뿐만 아니라 작화까지 담당했습니다. [본문으로]
  2. 정황상 20세기 폭스사와 디즈니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3. 브라이언 싱어의 하차 이후 매튜 본이 싱어의 후임으로 들어오지만, 폭스사와의 갈등으로 프로젝트에서 하차합니다. 매튜 본 감독은 2011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로 다시 엑스맨 프랜차이즈에 돌아오게 됩니다. [본문으로]
  4. 사이몬 킨버그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각본에도 참여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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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전 글래머 매거진에 게재된 배우, 주디 그리어(Judy Greer)의 오픈레터를 번역해보았습니다. 헐리웃의 성차별, 임금격차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글입니다. 미투 운동과 함께 헐리웃도 성평등 문제에 대해 신경쓰고 있긴하지만, 4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건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글입니다. 오역, 의역이 있음을 염두에 두시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왜 남자들이 저보다 돈을 많이 받아야하죠?


 전 운좋은 여배우입니다.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13 Going on 30), 27번의 결혼 리허설(27 Dresses)부터 TV쇼, 메리드(Married)에 이르기까지 저는 주기적으로 일해왔습니다. 만족스러운 커리어를 쌓아올 수 있었기에 저는 행복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궁금합니다: 내가 남자인 평행세계에서 지금과 똑같이 일한다면 내가 좀 더 성공하진 않았을까? 좀 덜 치열하게 살아도 되지 않았을까? 탄수화물을 먹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네, 공상이 맞습니다.) 지난 몇달간 한 가지 확실해진 게 있습니다: 제가 만약 남자였다면 전 돈을 더 벌 수 있었을거예요. 영화와 TV에 나와서 돈 버는 여배우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거란 걸 압니다. 하지만, 이름과 직업을 떼놓고 보면 2015년 현재 헐리웃 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도 여전히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디 살고 무엇을 하던지간에 말입니다, 말도 안되는 일이예요.


 친구들과 나눈 대화에서 (네, 점잖은 가쉽이죠.) 저는 해가 갈 수록 제가 함께 일 하는 남자배우들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감독들과 일했고, 저와 비슷한 종류의 드라마들에 출연하며 일해온 남자 배우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더 높은 비중의 역할들을 따내고, 더 많은 돈을 받는걸 봐왔습니다. 전 언제나 제 커리어와 임금도 그들것처럼 성장하길 바래왔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는 대신 임금격차만 계속 커져갔습니다. 한가지 큰 이유는 여성으로서 제가 맡는 역할들은 보통 더 작고, 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점이란 것입니다. 이 문제는 업계 전반에 걸쳐있습니다.-샌 디에고 주립 대학의 TV, 영화 속 여성 연구 센터에 따르면 2014년 최고의 수익을 거둔 영화들 속 여성 역할들 중 고작 12%만 '주연'급으로 취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배우들에게 이렇게 선택권이 거의 없는 상황속에서 여성이 고임금을 위해 협상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제 매니저는 절망스럽게도 스튜디오가 언제나 -누군가를 대신해-일하고 싶어하는 다른 여배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소니 해킹 스캔들로 인해 드러난 임금관련 서류들은 여성 주연배우들-제니퍼 로렌스나 에이미 아담스같은 거물급 무비 스타들[각주:1]-조차 여전히 공동주연 남배우들보다 적은 개런티를 받고 있음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여자배우들이 동등한 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이 오스카 후보에 오르고, 10억 달러 수익의 프랜차이즈 영화들을 만들어야 하나요?


 한편, (샌 디에고 주립 대학의 TV, 영화 속 여성 연구 센터의) 동일 연구에 따르면 2014년 여배우들의 역할 중 58%는 아내나 어머니같은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남편이나 아버지 역할을 한건 31%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이런 역할들도 깊이 있는 역할이 될 수 있긴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을 뿐이죠. 대부분은 소리지르는 네 아이를 가진 바가지나 긁는 주부에다 하는 일이라곤 저녁을 만들거나 남편의 잃어버리는 세금 서류나 찾는 역할들이예요. 여자들이 그것보단 더 나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제가 정상이 아닌 걸까요? 최근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역할이지만 개런티를 크게 삭감받은 적이 있어요. 똑똑하면서 재밌는 캐릭터이고 하이힐도 신지 않죠. 매일 일하러 가서 남편 캐릭터에게 게으른 인간아, 네 망할 열쇠는 네가 직접 찾아라고 말하는건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올해 새 차를 사긴 글렀다는 겁니다.


 가끔 저는 더 원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제게 화가 납니다. 그런점에서 전 샤를리즈 테론이 존경스럽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테론은 헌츠맨 영화에 출연하며 공동주연하는 남배우[각주:2]보다 자신의 개런티가 적다는걸 알고선 천만 달러 개런티 인상 협상을 했다고 해요. 그게 여배우들-그리고 동등임금을 원하는 모든 여성들-이 해야할 일입니다. 나서지 않는다면 고용주들에게 OK하고 현상황을 유지할 뿐입니다. 지난 2월 소니픽쳐스의 CEO, 에이미 파스칼은 "사람들이 더 적은 돈을 받고도 일하길 원하기 때문에 더 적은 돈을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마운줄 모르는 여성들은... 떠나면 된다." 하지만 그건 제게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저는 연기자입니다. 저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여전히 기름이나 음식도 사고, 가끔씩 거창한 식사 한 기도 먹고 싶어요. 물론 제대로 돈을 안주는 일은 거절하고, 완벽한 프로젝트가 찾아오길 기다렸다가 그런 일을 잡은 다음 경제적으로 비평적으로 성공하길 바라고 기도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결국 더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제 통제 밖의 결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게 어떻게 선택이 될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저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자라면서 돈문제는 절대 논하지 말라고 배웠고, 살면서 한 번도 임금 인상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겨질까봐 무서웠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가진 여성이 저 혼자일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년 전 저는 운좋게 한 놀라운 아이-지금은 18살 숙녀가 되었어요-의 양어머니가 되었고, 저는 제 딸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제 딸이 무슨 직업을 갖든 저는 제 딸의 노력과 수고가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만큼 가치있다 여겨지길 바래요. 그래서 이제는 저도 동등임금에 대해 말할 때가 됐습니다. 저 혼자서 임금격차 문제를 단번에 고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제 딸의 시야를 넓혀줄 순 있겠죠. 제 딸에게 (임금문제에 관해) 협상하고, 질문도 던지고, 너 자신을 위해 나서라고 격려할 수 있고, 저 자신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상기시킬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할리웃에서 저는 여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더 많은 -고예산- 영화와 드라마들을 위해 싸워나갈 것입니다. 여성은 남성의 뽐내기용 장식물 이상의 존재입니다. 저희들처럼 여러 모습을 가졌지만 흠도 있는 존재이고, 엉덩이를 걷어차주는 멋진 존재죠.


 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존재기도 합니다.

  1. 아메리칸 허슬 당시 주연급이었던 에이미 아담스와 조연으로 나온 제니퍼 로렌스 각각 함께 출연한 크리스찬 베일, 브래들리 쿠퍼보다 훨씬 적은 개런티를 받았던 것이 소니 이메일 해킹으로 드러남. [본문으로]
  2. 크리스 햄스워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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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의 스타트를 끊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동시에 캐릭터도 구축해야 하고, 후속작에 대한 기대까지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죠. 많은 '1편'들이 지나치게 많은 역할로 인해 갈팡질팡하다가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 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알리타 역시 이러한 1편의 함정에선 자유롭지 않습니다. 2시간이란 러닝 타임동안 지나치게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전개는 급해지고, 설정구멍도 눈에 띄는 편입니다.

 빠른 전개로 인해 캐릭터들의 변화나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든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실사영화에서는 어느정도 여유를 두고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엔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전개가 너무 많아요. 카메론과 로드리게즈가 몇편의 시리즈를 구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편에선 조금 느긋하게 가야 했습니다. 

 영화는 원작의 1, 2권과 3권의 전반부만을 다룹니다.[각주:1] 플롯의 큰 두 줄기가 되는 이도 박사와 휴고의 이야기는 각각 한 편의 영화에 따로 담아도 될 정도 매력적입니다. 두 명 다 이중성을 지닌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라 주인공보다 흥미롭게 그려낼 수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데 영화는 이 둘을 100%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휴고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담당하면서 깊은 인상이라도 남겼지만, 이도 박사는 해설역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럴바에야 무게 중심을 휴고 이야기쪽에 두고 이도 박사 이야기는 더 과감하게 쳐냈어야 합니다. 두 이야기를 모두 다루고 싶었다면 러닝 타임을 적어도 10~20분 정도 늘려야 했구요.

 아쉬운 점이 많긴 해도 그동안 제작되었던 일본 만화 실사화 영화들과 비교하면 알리타: 배틀 엔젤은 현존하는 최상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이버펑크풍 디스토피아 배경이 근 20년간 수많은 SF영화들에서 자가복제 되면서 고유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점이 아쉬우나, 만화를 찢고 나온듯한 비쥬얼 자체가 주는 힘은 강력합니다. 예고편 공개 이후 여러모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알리타의 큰 눈은 막상 영화를 볼 때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으며, 비인간적인 비쥬얼이 사이보그와 인간 사이에서 펼쳐지는 알리타의 존재론적 갈등을 구현하는데 기여합니다. 오히려 실사배우의 얼굴과 CG몸체를 그대로 합성한 다른 사이보그들이 알리타보다 기괴한 느낌이 강한데, 모두 빌런들이기 때문에 이런 비호감적인 요소가 플러스가 된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액션 역시 만화를 보며 독자들이 상상했던 판타지를 그래도 옮기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원작팬이라면 결코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사이보그들의 초인간적인 신체적 스펙을 활용한 호쾌한 액션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상당한 수위의 폭력을 보여주는 원작 속 액션을 그대로 영상화하는 것이 가능할지 걱정스러웠는데 영화는 폭력의 대상이 인간이 아니란 점을 십분활용해서 12세 관람가(PG-13)의 한계를 시험합니다.[각주:2] 그런 점에서 팬들은 환호를 외치겠지만, 어린 관객들에겐 상당히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보호자의 유의가 필요합니다.

 리뷰 전반부에 걸쳐 내용전개나 캐릭터 구축에 있어 많이 지적하긴 했지만, 단점이 많을 지언정 기존 헐리웃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소재의 맛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특히 메인 플롯의 주축이 되는 알리타와 휴고의 로맨스는 뇌리에 박힐 정도로 굉장히 충격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깊이는 얕을 지언정 액션 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는 점도 알리타: 배틀 엔젤을 제가 높이 사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알리타: 배틀 엔젤은 최근 블록버스터물들 중 보기 드물게 독특한 개성을 갖춘 작품입니다. CG로 떡칠된 블록버스터에 이제 질렸다 싶은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만의 개성이 어필할 만한 여지는 분명 있다고 봅니다. 안전하고, 무난한 영화들로 점철된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과연 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합니다. 

  1. 이 분량은 원작의 OVA와 정확히 같은 분량인데, 영화는 이 OVA의 전개를 복사라도 한듯 정확하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급전개도 여기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본문으로]
  2. 인간의 신체절단도 그대로 묘사하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 두 국가 모두에서 어떻게 심의를 받은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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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문화에서 조롱의 대상이었던 캐릭터가 영화판에서도 하필이면 디씨의 바닥을 찍었던 저스티스 리그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아쿠아맨 솔로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낮았습니다. 저스티스 리그에서도 호쾌한 기합 소리를 빼면 그다지 기억에 남을만한 활약도 없었고, 저 역시도 예고편 공개전까지 이 영화에 대해 반신반의했습니다.

 공개된 결과물은 기대 이상입니다.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며 관객들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게임식 구조를 취해서 익숙하지 않은 아쿠아맨의 세계관을 소개하고, 서사를 진행시킨 점은 어드벤처물을 표방한 영화에 신의 한수가 됐다 봅니다. 주인공이 퀘스트를 깰 때마다 새로운 액션이 등장하고 시퀀스가 넘어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쿠아맨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상 '극장'이라는 거대한 스크린, 뛰어난 사운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매력이 반감되기 때문에 아쿠아맨은 더더욱 극장관람을 놓쳐선 안 될 영화입니다.

 정형화된 영웅담의 기본적인 서사구조를 따르고 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쉴새 없이 몰아치는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봅니다. 영화는 익숙한 내용과 유치한 대사, 평면적인 캐릭터까지 최악의 영화가 될 수 있는 삼박자를 두루 갖추고 있지만, 괜히 어줍짢게 묵직한 메시지나 캐릭터 드라마를 구축하려고 무리수를 두지 않습니다. 다크나이트 삼부작부터 시작되었던 디씨의 진지병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는 자신의 유치함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오히려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이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야말로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다른 디씨, 마블 영화들과의 차별점 역시 여기서 발생하며, 앞으로도 이 고유한 매력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아쿠아맨 시리즈의 장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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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G의 발전과 함께 최근 헐리웃 블록버스터물의 액션은 점점 CG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그러한 유행을 오히려 거스르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차별화 지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3년 만의 신작인 폴아웃 역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라 볼 수 있는 현장감 넘치는 액션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오토바이 체이스나 격투처럼 기본적인 액션부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만 즐길 수 있는 헤일로 점프나 헬리콥터 액션씬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액션 스퀀스의 향연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액션 시퀀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면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데는 전적으로 주연배우, 톰 크루즈의 공이 큽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역시 CG프리-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연배우가 대부분 액션 스턴트를 직접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다른 블록버스터들과 이 영화를 차별화해주고 있습니다. 주연배우의 스턴트 대역을 가리지 않아도 되니 확실히 촬영면에서 자유롭고, 관객들의 코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 연출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현장감의 절정을 찍는 장면이 후반부 헬리콥터에서 펼쳐지는 액션씬입니다. 의도적으로 '영화적'인 연출을 배제한 덕에 이 시퀀스는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생(生)'영상처럼 느껴집니다. 고스트 프로토콜 이후 계속해서 아이맥스 포맷을 고집하는 것도 이 시리즈가 추구하는 생생한 현장감이 아이맥스의 넓은 시야, 고화질 영상과 찰떡궁합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한 시퀀스를 위해서라도 이왕이면 아이맥스, 가능하다면 극장에서 보시라고 꼭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과거 이소룡이나 성룡과 같은 액션스타의 아우라를 가진 배우는 현시점에서 톰 크루즈 밖에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속 이단 헌트의 곡예수준의 기행(...)들을 관객들이 서슴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CG나 대역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몸을 던지는 톰 크루즈의 열정이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미션 임파서블은 톰 크루즈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후속편이 나올 때마다 더욱 확고해지는 것 같습니다.

 칭찬받아 마땅한 액션 시퀀스들과 별개로 영화의 내용 자체는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시리즈 자체가 초창기부터 액션을 위해 내용을 짜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관된 완성도를 유지해온 것, 자체가 신기하긴 합니다. 이번 폴아웃 역시 오락물로써 각본의 만듦새는 크게 부족하진 않습니다. 다만, 빌런의 정체가 중요한 내용임에도 영화 초반에 그 정체를 너무 대놓고 암시한다는 점은 후반부를 다소 맥빠지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전이 바보가 아니라면 너무나 쉽게 눈치챌 수 있기 때문에 게을러 보일 정도 입니다.) 결과적으로 무력만 앞세우는 진보스보다 전편의 빌런이었던 솔로몬 레인이 더 돋보입니다. 이번 영화의 주제 자체도 이단 헌트를 정신적으로 시험에 들게 만드는 레인의 사상과 밀접하기 때문에 그의 존재감은 어쩌면 전편 이상으로 빛납니다.

 매 편 독립성을 유지해왔던 전통을 깬 점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로서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전편, 로그네이션의 주요 인물을 대다수 불러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는 전작들보다 훨씬 이단-중심적으로 느껴집니다. 시리즈의 시그니처라고 볼 수 있는 하이스트씬이 부재한 점이 꽤 치명적입니다. 물론 팀플레이는 존재합니다만, 하이스트씬이 없다보니 팀원들이 빛날 장면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3편부터 팀플레이의 존재감을 서서히 키워나가고 있던터라 더욱 아쉽습니다. (조연 캐릭터의 활용도 전작들보다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로그네이션의 씬스틸러였던 일사의 경우 이번 영화에선 딱히 존재감이 안 느껴집니다.)

 내용면에서 아쉬움이 다소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은 여름 블록버스터물로써 관객들과 시리즈의 팬들이 원하는 바를 충실히 수행해냅니다. 액션면에서는 시리즈 최고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지만, 좋다를 넘어서 재기발랄하게 느껴졌던 고스트 프로토콜의 영광을 재현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실감나는 액션이 극장에 특화된 영화란 점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군요. 시리즈 팬이라면 그냥 필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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